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클릭 한 번으로 한 사람의 일상이 망가질 수도 있다면, 당신은 마우스를 누를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에선 꽤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자료들을 소비하면서 말이다. 재학생 A씨(22)는 최근 사회대 여자 화장실에 남성이 잠입해 몰래 카메라를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신문』 2018년 10월 8일자) 이제 학교 화장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 A씨뿐만 아니라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몰래카메라에 떨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난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웹하드에서 공유되는 몰래카메라 영상을 대대적으로 방영하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하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최근 이슈로 떠오른 몰래카메라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불법 음란물 생산 및 유포 전반을 통칭한다. 온라인으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는 그 파급력이나 피해의 정도가 심각하다. 『대학신문』은 사회 전반의 이목이 쏠려있음에도 여전히 누군가에겐 생소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다뤄보기로 한다.

1 기술의 발달, 교묘해지는 디지털 성범죄

대대적으로 보도된 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해선 대중의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범죄율이 높은 ‘휴대용 몰래카메라’에 대한 경각심은 낮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8억 원을 투입한 ‘여성안심보안관’ 사업은 1년 동안 공공 화장실과 탈의실 등을 포함한 6만,500여 곳에서 몰래카메라를 집중적으로 단속했으나 단 한 개의 몰래카메라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몰래카메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대개는 화장실에서 찍히는 몰래카메라에 대해 걱정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연간 7,000건 정도의 몰래카메라 범죄가 집계되지만 설치용 몰래카메라는 그중 5%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대개는 숙박업소, 탈의실, 자취방 등 개인적인 공간에 설치되는 사례가 많다. 몰래카메라 범죄의 나머지 95% 정도는 휴대용 기기를 이용한 촬영 범죄다. 이런 몰래카메라는 검거하기 어렵고 설치용 카메라 역시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중에 판매되는 탐지기로 찾기 어려울 정도다. 몰래카메라로 행해지는 디지털 성범죄가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는 전형적인 암수범죄인 이유다.

합성 기술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카메라를 피해봤자 합성을 이용하면 언제든지 피해자가 음란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연예인부터 일반인의 프로필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스를 바탕으로 사진이 합성된다. 심지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 신체 등을 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라는 기술마저 사용되고 있다. 최근 가수 설현 씨는 딥페이크로 만든 영상이 온라인상 배포돼 고소절차를 밟았다. 게다가 해당 영상이 ‘전 남자친구가 찍었다’ ‘영상인데 당연히 진짜 아니냐’ 등의 악의적 루머가 영상과 함께 퍼져 큰 곤욕을 치렀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정교한 영상 합성 기술의 등장은 외형이 공개돼 있다면 누구든, 언제든지 음란 영상의 주인공으로 둔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몰래카메라, 합성 사진, 딥페이크 영상 등 디지털 성범죄 결과물이 확산되는 가장 큰 원인은 인터넷 플랫폼이다. 유포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웹하드와 ‘텀블러’(Tumblr)를 위시한 인터넷 플랫폼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교량 역할을 한다. 웹하드는 국내 불법 촬영물이 공유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업로더들은 파일의 다운로드 횟수에 따라 돈을 벌고 그 과정에서 웹하드 업체 역시 수수료를 챙긴다. 가장 수익성이 높은 자료는 성인 콘텐츠로 그중에서도 유출 몰래카메라 영상의 수요는 꾸준하다. 웹하드 관련 분야에서 일했던 전문가 B씨는 “업계에선 불법성인 콘텐츠가 웹하드 수익의 50% 정도를 차지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취재에 응한 헤비업로더 역시 “유출 영상이라 불리는 디지털 성폭력 영상이 최고의 수입원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엔 주력 웹하드 사이트들이 ‘몰카’ ‘유출’ ‘일반인’ 등의 검색어를 막는 방법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단어 일부를 알파벳으로 바꿔 검색 제한을 우회하는 꼼수가 고안되는 바람에 웹하드의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 내의 디지털 성범죄 유통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2 디지털 성범죄는 왜 근절되지 않는가

