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연 문화부장

혹자들은 서양의 중세를 암흑기라 불렀다. 봉건 제도와 교회의 속박으로 학문과 예술이 쇠퇴했다며 중세를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로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를 암흑기로 규정하는 것은 곧 다른 학자들에 의해 반박된다. 암흑 속 움텄던 노력들이 있었기에 결국 근대라는 역사적 광명이 도래했다는 새로운 평가가 제시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생을 하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면, 당신에게도 암흑기가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선 거의 모든 이들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역사적 암흑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처럼 각자의 암흑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해선 사람마다 그 생각이 다를 것이다.

자신의 암흑기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예시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최근 종방된 〈쇼미더머니 777〉(쇼미더머니)에 핑크색 복면을 쓴 괴물신인 ‘마미손’이 등장했다. 신곡 ‘소년점프’를 통해 마미손은 “폭염에 복면 쓰고 불구덩이에 처박힌” 안타까운 결말에도 모든 것은 다 자신의 “계획대로 되고 있을 뿐”이라고 당당히 받아친다. 그는 소년 만화에서 일반적으로 등장할법한 주인공과 같이, 초반엔 고통 받지만 절대 죽지 않고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할 것이라 선언한다. 위기와 이에 대한 극적인 해결은 재미있는 만화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자신의 만화에서도 위기는 오로지 만화의 재미를 위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암흑기를 긍정하고 쾌활히 웃을 수 있는 마미손의 배포는 웃음을 자아낸다.

반면 자신의 암흑기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예는 내 과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던 내게 저학년 때 시험을 망쳐버렸던 경험은 생활기록부의 ‘흑역사’로 남았고, 그래서 당장 눈앞의 시험에만 목매달았다. 너무 목을 맨 나머지 숨이 턱턱 막혀 빠른 심장박동이 온 머리를 울릴 정도였다. 오늘 세운 계획이 어그러지지 않도록 교내 식당에서도 식판이 아닌 단어장을 보며 손을 덜덜 떨었던 나는 ‘멘탈’이 너무 연약했다. 친구들은 나를 비닐봉지가 채 벗겨지기도 전에 ‘바사삭’하고 가루가 돼버리기 일쑤인 ‘쿠크다스’에 비유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만 했던 나와 달리, 간단히 웃어넘기는 마미손의 마인드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둘 다 계획을 구성하고 그를 지향하지만 그에 임하는 태도는 다르다. ‘소년점프’가 정식 발매되기 전, 매드클라운과 목소리와 랩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마미손은 매드클라운과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그는 거듭 부정해왔지만, 음원 사이트에 ‘소년점프’가 정식 발매된 후 알려진 ‘소년점프’의 작사·작곡의 주체는 다름 아닌 매드클라운이었다. 마미손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내세운 매드클라운은 자신과 쇼미더머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계획에 대해 확신한다. 매드클라운은 시간 순서와는 상관없이 자극적인 장면만을 삽입하던 기존의 쇼미더머니를 풍자하고자 했고, 결국 일부러 탈락하면서 쇼미더머니를 자신의 위기를 설정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비해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과,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신문사에 들어와 개인적으로는 많은 위기를 겪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성적이 좋지 않기도 했고, 기사 작성에 필요한 인터뷰이와의 컨택에서도 난관을 겪었다. 하지만 마미손처럼 인생을 조금 더 크게 바라본다면, 이 위기들은 자잘한 것에 불과하다. 내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왜 불안해하는가.

이 맥박을 읽는 독자들은 내게 ‘단지 머릿속 행복회로가 활성화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건강한 정신 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오늘도 나는 모든 것은 다 계획대로 되고 있을 것이라는 주문을 걸어본다. 내 인생의 난관 속에서 나도 이렇게 외칠 수 있길.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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