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은하계까지 뻗어간 우리 소리, 新창극 ‘우주소리’

사진 제공: 국립창극단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의 두 번째 신(新) 창극 시리즈 ‘우주소리’가 공연됐다. 국립창극단의 새로운 프로젝트인 신 창극 시리즈는 작품세계가 뚜렷한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과 합작하며 젊고 새로운 창극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작품에선 실험적인 무대 형식과 뚜렷한 메시지를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온 김태형 연출이 프로젝트에 함께했다.

신 창극 ‘우주소리’는 미국의 유명 SF 소설 작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코아티’라는 여자아이가 우주여행을 떠나던 중 우연히 만나게 된 외계 종족 ‘이아 족’인 ‘실료빈’을 만나 서로 동료가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태형 연출은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원작으로 고른 이유에 대해 “창극의 매력은 소리를 통해 흥미로운 장면을 서사 형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과 다양한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소설이 가진 우주와 기계에 대한 묘사, 주인공과 그 동료의 슬프고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이야기가 창극으로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공연은 네 명의 소리꾼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극의 초반은 관객이 창극과 SF의 만남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영화 〈스타워즈〉의 상징적인 문구인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를 창으로 부르다 어색함을 느낀 소리꾼이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아마도 오래 전, 아마도 멀고 먼 어느 우주에서 벌어진 이야기렷다”고 바꿔 불러 버린다. 소리꾼들은 영어로 된 우주 기계들의 이름을 구성진 가락으로 나열하는가 하면, “어차피 수궁가도 토끼랑 거북이랑 용궁에 가고, 흥보전도 박을 켰더니 금은보화가 나오고, 멀고 먼 은하계나 뭐가 다르당가!”라며 창극이 이미 ‘판타지 친화적’인 장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주인공 ‘코라틸리아 캐나다 캐스’의 이름이 창하기 어려운 이름이라며 줄여서 ‘코아티’라고 부르자는 대목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진 제공: 국립창극단

주인공 코아티는 우주복을 입은 채로 등장한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내 님’을 찾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구수한 욕설을 내뱉는다. 코아티가 님과 함께 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별들을 찾아가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열 여섯 살 소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여자아이는 자신이 받게 된 생일 선물 중 향수나 화장품보단 자신의 우주선 ‘코카 1호’를 훨씬 더 마음에 들어 한다. 김 연출은 “창극은 전통적으로 여성 서사가 많은 장르지만 그 속에서 드러난 서사는 현대 사회의 여성관을 대변해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코아티가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다른 아이임을 강조했고, 이것이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인간 종족 코아티와 외계 종족 실료빈의 첫 만남은 강렬하다. 지적 외계 생명체인 이아 족 실료빈이 코아티의 뇌에 들어가 코아티의 행복 중추를 자극함으로써 코아티는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SF 장르에서 외계 종족과 만남을 다룰 때 ‘성’(性)은 중요한 요소다. 생식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곧 그 생명체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연출은 “코아티보다 먼저 이아 족에 지배된 보니와 코라는 두 인물이 성관계를 맺게 되는 장면도, 실료빈이 이를 보고 잠재돼있던 욕구에 눈을 뜨게 된 것도 결국 번식 문제로부터 야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제공: 국립창극단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금색 씨, 즉 포자를 생산하게 된 실료빈은 결국 어린 이아들이 코아티의 뇌를 먹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하지만 코아티는 동료이자 친구인 실료빈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죽고 나면 코카 1호가 굶주린 어린 이아들을 싣고 우주를 떠돌며 그들이 다른 인간이나 외계 종족의 뇌를 먹어치울 것을 걱정했다. 결국 코카 1호에 탄 채로 둘은 금색 씨들과 함께 항성을 향해 돌진한다. 죽음이란 극단적 상황 앞에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감행한 것이다. 그 항성은 용감했던 두 사람을 기리는 뜻에서 연방 사람들에 의해 ‘코아티 실료빈’이라고 불리게 된다.

페미니즘, SF, 창극의 만남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임혜린 씨(국어국문학과‧16)는 “용감한 주인공, 종족을 뛰어넘은 친구, 그리고 웃음을 잃지 않는 소리꾼들이 함께해 낯선 장르라는 생각은 빠르게 허물어졌다”고 소감을 전해왔다. “창극이 동시대성을 갖는 현대적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재밌는 장르라는 것을 보여줘야 전통성이 강한 창극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김태형 연출의 말처럼 ‘우주소리’는 우리 창극만이 할 수 있었던 멋진 모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