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글자와 기록사이’, 공익을 디자인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은 디자인을 위한 말이다. 디자인은 보기에 좋은 ‘다홍치마’가 될 수 있도록 컨텐츠를 담아내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보다 다양하고 넓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글자와 기록사이’는 그 중에서도 공익성을 띠는 컨텐츠를 디자인하겠다고 나선 사회적 기업이다. 마포구 연남로에 위치한 디자인 작업실에서 글자와 기록사이의 최혜진 대표와 이신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상업의 영역을 벗어난 디자인=‘디자인’은 대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됐다. 이 어원을 따라 글자와 기록사이는 대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디자인을 이용한다. 최혜진 대표는 “오랫동안 출판업계에서 상업 디자인을 위한 일을 했지만 언젠간 공익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목마름이 있었다”며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 필요에 가치를 더하는 디자인의 본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2015년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글자와 기록 사이의 어딘가에서=디자인이 우리 일상의 어디에나 녹아들어 있는 만큼 글자와 기록사이의 디자인 사업은 다채롭게 진행된다. 이들의 시선은 곧 출판시장으로 향했다. 최혜진 대표는 “지금의 출판계에선 ‘팔기 위한 책’밖에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며 “개성 없이 천편일률적인 책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생생하게 담아낸 글자와 기록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데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신재 대표는 “회사의 이름이 글자와 기록사이인 것도 글자와 기록 사이쯤에 디자인이 위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기업명이 가진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출판에 대한 두 대표의 관심은 독서 문화 증진을 위한 ‘나눔 굿즈’ 사업까지 이어졌다. 나눔 굿즈 사업을 통해 책 문화와 독서 문화를 확대하고자 엽서, 공책 등 도서와 관련된 연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나눔 굿즈 사업을 통해 독서 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최종적으로는 바람직하고 공정한 출판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들은 기록형 독립 출판 사업을 통해 출판 시장에서의 공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록형 독립 출판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안내서나 문화유산 등을 다룬 기록물을 출판하고 있다. 최 대표는 “일반적인 지역 안내서는 관광지나 관공서 같이 똑같은 정보를 단편적으로 엮어내 정작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었다”며 “인터뷰를 통해 직접 들은 마포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마포구 지역 안내서를 가장 먼저 출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울 모든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생한 지역 안내서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 웃어보였다.

◇디자인의 문턱을 낮추다=글자와 기록 사이는 출판 시장에 그치지 않고 공익에 대한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시야를 더욱 넓혔다. 이들은 ‘소셜 D. 상담소’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좇는 사람과 기관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디자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익을 위해 진행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초기에 보수를 거의 받지 않고 이후에 해당 회사와 수익을 분배하는 ‘디자인 투자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 대표는 “먼저 무료로 디자인 상담을 제공하고 공익성이 뚜렷한 몇몇 기관엔 비용을 받지 않고 디자인을 투자 개념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좋은 뜻을 가진 소규모 기관이나 사업체가 부담 없이 양질의 디자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 덧붙였다.

글자와 기록사이는 디자인 상담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공공기관의 여러 작품을 디자인한다. 양천지역자활센터의 사회적 경제 기업을 지원하는 사업 결과물을 인쇄물 형태로 디자인하거나 양천 지역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리플렛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영등포지역자활센터에서 생산한 누룽지 제품 ‘구수미’의 포장 디자인도 글자와 기록사이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최혜진 대표는 “같은 제품이더라도 패키지 디자인에 따라 소비자의 반응이 다르다”며 “좋은 취지로 생산된 맛있는 제품을 고급스럽게 포장했다”고 말했다.

디자인과 독립 출판을 아우르는 글자와 기록사이의 다양한 사업들은 모두 공익을 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최 대표는 “앞으로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디자인이 자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공익에 녹아들어 우리의 삶과 주변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길 꿈꿔본다.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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