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연구원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자존감. 너무 잘 알고 있거나 익숙해,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지 않았을 수도 있을 그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이곳에서 해보려고 한다. 물론 자존감에 대한 학문적 검증결과를 발표한다는 뜻도 아니고, 어떤 정의가 더 옳다, 좋다는 판단도 아니다. 다만 내가 하는 강의와 심리상담과정에서 담고 있던 시선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자존감이란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즉자기가 괜찮은 존재로 인식되려면, 타인의 인정과 평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 속에서 ‘괜찮음’으로 느껴질 만한 근거들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껴져야 비로소 자존감은 확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자존감은 처음부터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중요한 양육자와 교사, 또래관계 속 다양한 경험을 통해 확인받고 칭찬받으며, 괜찮음의 종류와 수준이 형성되는 것이고 그것은 본인의 자존감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자존감에 대한 가치판단 프레임은 성인이 돼서도 지속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데 적용된다.

그런데 우리는 한번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자존감에 대한 프레임이 나와 닮아 있는지 아니면 나의 중요한 대상에게서부터 온 기준과 더 닮아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이 4명이고 그 중 부모님과 언니는 독서가 취미고, 책을 읽은 행동이 밖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더 좋은 모습이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내가 또래들과 어울려 놀고, 책을 읽는 것을 지루해할 때 그것을 개선해야 할 모습으로 피드백하고 조언했을 수 있다. 그 결과 이러한 일들이 수차례 반복돼 나의 자존감의 인식 기준에는 독서를 즐겨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대해 부족한, 부끄러운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누군가와 어울리는 과정에서 배운 지혜와 경험의 산물들에 대해서는 실제 삶에서 도움이 되고 활용되는 효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저평가되고, 때로는 부끄러운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자존감은 강점과 역량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규정해 주는 모습이나, 타인이 선호하는 기대나 바람직성뿐 아니라 내가 나에게 “이것이 내 자존감의 중요한 기준”임을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자존감 및 자아존중감과 관련된 연구들을 수행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일반 서적에서도 자존감과 관련된 책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구와 출판된 책들에서 자존감에 대해 ‘향상’ ‘발달’ ‘성장’ ‘회복’ ‘높이기’ 등의 목표에만 집중하는 것에 개인적인 아쉬움을 가지게 되었다.

자존감은 향상되거나 높여야 하는 것이 아닌 ‘발견’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길에 있는 작은 돌멩이 한 조각을 어떤 사람은 불필요한 돌멩이로 인식해서 발로차서 옆으로 치워버리고, 어떤 사람은 매우 중요한 유물로 인식하고 발굴해냄으로 그 가치가 재평가 되는 것처럼, 혹시 내게도 그런 지점들은 없는지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다. 내 자존감은 낮은 것인가? 아니면 발견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가려졌던 것인가?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을 내 자존감의 조각들에 대해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발견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정말 좋아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아 그대의 자존감이 발견되는 즐거움이 시작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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