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를 둘러싼 성차별적 문화와 구조를 톺아보다

‘스쿨미투’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사건에 대해 학생들이 직접 ‘미투’(Me too)운동으로 고발하는 현상이다. 지난 3일(토)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국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등 34개 단체가 주최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쿨미투 1차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선 학교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의 고발뿐만 아니라 미투 운동 이후 가해진 2차 가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학교 측 대응에 대한 비판도 포함됐다. 지난 9월 충북여중 학생이 트위터에서 시작한 #스쿨미투 운동 이후 스쿨미투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성애 위원은 “2015년부터 학교 내부에서 공론화된 이야기들이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학내 일상에 만연한 차별적 의식들이 분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오래도록 은폐된 교내 성폭력, 성차별 문제에 보다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하고 있었다.

◇스쿨미투를 부른 성차별 ‘문화’=학생들이 스쿨미투에서 제기한 문제의 상당수는 성차별적인 문화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식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져 있는 지금, 교내 성차별은 여전히 문제의식 없이 행해지고 있다. 굳이 범죄가 아니더라도 학교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는 학생들의 인격을 짓밟고 있다. 김성애 위원은 “스쿨미투에 대해 신고가 들어가도 처벌까지 이르는 데 성적 감수성과 전문성이 거의 부재한 현실”이라며 교사의 성추행, 성차별 발언을 두고 “개인적 일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학교 구조의 가부장성 자체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회에 참여한 고등학교 3학년 최 모 양은 “학교는 평등을 배우는 곳이고, 성폭력은 나와 거리가 먼 일로만 알았던 내 생각이 틀렸다”며 “학교는 혐오를 배우는 곳이었고, 성폭력은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같은 반 남자애들은 된장녀, 맘충, 김치녀 등 수많은 혐오발언을 일삼았으며, ‘네 여동생 성기에 내 성기를 넣으면 찢어질까?’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이냐”는 문구를 내세운 이번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시위는 학생들 스스로 이런 성차별적인 문화를 바꾸고자 한다는 의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들에게 익명성이 필요한 이유=트위터의 익명성을 기반으로 용기를 얻은 학생들이 교내 성추행 사례들을 폭로하면서 전국 60여 개 학교의 학생들이 온·오프라인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 내의 권력관계 하에 응어리졌던 문제들이 이제야 익명의 힘을 빌려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대학 입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수 있어 ‘갑’의 위치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학생이고 가해자가 선생님인 대부분의 스쿨미투 사건에서 피해자가 교사와 학교 시스템에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위 참여자들의 주장이다.

스쿨미투에 대한 2차 가해 역시 심각하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와 ‘당당하면 신원을 밝히라’는 상충되는 요구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시위 참여자 B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학교에 고발했지만 선생님은 ‘피해자가 뭐 그렇게 당당하냐’는 식으로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집회에 참여한 이들에게 ‘그렇게 떳떳하면 어째서 신원을 숨기냐?’는 비난은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더욱 심화시켰다. 시위 참여자는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숨기는 이유는 당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시위 참여자 C씨는 “마스크는 세상에 대항하는 우리의 얇은 갑옷”이라고 말했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의 기획 총괄을 맡은 양지혜 씨는 “스쿨 미투 학교 폭력 위원회에 참가한 B고교에서 ‘남학생들 대학 못 가게 하려고 고발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비하 발언을 듣거나, 미투 운동에 ‘자존감 낮은 사람이 하는 것’, ‘너도 미투할 거냐?’ 식으로 빈정거리는 말들이 통용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스쿨미투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유명무실한 매뉴얼, 실효성 있나=교육부는 지난 9월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학교 성폭력 예방 및 대응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기재했으나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14년에 ‘성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28장 가량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됐으나 그 이후에도 교내 성폭력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됐다.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교육부에서 배포한 가이드라인들이 아무리 구체적인 상황을 명시하고 있어도 결국 이를 수행하는 학교와 교사가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가이드라인은 유명무실해질 뿐이다. 대응 절차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강제규정이 아닌 부분은 학교의 재량으로 결정된다. 이때 피해 고발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성폭력 사안처리 가이드’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절차에선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대면접촉이 피해학생에게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는 경우 개별적 출석 가능’이라는 문장이 명백히 기재돼있지만 고양시의 J고교에선 학교폭력위원회에 가해자가 함께하는 경우가 일어났다. 또한 전담기구의 사안조사는 비밀유지에 유의한다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고발자의 트위터가 무단으로 학교 측에 전달되기도 했다.

◇스쿨미투 없이도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선=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스쿨미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명백한 ‘가해’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재생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영여중 스쿨미투의 당사자인 조영선 씨는 “아직도 일상에 배어 있는 성폭력 경험을 지워낼 수 없다”며 “내가 거절하지 못했으니 내 잘못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피해자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요는 대한민국 성교육 현실이 여전히 전근대적인 여성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교내 성폭력문제는 진정한 교육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양지혜 씨는 “교사를 포함한 모든 학내 구성원이 학내 문화를 성평등하게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김성애 위원은 “성차별 문제에 있어 여성과 남성의 인식은 현저한 차이가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함께 토론하고 배워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시위의 참여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학생들의 의견이 수평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환경을 원한다”고 말했다. 스쿨미투가 사라지기 위해선 교내 성폭력이 없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교내 성폭력에 대한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가해자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스쿨미투 고발은 일부 학교가 아닌 대한민국 교육현장 전체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양지혜 씨는 “수십 건의 교내 성폭력 고발이 이루어진 지금, 다른 피해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영선 씨도 “문영여중의 경우 교육청 신고 이후에 담당 팀이 만들어져 학생에 대해 전수조사가 실시됐다”며 “이런 활동들이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도록 교육청에서 주기적으로 전국적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학교의 폐쇄성이 교내 성폭력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사립학교법」 개정 또한 도마에 올랐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교원에 대한 징계에 대해 교육청의 강제력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오로지 사립학교 이사회에서만 처벌을 결정하고, 이는 학교의 밀실 운영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조영선 씨는 “스쿨미투를 보면 대부분 사립 여자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며 “사립학교의 폐쇄적인 구조 상 정부 차원의 규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스쿨미투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문학계 미투에서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 처분을 받고 상대에게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받았지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전북의 한 중학교 교사는 거짓 성추행 신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단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김성애 위원은 “학생들이 공론장에 나오는 순간 입증 요구와 무차별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며 “학교 구성원 간의 대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쿨미투로 2차 가해나 무고한 피해자가 만들어질 잠정적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선 학교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고,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 스쿨미투는 가지치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뿌리까지 잠식한 성차별 문제를 학교 스스로 해결할 때 진정한 ‘성평등 교육’을 만들 수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