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대마 합법화 논란, 앞으로의 향방을 짚다

지난 9월, 의료용 대마의 제한적 수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의료용 대마 합법화법)이 국회의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대학신문』에선 의료용 대마 합법화 논의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대마를 바라보는 시선을 재점검해본다.




대마불사(大麻不似): 대마초와 다른 의료용 대마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대마초에 진통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마초를 진통제로 사용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전설적 명의 화타도 대마초를 술에 달여 마취제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양한 의약품이 등장하면서 굳이 환각 효과와 중독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마초 사용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고, 다른 천연 의약품이 으레 그랬듯 대마초도 다른 합성 의약품에 자리를 내줬다.

그러던 중 20세기 후반에 들어 대마초를 뇌전증 환자에게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뇌전증은 과거 간질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 병을 앓는 환자가 간헐적으로 일으키는 발작과 경련을 제어하기 위해 쓰이는 항전간제 가운데 대마초에서 추출한 칸나비디올(CBD)이 특히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후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되며 CBD가 알츠하이머병과 심혈관계 질환을 비롯한 십여 개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의료용 대마에 대한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의료용 대마란 표현만 보면 환자에게 치료를 위해 일정량의 대마초를 처방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제약회사 ‘한국얀센’의 홍동표 PM(프로덕트 매니저)은 “마약성 진통제라는 이름만 보고 진통 효과를 내기 위해 마약을 처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이는 실제 약물의 작용 메커니즘을 몰라 생기는 오해라고 설명했다. 마약의 진통 효과와 환각 효과는 마약에 포함된 각기 다른 물질에 의해 촉발된다. 모르핀이나 펜타닐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는 여기서 진통 효과를 내는 성분만을 인공적으로 합성하고 개량한 것이다. 이들 역시 마약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통 효과를 내는 약품이기에 여전히 중독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실제 마약과 비교했을 때는 중독성이나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정도가 훨씬 덜하다. 의료용 대마로 불리는 CBD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CBD는 1930년대에 이미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을 완벽히 제거하고 추출하는 데 성공한 물질이다. 대마초에서 나온 물질이지만, 마약으로서 기능은 전혀 없다.


대마불사(對麻不辭): 의료용 대마 규제에 저항하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용 대마에 대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합법화 운동본부)였다. 지난해 6월 결성된 이 단체는 의료용 대마를 구하려다 마약 사범으로 몰린 억울한 사례를 언론에 소개하고, 의료용 대마 합법화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시위를 열며 시민들의 인식 개선에 힘썼다. 합법화 운동본부의 강성석 대표는 “현행법에 따르면 대마에서 비타민이나 탄수화물을 추출해도 그 성분은 마약이 된다”며 “WHO에서도 대마의 의료적 사용을 인정했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불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CBD는 대마초와 똑같은 대우를 받아왔다. 법률에서 대마초를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따로 명시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뇌전증을 앓는 한 아이의 부모가 자녀의 치료를 위해 해외 홈쇼핑 사이트에서 CBD 기름을 구매했다 마약 밀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 CBD는 몇 가지 증상에 효과를 보이는 평범한 의약품일 뿐으로, 일본과 같이 대마초를 금지하는 국가에서도 의료용 대마의 판매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는 올림픽 금지약물목록에서도 CBD가 제외됐다.

