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중국 예술 이야기 ③ 중국 영화

중국 예술은 우리에게 가까우면서 멀다. 사람들은 보통 중국에 대해 환경 문제, 산업, 인구와 같은 ‘하드 파워’를 떠올리지 예술, 학문과 같은 ‘소프트 파워’를 떠올리지 않는다. 실제 중국의 근현대 예술은 검열, 이념, 전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은 탄압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중국의 예술 하면 형식적인 경극, 변검, 혹은 천편일률적인 선전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중국에는 전형적 이미지 외에도 기존의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예술가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3번에 걸쳐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의 문학, 미술과 영화 분야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엔 마지막으로 개혁개방 시기에 나타난 중국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 6세대 감독들의 영화에 대해 다룬다.


메가폰을 잡은 도시 청년

중국 영화의 세대는 베이징 영화학원에 입학한 연도에 따라 구분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학생들은 중국 유일의 영화감독 배출 기관이었던 베이징 영화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이들은 졸업한 뒤 각지의 국영 영화제작소에 배속돼 선전영화를 만드는 공무원이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박희성 경영지원본부장은 “1949년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중국의 영화 제작 시스템은 영화 산업이라기보다는 국가 이데올로기 홍보장치”였다고 설명했다.

1949년 이후에 주로 활동한 베이징 영화학원 출신 중국 영화 감독들은 4세대, 5세대, 6세대로 나뉜다. 이들을 나누는 분수령은 중국 사회 전체에 혼란을 몰고 왔던 문화대혁명이다. 4세대 감독들은 문화대혁명 이전에 베이징 영화학원을 졸업한 세대다. 4세대 감독들이 졸업한 직후 문화대혁명이 발생해 베이징 영화학원은 잠정적으로 폐쇄됐다.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으로 대표되는 5세대는 문화대혁명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이 지나가고, 1978년 베이징 영화학원이 다시 학생을 받기 시작했을 때 입학했다. 강내영 교수(경성대 연극영화학부)는 “5세대 감독들은 문화대혁명 속에서 성장해 과거에 대한 비판적 성향을 갖고 있었고, 농촌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고 말했다.

5세대와 달리 6세대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한창 진행되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베이징 영화학원에 다녔다. 당시 중국은 계획 경제에서 벗어나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로 인해 중국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당시 영화를 공부한 6세대 감독들은 ‘변화해가는 중국을 살아가는 도시 청년’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후 베이징 영화학원을 졸업한 6세대 감독들은 ‘실업’이라는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박희성 본부장은 “다수의 4, 5세대 감독들이 아직 활동하고 있어 6세대 감독들은 국영 영화제작소에 배정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선배들에게 메가폰을 뺏긴 6세대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날것 그대로 담아낸 청년과 소외

6세대 감독들의 영화는 청년과 소외라는 피사체를 사실주의적으로 담아낸다. ‘청년’은 6세대 감독들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것으로 6세대 영화의 중요한 피사체다. 이정훈 교수는 “기존의 엄격한 사회 통제에 대한 거부, 자유로운 남녀관계, 장발, 락 음악, 외국에 대한 동경 등 당대의 편린이 6세대 영화에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장위안 감독의 〈북경잡종〉(1993)이다. 〈북경잡종〉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지하 클럽에서 서구의 락 음악을 연주하고, 밤늦게까지 과음하고, 집에서는 부모에게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간다. 이런 젊은이들의 모습은 지도자와 당에 충성하고 사회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개혁개방 이전의 이상적인 청년상과 극명히 대비된다.

또 하나의 피사체는 소외다.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장 경제를 받아들인 중국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기록했으나, 모두가 혜택을 본 것은 아니었다. 강내영 교수는 “6세대의 영화는 경제 발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중국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고 평했다. 빈부격차로 인한 중국 사회의 모순은 쟈장커 감독의 〈삼협호인〉(2006)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싼샤댐* 건설에 참여하는 개발업자인 궈빈에게 팔을 잘린 노동자가 찾아와 보상을 요구한다. 궈빈이 있는 방에는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를 표방한 다섯 명인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그리고 마오쩌둥의 사진이 걸려있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사진 아래에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공안은 궈빈의 편을 들며 노동자를 연행한다. 이는 중국이 노동자를 위한 나라가 아님을 보여준다.