◇함께 사는 디지털 사회, 제도는 따로따로?=그나마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 웹하드는 관리를 강제할 수 있어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라면 디지털 성범죄 관련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거의 없다. 해외 사이트인 텀블러의 ‘지인 능욕’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지인 능욕은 일반인들이 자신의 지인 사진을 제보하면 업로더들이 음란물의 형태로 합성해 본인의 게시판에 올리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대개 프로필 사진이나 일상 사진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텀블러 측에선 이에 대해 제재를 하고 있지 않다. 2016년 최명길 전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텀블러는 “자사는 미국 법률에 규제받는 회사”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콘텐츠 대응에 대한 협력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처럼 해외에 서버가 위치한 인터넷 플랫폼은 직접적인 규제가 어렵다. 텀블러뿐만 아니라 구글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검색 엔진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양산하는 업로더들과 일반 사용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구글은 로그인 없이도 ‘텀블러 합성’을 검색하면 1페이지 가장 상단에 링크를 공유해준다. 하지만 구글 역시 미국 법률의 지배를 받는 외국 회사로, 국내법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외국에 서버를 둔 디지털 성범죄는 국가 간 공조가 부족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해외 서버들의 수사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선 국가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몇몇 국가에선 ‘부다페스트 협약’을 통해 국경 없는 디지털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국제 사회의 협조를 선언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통신비밀보호법과 부다페스트 협약은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현재 협약 가입을 못 하고 있다. 비밀 보장을 우선으로 해 기업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권리를 지켜주는 국내법과 국제 공조를 원칙으로 수사 진행 시 정보 공개가 필요한 부다페스트 협약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리아 사무국장은 NGO 차원의 국제 연대체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구축하고 있는 국제 연대체는 근원적인 삭제를 목표로 둔다”며 “디지털 성범죄를 성폭력의 일종으로 보고 유포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고 밝혔다. 국제 연대체는 대만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포르노 사이트 서버 90% 이상이 위치한 미국에서 서버 처벌 기준 법 제정을 요구하는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발발, 입법부가 따라가고 있을까=디지털 성범죄 결과물들이 저작권법의 허점 속에 숨어있는 것 또한 문제다. 저작권법의 규정 미비로 디지털 성범죄 영상 삭제 활동에 큰 제약이 따른다. 몇 년 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업로더들이 영상을 웹하드에 올리는 불법행위가 논란이 됐다. 정부는 저작권자로부터 불법 게재 신고를 받으면 웹하드 사이트가 바로 해당 자료를 삭제하고 업로더를 처벌하도록 했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이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불법 영상을 찍은 저작권자들이 저작권을 어긴 게시물을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 행위로 만들어진 영상물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으니 웹하드 사이트의 자체적 관리를 담보하기 어렵다. 저작권법이 합법적인 영상의 불법적인 공유까진 막았지만, 불법적인 영상의 불법적인 공유를 막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죄형 법정주의가 원칙이나 정작 디지털 성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 조항은 부재하다. 현재 성폭력처벌법 14조는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유포한 경우 4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아 사무국장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 문구의 기준을 알기 어렵고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성폭력방지특별법으로 처벌이 어려운 경우는 정보통신망법으로 우회해 재판을 진행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있다. 피해 촬영물을 성폭력의 결과로 보지 않고 사회적 법익을 해치는 음란물로 전제한 뒤 법률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아 사무국장은 “이 경우 피해자가 자기 영상의 음란성을 증명하기 위해 성기를 직접 캡처해서 제시해야 하는 상황도 일어난다”고 전했다.

디지털 성범죄가 위협적인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여타 성범죄와 달리 재유포의 가능성이 항시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유포자들의 경우는 더욱 법망을 피해가기 쉽다. 몇몇으로 재유포자가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피해자들이나 수사기관에서 그들을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경민 변호사는 “성폭력 처벌법 14조를 적용해도 유포자들을 특정하는 게 쉽지 않다”며 “재유포하는 사람들에 대해 수사 의뢰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유포자에 대해선 영리를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촬영물을 유포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성폭력특례법 제14조 3항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재유포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부재해 처벌이 쉽지 않다. 리아 사무국장은 “법 개정이 많이 시도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속 반대에 부딪히는 이유는 결국 다운로드만 받은 사람들을 성범죄자로 함께 처리하는 것이 가혹하다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기저에 깔린 인식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재유포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정부, 디지털 성범죄 대응 능력 제대로 갖추고 있나?=디지털 성범죄가 계속해서 논란의 중심에 서자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정부 대응 능력에 대한 반응은 회의적이다. 미투·디지털 성범죄 법안만 총 132개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처럼 입법 과정이 늦춰지고 있어 정부 대책 역시 현실에 뒤처지고 있고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나온 여성안심보안관과 ‘패스트트랙’(Fast Track)제도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여성안심보안관 뿐만 아니라 경찰청 역시 3만여 곳에서 몰래카메라 단속을 했으나 단 한 건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지난 9월 공공화장실 감독에 나섰고 행정안전부도 심지어 몰래카메라 탐지기 구매에 5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데도 비슷한 정책을 내놓는 것은 몰래카메라 생산 과정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다른 공약으론 법무부 등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촬영물을 즉시 삭제하고 차단하는 패스트트랙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해외 서버의 데이터 수색문제와 기업의 이익추구권 침해 문제로 인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민간 기업이 불법성인자료를 스스로 삭제하게끔 만들기 위해선 국내법 도입이 시급하다. 정부의 대책 없이 기업에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는 민간단체에서 삭제 지원 역할을 떠맡고 있다. 최근 민간단체 ‘디지털 성범죄 아웃’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불법 촬영물들을 삭제하기 위해 ‘DNA 필터링 기술’을 도입했다. DNA 필터링 기술은 불법 촬영물의 음성 파일이나 영상 RGB 값의 특성을 통해 해당 영상의 DNA를 추출하고 이를 서버에 저장한 뒤 추후 같은 DNA를 가진 영상이 인터넷상에 업로드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그러나 사기업에서 DNA 필터링 기술을 도입할 유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을 위한 법률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데다 기술 도입 비용도 기존의 삭제 작업대비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다. 민간단체인 ‘디지털 성범죄 아웃’이 DNA 필터링 기술을 도입해 활동을 열심히 한데도 정책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예나 대표는 “DNA 필터링 기술을 통해 예전보다 쉽고 빠른 삭제가 가능해졌지만, 기업에 강제하는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범죄 대응 업무에 정부 차원에서 인력을 마련하고 장기 대응 방안도 구성해야 한다. 정부는 뒤늦게야 내년도부터 각종 사이트에 영상 DNA 필터링 기술을 도입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행정처리가 늦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단체와의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대(對) 디지털 성범죄 정부 정책이 여전히 미비하다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특히 인력난이 심각하다. 디지털 장의사* 이지수 씨는 “삭제 작업은 휴일,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들의 스트레스가 엄청나기 때문에 공식적인 업무 시간 외에도 피해자 상담까지 겸하며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활동가 한 명이 피해자 30~40명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 결과물을 처리하는 상황이다. 하예나 대표는 “아무리 지워도 남아있는 영상들은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민간단체 내에서도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는 “활동가들이 활동으로 인해 앓는 스트레스 장애 등의 어려움은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나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둔 경우 필터링 기술을 따로 도입할 수도 없어 수작업이 동반돼야 한다. 결국 민간단체 주도의 모니터링은 지속 가능성이 작을 수밖에 없다.