합법화 운동본부의 활동이 세간에 알려짐에 따라, 올해 들어 의료용 대마에 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1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의료용 대마 합법화법은 8개월의 계류 끝에 지난 9월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로 상정되기 위해선 소위원회를 통과한 뒤 두 번의 전체회의를 더 통과해야 하는데, 그 첫걸음을 뗀 셈이다. 지난달 30일(화)엔 국회에서 한국 대마 산업 활성화 방안을 두고 정책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안동시 보건소 김문년 보건위생과장은 “미국 FDA에서는 이미 의료용 대마를 뇌전증 치료제로 승인해 약까지 출시됐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마약류로 규정하는 법률에 발목이 잡혀 있어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라면서도 “최근 들어 식약처도 의료용 대마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여야 의원도 이와 관련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만큼 앞으로 관련 산업에 대한 꾸준한 지원이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최근 국내에서 의료용 대마에 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지만, 합법화를 주장하는 측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현재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용 대마를 처방받고자 하는 환자는 의사의 진료 소견서를 받아 식약처에 승인 신청을 직접 해야 하고, 식약처에서 허가가 나면 그 승인서를 다시 환자가 직접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강성석 대표는 이를 두고 “보험 처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항전간제를 특정한 시설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한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라며, 약을 구하기까지 환자와 그 가족에게 과한 구조적 책임이 요구된다고 꼬집었다. 김문년 과장 역시 “환자의 고통 경감을 위해서라도 식약처의 승인을 받아 바로 의료용 대마를 쓸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마불사(大麻不赦): 대마를 금하는 한국, 마냥 좋을까

의료용 대마에 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질 필요가 있음에도 지금까지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대마초에 대한 논의 자체를 꺼리는 국민적 인식 때문이다. 김문년 과장은 “의료용 대마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마약을 단속해야 할 공무원이 어떻게 마약 사용을 장려할 수 있냐고 묻는다”며 “명확한 의학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인데도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대마초는 헤로인, 코카인과 같은 마약으로 인식돼 강하게 금기시된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마초의 중독성은 일반적으로 마약으로 분류되는 약물 중에서도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서구권에서 대마는 담배와 비슷한 수준의 물질로 인식되며, 설령 마약으로 분류되더라도 매우 온건한 부류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토크쇼에서 “어릴 때 꽤 자주 대마초를 피웠다”고 진술했을 때도, 평론가들의 대다수는 후보의 비윤리성을 비판하기보다는 “오바마 후보가 청년층에게 얼마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식의 호평을 내놨다. 우리나라에서 대마초를 피우다 검거된 연예인에게 대중이 보이는 반응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우리나라가 대마에 유독 엄격해진 데는 역사적인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만 해도 농가에서 공공연하게 대마를 길러 간이 진통제로 쓰곤 했다. 실질적으로 대마에 대한 강경한 기조가 굳어진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였다. 대마초가 속칭 ‘해피 스모크’로 불리며 대학가로 퍼져나가고, 미국의 닉슨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1976년 유신 정부는 ‘대마관리법’을 제정해 대마 사범에게 최대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유신 정부의 대마초 규제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많다. 정부에 비판적인 가수를 대마초와 엮어 잡아들이는 등 대마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의심이 존재하며, 대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각인시키기 위해 유신 정부가 대마초의 심각성을 과장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강성석 대표는 “대마초에 대한 가짜뉴스를 당시 정부가 직접 나서 퍼뜨리는 바람에 대마초를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이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마약에 엄격한 국민정서 때문에 대한민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마약으로 인한 사회 문제가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대마초를 금기시하는 문화 자체는 문제가 없더라도, 대마초에 대한 맹목적 반대가 의료용 대마의 도입에 애로 사항으로 작용한다면 오히려 우리나라 대마 사업의 국제적 경쟁력만 저해될 우려가 있다. 김문년 과장은 “국내에서도 의료용 대마를 연구해야 하는데, 현재 국내에서 의료용 대마의 취급이 불가능하고 연구용으로 승인을 받는 절차도 까다로워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관련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아가 그는 “의료용 대마 연구를 할 수 있는 인력을 끌어올 유인도 필요하다”며 “대마의 임상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국가기관을 설립하고 정부 부처가 협동하여 관련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의 적극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현재 대마를 마약류로 규정하고 있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1조는 그 목적을 “보건상의 위해를 방지하여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함”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마의 의학적 이용 가능성이 대두되는 지금도 의료용 대마를 무조건 금기시하는 현재의 법은 구시대적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대마의 의학적 사용과 연구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고 지원은 강화함으로써, 한국 사회 내의 맹목적 거부감을 타파하고 대마초에서 취할 바와 버려야 할 바를 명확히 연구하는 것이 이 법의 취지를 충실히 실천하는 것 아닐까.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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