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화를 위한 첫 걸음, 법· 윤리와 마주선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를 위한 첫 걸음, 법· 윤리와 마주선 자율주행자동차
  • 이승연 기자
  • 승인 2018.11.1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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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 과학 영화에서 보던 무인 자동차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5년 11월에 서울대 지능형 자동차IT연구센터팀이 제작한 ‘스누버’(SNUver)가 국내 최초로 도로를 달렸으며, 이후 스누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누버2와 스누비 등이 추가적으로 공개됐다. 지난 9월에는 국내 최초로 운전자 없이 운행되는 ‘판교 제로셔틀’이 시범운행을 시작했으며 오는 15일 진행되는 ‘제2회 판교자율주행모터쇼’에선 판교 제로셔틀이 처음으로 일반인 시승회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처럼 자율주행자동차가 일반 도로 위를 달리며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게 됐지만, 관련된 국내 입법 상황은 여러 면에서 구체적이지 못한 실정이다. 더욱이 윤리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그 프로그래밍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대학신문』에선 자율주행자동차가 직면한 법적, 윤리적 문제와 이에 대한 돌파구를 살펴보고자 한다.

법 안의 자율주행자동차, 국내외 현주소는

자동차기술협회는 자율주행자동차를 레벨0~5로 구분하고 있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이 구분이 통용되고 있다. 레벨0은 자율 주행 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으며, 레벨1은 가감속 및 조향장치 조작에 보조적인 도움을 준다. 레벨2는 해당 조작을 시스템이 수행해 부분 자동 주행이 가능하지만 주행환경 모니터링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일반적으로 자율주행자동차로 인정되는 것은 레벨3~5 단계다. 서승우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레벨3과 레벨4 자율주행은 가감속 및 조향장치 조작, 주행환경 모니터링, 긴급 상황 대처에 따라 구분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레벨3 자율주행에서는 조향 및 가감속 장치 조작과 주행환경 모니터링은 모두 시스템이 담당하며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만 사람이 개입한다”며 “반면 레벨4는 이 모두를 시스템이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레벨5는 모든 측면에서 인간의 개입을 요구하지 않고도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오늘날에는 특히 레벨3과 레벨4의 구분이 중요하다. 레벨3과 레벨4 사이에 인간 운전자의 주의 및 개입의무가 확연하게 구별되기 때문이다. 레벨3에선 인간 운전자가 긴급 상황 시 제어권 회복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반면, 레벨4에선 인간 운전자의 개입이 필수적이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 국토해양팀 박준환 입법조사관은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국내외 입법·정치 동향과 과제」에서 “레벨3, 4의 경우, 자동차 운행에 있어서 운전자와 자동차의 역할이 혼재돼 있기 때문에 사고 시 책임 주체를 비롯해 다양한 법·제도적 논란이 발생한다”며 “자율주행자동차의 단계에 따라 상이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8일 ‘자율주행차 분야 선제적 규제혁파 로드맵’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의 단계별 기능 정의를 「자동차관리법」 등 관련법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해외에서는 법적 측면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척됐다. 일본은 지난 3월 ‘자율주행 관련 제도 정비’ 개정안 초안에서 레벨3 자율주행자동차의 사고까지는 원칙적으로 차량 운전자가 사고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독일은 2017년 연방 도로교통법에서 자율주행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엔 운전자가 차량을 통제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며, 자율주행단계와 관련 없이 대부분의 사고 책임을 운전자에게 지우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 오류가 발견될 경우에는 제조사에게 책임을 부과하며 이를 판단하기 위해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된 법적 규정이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자동차관리법」 제2조 제1의3호에선 “운전자 또는 승객의 조작 없이 자동차 스스로 운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자율주행자동차라고 명시했다. 이외에 자율주행자동차의 임시운행 허가를 위한 조건을 규정하는 제27조 제1항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곤 국내에서 공포된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법은 없으며, 현재 여러 의원들의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율촌 모빌리티팀 황규상 변호사는 “현재 자동차관리법은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자동차 개념을 토대로 정의 규정을 만든 반면 해당 수준 자동차의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쓸 수 없는 개념”이라며 “상세한 법적 규정을 위해서는 자율주행 레벨에 따른 정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법과 얽히면