6세대 감독들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태도는 사실주의다. 강내영 교수는 이들의 사실주의를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소중히 여기는 예술적 심리 상태”로 규정하면서 “6세대의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인간을 묘사해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한다. 이런 사실주의 성향은 기법에서 드러난다. 이정훈 교수(중어중문학과)는 “6세대가 많이 사용한 기법 중에는 아마추어 배우를 현장에서 섭외하는 것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추어 배우의 기용은 특히 쟈장커 감독의 영화에서 두드러진다. 〈삼협호인〉에서 샨시성의 광부로 등장하는 주인공 한싼밍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 샨시성에서 광부로 일하던 쟈장커의 사촌 동생 한싼밍이었다. ‘세계’를 비롯해 쟈장커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 자오타오는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무용학교 교사였다.

이정훈 교수는 6세대의 또 다른 사실주의 기법으로 화면 전환을 하지 않고 한 대의 카메라로만 긴 장면을 찍어내는 롱테이크 기법을 꼽았다. 롱테이크 기법은 장뤼크 고다르나 비토리오 데시카와 같은 유럽 네오리얼리즘 감독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정교하게 조작하면서 화려한 영상미를 만들어내는 장이머우 등 5세대 감독들의 기법과 대비된다. 이정훈 교수는 “현란한 카메라 조작을 하지 않고 덤덤하게 현실을 비추는 롱테이크 기법은 6세대 감독들이 추구하는 사실주의와 부합했다”고 설명했다.

6세대는 반정부 투사인가?

6세대 감독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그들이 중국 당국에 의해 탄압당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영화에 대한 검열은 중국영화관리조례에 근거해 감독 기관인 광전총국에 의해 시행됐다. 광전총국의 검열은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촬영 허가와 촬영 이후 개봉 허가의 두 단계에 걸쳐 이뤄졌다. 광전총국은 6세대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강내영 교수는 “1990년대 초에는 광전총국이 중국의 발전상이 아닌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6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많은 6세대 영화가 검열에 걸렸다”고 설명했다. 아예 검열을 거부하면서 지하영화를 제작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러나 검열이 별로 심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많다. 이정훈 교수는 “6세대 감독들에 대한 광전총국의 통제는 내용 통제보다는 절차 통제에 가까웠다”며 “6세대 영화가 상영 금지 처분을 받은 이유는 주로 사전 검열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1년 광전총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앞두고 영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6세대 감독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통제를 상당 부분 완화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6세대 감독들은 제도권 안에서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 강내영 교수는 “이제 6세대에게 당국과의 불화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중국사무소 김필정 소장 또한 “6세대 감독들은 제도 밖에 있지 않고, 이미 주류로 편입됐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가 권력의 탄압을 받는 반정부 감독들이라는 6세대의 이미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이정훈 교수는 6세대 감독들의 영화가 주로 소개된 서구 영화제를 그 이유로 들었다. 서구 영화제에서는 중국 영화를 친정부 반정부의 도식으로 분류하고, 6세대를 단순하게 반정부 영화로 인식했다. 이러다 보니 발생한 촌극도 있다. 쟈장커 감독은 2009년 멜버른 영화제에 출품을 취소했다.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위구르족 독립운동가 라비야 카디르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같은 영화제에 출품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로 인해 ‘반정부적’이었던 쟈장커가 ‘친정부적’으로 변절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정훈 교수는 이에 대해 “서구 영화의 비평에만 의존해 중국 영화를 이해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검열 제도에서 사상적 탄압보다는 등급제가 문제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박희성 본부장은 “중국에서 검열을 통과한 영화는 모든 연령층이 볼 수 있어 성적인 부분의 표현이 제약된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체 관람 가능 영화와 상영 불가 영화만 있는 셈이다. 강내영 교수는 “등급제의 부재로 화려한 블록버스터가 아닌 중국 영화는 단조로운 휴머니즘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는 특히 동성애, 자유로운 동거 등 성적인 주제를 다루던 6세대 감독들에게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시장의 파도에서 사그라지는 불꽃

