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기자

학술부

여름방학 일정 동안 수많은 소재를 생각했다.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내가 쓸 수 있는, 써야 하는 기사는 무엇일까.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꽤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첫 방학 일정이었고, 첫 기획안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무렇지 않게 ‘과학기술과 윤리’라는 주제를 던졌다. 이전과 다름없이 툭 내뱉었던 주제가 이제는 기획 기사가 돼 돌아왔다. 윤리에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시작했던 기획안이 자율주행자동차와 결부되며 지금의 소재가 확정됐다. 기획 주제가 이렇게 덜컥 결정되자 나는 소재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과연 이 주제로 신문의 두 면을 차지하는 기획 기사를 써도 되는 걸까? 내가 과연 자율주행자동차의 법과 윤리적 문제에 대해 짚어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어느 발을 먼저 내밀어 걸어야 할지조차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무작정 관련된 자료를 찾았다. 책이나 논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글을 읽었으며 관련 전문가들에게 취재 요청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도 적어 인터뷰 질문지도 부실했다. 다행히 인터뷰이분들이 친절하게 답해주셨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 내가 얼마나 자격이 없는 기자였는지를 실감했다.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해, 관련법에 대해 이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기자랍시고 취재를 요청했으니, 당시 인터뷰이가 얼마나 황당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여기서 취재를 멈출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더 많은 취재를 하고자 다짐했다. 혼자 글을 읽고 자료를 찾아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혹은 제시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선 논문 저자와의 인터뷰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기사를 준비하는 순간마다 나의 판단과 결정이 요구됐다.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기사의 방향성까지 모두 스스로 결정해야만 했다. 고민스러웠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방향이 맞을까, 이 길로 간다면 무엇이 나올까. 내 선택이 불러올 파장이 두려웠다.

기사를 모두 작성한 지금도 내가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해 그렇게 제대로 알고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기사에 담지 못한 내용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삶도 이와 같지 않았나. 매 순간의 선택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갔고, 그 일을 끝냈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그 일에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그 일을 왜 한 걸까.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과거의 시작과 선택이 남긴 건 아마도 오늘날 내 삶의 길인 것 같았다. 이전의 내가 했던 경험의 시행착오와 실패가 오늘날 내가 또 다른 행동을 할 때 이정표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오히려 우린 이상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그 모든 게 미래의 나를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또 다른 일을 시작하자. 그러다 보면 내 삶이 조금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한 번 더 말한다, 진부하고 고루한 말이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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