3 디지털 성범죄의 숨은 가해자, 우리는 디지털 성범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 산업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수요자의 존재다. 재학생 C씨(21)는 “최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내 영상도 있진 않겠냐는 불안감에 직접 몇 개의 사이트를 감시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여자 기숙사 몰래 카메라 영상을 비롯해 논란을 빚은 디지털 성범죄 결과물들이 주요 P2P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하예나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방안에 대해 “보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며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파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공급자는 수요자의 요구가 없다면, 돈이 되지 않는다면 움직일 동기가 없다. 방관자 효과는 디지털 성범죄 수요자들의 심리를 설명해준다.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고 소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호기심에 자극적인 기사를 읽고 유출된 영상을 보는 사람들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가 피해자의 아픔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을 가능케 한다.

여자들에게 디지털 성범죄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피부로 와 닿는 현실적인 위협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98% 이상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여성 폭력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A씨는 “디지털 성범죄 현실을 접한 뒤 여자 화장실의 모든 구멍이 두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C씨 역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수많은 구멍이 휴지로 막혀있는 걸 자주 발견한다”며 “많은 구멍을 볼 때마다 누군가 찍고 있진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디지털 세계가 만들어낸 문명 안에서 여성 폭력의 장이 마련됐다. 하예나 대표는 “디지털 산업이 남성에 의해 지배되다 보니 디지털 산업에 성차별에 기인한 불평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의 완전 해소를 위해선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이 우선 개선돼야 한다. C씨는 “여성을 사물로 여기는 성매매나 불법 촬영물 시청 등의 행위가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예나 대표는 “구체적인 방향은 고민 중이지만 역시 교육적인 차원에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인식을 대중적으로 바꿔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아 사무국장 역시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적 기제가 사라져야 한다”며 “지금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분들부터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돈이 되지 않는 산업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여성의 성에 값을 매기는 인식이 변화하면 디지털 성범죄 산업은 자연스레 가치를 잃을 것이다.

올해 5월부터 시작된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의 골자는 여성 대상 범죄에 수사력이 소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가 잡히더라도 처벌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다. 2016년 기준 대검찰청이 내놓은 범죄분석에 따르면 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한 검거율은 95% 정도다. 문제는 검거된 후다. 검찰 측에서 아예 기소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과 검찰 측의 태도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경민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가 이슈 몰이를 한다고 해도 검찰의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는 말을 남겼다.

사법부 역시 기존의 성범죄에 대한 약한 처벌 관행을 이어오고 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 지역 법원의 1심 판결을 분석한 결과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 대한 징역형 선고는 5.3%, ‘음란물 유포’ 징역형은 5.8%에 불과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기술 발전과 함께 급속하게 진화하고 있는데, 기존의 처벌 규정은 현재의 디지털 성범죄 유형과 정합적이지 않다. 법은 결국 국민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도다. 국민들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궁극적으로 사회 전반의 변화를 끌어내길 기대해본다.

*디지털 장의사: 고객의 의뢰에 따라 온라인에 퍼져있는 사진, 댓글, 영상 등의 게시물, 인터넷 계정 등을 삭제하며, 개인 혹은 기업의 평판 관리도 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레이아웃: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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