오늘날 6세대 감독들이 당면한 과제는 검열의 회피가 아닌 시장에서의 생존이다. 쟈장커 감독의 야심작인 〈산하고인〉(2015)이 약 42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같은 해 개봉한 중국 블록버스터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2015)는 2015년 개봉한 중국 영화 중 10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1억 2천만 달러로, 〈산하고인〉의 30배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했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현재의 중국 영화시장은 6세대 감독들이 처음 영화를 만들던 1990년대와는 판이하다. 강내영 교수는 중국 영화를 주선율 영화, 블록버스터 영화, 중소형 상업 영화, 그리고 비제도권 영화로 분류했다. 이 중 주선율 영화만이 예전 방식대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영 영화제작소에서 만들어지고, 나머지는 상업 자본의 투자로 만들어진다. 이는 국영 영화제작소에 취업하면 공무원 감독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6세대와 같이 독립영화 감독이 되던 1990년대의 상황과 크게 다르다.

오늘날 중국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범주선율영화*의 성장이다. 강내영 교수는 “중국 상업 영화들이 점차 민족주의, 애국주의와 같이 주선율 영화의 주제들을 다루면서 범주선율영화가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퇴역군인이 아프리카에서 반군과 싸우며 민간인을 구조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중국 영화 〈전랑2〉(2017)다. 범주선율영화와 더불어 평범한 중국인들의 일상을 가볍게 다룬 청춘물이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도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영화시장을 변화시킨 원동력은 관객의 선호였다. 김필정 소장은 “중국의 중소도시에 영화관이 많이 생기면서, 중소도시 관객들에게 쉽게 와 닿는 중국식 영웅, 중국의 일상을 다루는 영화들이 인기를 끌게 됐다”고 분석했다. 한편 강내영 교수는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나타난 사회 문제를 가리고자 중국 당국이 조장한 민족주의 분위기에 따라 관객들도 범주선율영화를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6세대 영화의 앞날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강내영 교수는 “6세대 영화는 관객들의 외면으로 곧 도태될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6세대라는 구분 자체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필정 소장은 “웹 영화나 웹 드라마 등 다양한 플랫폼이 도입돼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영화시장에서 이미 6세대라는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독립영화도 상업 자본의 투자를 받아 웹 영화 형식으로 다양한 부류의 감독에 의해 제작되는 오늘의 중국에서 베이징 영화학원 입학 연도를 기준으로 하는 구태의연한 세대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6세대 영화가 오늘의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정훈 교수는 “중국에도 SNS 등 다양한 소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영화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필요가 적어졌다”며 6세대 영화의 쇠퇴를 설명했다. 개혁개방 시기 중국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어색한 중간이었다. 6세대의 정체성도 사회주의 토양인 베이징 영화학원에서 자라나 자본주의 도입 시대의 모순을 지적한 중간자적 정체성이었다. 이들은 영화시장에도 자본주의와 신기술이 급격하게 들어옴에 따라 살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6세대 영화는 저물어가고 있지만, 이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 6세대는 천편일률적인 사회주의 선전영화도, 민족주의적인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중국 예술의 몰개성함이 지적받는 요즘, 시대의 틈을 비집고 나와 전환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6세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 영화에도 사실주의와 비판 정신이 있다고 6세대 감독들은 말한다.

*싼샤댐: 2006년 완공된 중국 허베이성의 댐으로, 환경 파괴와 관련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범주선율영화: 국가에서 제작하는 주선율 영화는 아니지만, 주선율 영화와 유사하게 민족주의, 애국주의 소재를 다루는 상업 영화.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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