백도명 교수

보건대학원

건강은 한순간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건강은 원인과 결과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결되는 과정이며, 지금 순간에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아내는 지속적인 자세다. 한편 건강은 한 개인의 주체적 선택으로만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과정이 개인에게 허락하는 잠재력이다. 특히 주어지는 조건 속에 벌어지는 여러 다른 상황들을 감당하면서 평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주어지는 상황과 유지돼야 하는 평형의 범위가 시대에 따라 또 사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건강은 결국 전체 시스템의 산물이다. 단적인 예로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음에도 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불과 47세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건강을 바라보는 경우, 건강을 도모하는 전체 체계를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하다. 특히 어느 한 요인으로 결정되지도 않으며, 마치 물건을 구입하듯, 사서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건강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사람들 덕에 건강을 도모한다는 기술이 그리고 이를 활용했다는 제품이 유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건강검진이다. 그러나 건강검진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하듯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는 건강행동실천 자세가 건강을 이뤄 나가는 과정이다. 실제 건강한 사람의 건강검진은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시경을 받다 발생하는 장천공 등 건강검진으로 초래되는 부작용, 갑상선암, 유방암과 같이 전혀 생명과 상관없이 발견되는 과잉진단, 그 외에도 의양성, 의음성 등의 오진과 그로 인한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부담 등의 문제들을 감안하면 실제 건강검진을 통해 최종적으로 수명이 증가했다는 의학적 근거가 아직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만은 않다.

건강을 바라보는 데 있어 어느 한 요인으로 초래되는 단기간의 변화를 넘어 전체 과정과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지향점을 체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 대부분의 기술적 접근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의학적 연명치료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지연일 뿐이다. 더구나 질병의 사회적 문제를 회피함으로써 오히려 해가 초래되는 사례를 보기도 한다. 결국 건강에 대한 기술적 접근은 제도적 해결과 함께, 궁극적으론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로서 건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없인, 강자의 이해가 기술로 포장돼 강요되는 파행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같은 관점에서 직업병 산재의 문제 또한 체계적 포장을 들춰내면 강요된 강자 논리가 되곤 한다. 단적인 예로 첨단 반도체 산업의 문제인 삼성 백혈병의 경우, 지금까지 회사가 제시한 대로 홍보, 관리, 복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은 결국 문제의 해결을 체계적으로 다른 분야에 떠넘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학문공동체로서 대학의 문제 또한 전체 체계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문제를 여기저기 전가하는 단기적 처방에만 머물게 된다. 서울대를 법인화하면서 내세웠던 자율과 재정안정이 지금에 와서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돌아본다면, 법인화라는 처방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처방이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자본의 효율과 이동의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체계에서 학문의 자율이 외형적 성과평가로, 재정안정이 연구비에 목을 매는 결과로 귀결되는 상황을 주목하게 된다. 법인화라고 하는 체계의 문제를 직접 경험하면서도, 어디에 들어와 있는지 주목하지 않는다면, 서서히 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법인화의 문제를 단지 효용이나 경쟁에 대한 단기적 대안의 차원이 아니라 현재 한국이 처한 체계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장기적 대안을 논할 수 있는 총장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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