◇사고 상황에서 책임소재의 행방은?=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법적 논의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야 할 것은 운전자 개념과 운행자 개념이다. 현행법 상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 책임을 지우는 근거가 두 개념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운전자’는 자동차를 직접 운전한 사람을 의미한다. 황규상 변호사는 “일차적으로는 운전자가 자동차라는 위험한 물건을 지배하고 있어 사고가 발생하면 「민법」 제750조에 따라 불법행위자 책임인 ‘운전자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서도 ‘운전자’ 개념을 적용해 업무상과실 혹은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자동차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선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의 ‘운행자 책임’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자율주행자동차에서는 점차 운전자라는 존재가 소멸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중기 교수(홍익대 법학과)는 “현행 책임 구조상에서 운행 지배와 운행 이익을 얻는 사람을 운행자라고 칭하며 이는 운전자와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운행자 책임은 자동차를 운행하고 지배한 운행자가 사고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자동차의 운전자와 소유자가 일치한다면 운전자가 운행 지배와 운행 이익을 누리기 때문에 운행자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운수 회사에 소속된 자동차는 운전자를 통해 운수 회사가 운행을 지배하며 운행 이익을 누리게 된다. 이 경우 운행자는 운수회사로 정의되며, 사고 발생 시 운행자 책임도 인정된다. 일차적인 책임 주체는 운전자이지만, 운전자가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에선 운행자 책임을 근거로 운수 회사가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율주행자동차의 사고 상황에선 책임 소재가 어떻게 결정될까? 이중기 교수는 “레벨3에서는 긴급 상황 발생 시 자율주행시스템이 제어권의 전환을 경고한다”며 “운전자는 경고에 따라 제어권을 회복해 긴급 상황을 통제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레벨3에서는 운행을 지배하는 주체는 여전히 운전자다”라며 “자동차 소유자와 운전자가 동일한 경우엔 해당 사람이 운행 이익도 누리기 때문에 현행대로 운행자 책임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율촌 모빌리티팀 신현화 변호사는 “전 세계적으로 레벨3 자율주행에선 운전자 책임이 기본이 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경우에는 자율주행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가 제조사에게 구상을 청구할 수 있다. 신 변호사는 “구상 청구를 위해선 사고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하며 이를 위해 구상권 행사의 간소화를 위한 제도적 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레벨4 자율주행에선 운전자와 운행자 개념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레벨4 자율주행시스템이 사고 상황에 처했을 경우 운전자는 제어권 회복의 의무를 갖지 않는다. 운전자는 더 이상 ‘운전자’에 해당하지 않으며 운행 지배를 담당하지 않기 때문에 ‘운행자’라고 정의하기도 어려워진다. 황규상 변호사는 “레벨4에서 시스템 상의 결함이나 제조물의 문제가 발견된다면 제조사에게 책임이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율주행자동차의 제조사 책임을 인정하기에는 현행 법체계의 규정이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황창근 교수(홍익대 법학과)는 “부품이나 장치 결함이 아닌 소프트웨어 결함은 제조물 결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현행 법에 규정돼 있다”며 “이 부분은 입법 논의가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제조물 결함과 관련된 책임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제조물책임법」의 현행 체계에선 자율주행시스템과 같은 AI나 소프트웨어를 제조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법이 유지될 경우엔 제조사 책임이 인정되기 어렵다. 이로 인해 기존 법의 운전자 책임과 운행자 책임 개념만으로는 교통사고의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결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자율주행시스템이 직접 운행을 지배하고 제조사가 운행 이익을 누리기 때문에 제조사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중기 교수는 “이 경우 자동차 소유자도 책임을 질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며 “자동차라는 위험한 물건을 소유하고 관리해야 하는 주체의 의무를 모두 제조사에게 넘기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버의 예시에 적용해본다면=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 돼 있거나 개인이 이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없으며 아직까진 임시운행만이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적 판례 분석은 임시운행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에 초점을 맞춰 간접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미국에서 자율주행시험을 하던 우버 차량이 자전거를 끌고 길을 건너던 보행자를 쳐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하 ‘우버 사망사건’)이 대표적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우버에 레벨3 자율주행시스템이 탑재됐다는 점과 해당 사건이 임시운행 도중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레벨3 자율주행에선 인간 운전자의 주의의무와 긴급 상황 시 제어권 회복 의무가 존재한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임시운행을 위해 고용된 사람이었으며 그에겐 고용 조항에 의해 일반적인 수준보다 더 높은 주의의무가 요구됐다. 또한 우버 차량의 운행을 통해 운행 지배와 운행 이익을 누린 것은 우버 회사였으므로 이 경우 운행자는 우버 회사이다. 우버 사망사건에선 운전자와 운행자가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테스트 드라이버는 ‘운전자 책임’의 대상이며 우버는 ‘운행자 책임’의 대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우버 사망사건에서 실제로 책임소재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보다 복잡하다. 황창근 교수는 “운행자 책임에 따르면 운행자는 운행 지배와 운행 이익을 누리기 때문에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책임을 져야한다”며 “우버 회사도 이와 같은 운행자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버 사망사건에서 테스트 드라이버는 충돌 직전 10초간 무릎 아래를 내려다보는 등 전방주의 의무를 태만히 했다. 이중기 교수는 “자신에게 부과된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테스트 드라이버에겐 운전자 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황창근 교수는 “원래 레벨3 자율주행에서 자율주행시스템이 인간 운전자의 개입을 요구할 땐 경고를 울려야 한다”며 “우버 사망사건에선 자율주행시스템이 제어권 회복에 대한 경고를 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운전자 책임 부과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제조물책임에 대한 내용을 해당 사건에 적용할 경우 자율주행자동차의 몇 가지 부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중기 교수는 “만일 센서가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지 못했다면 센서 제조사의 제조물 책임이 발생한다”며 “이 경우엔 센서가 6초 전에 보행자를 관측한 기록이 있어 센서 제조사의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황창근 교수는 “센서가 자동차와 자전거를 구분해 자전거에 타고 있는 사람을 인식했다면 제조물 책임이 발생한다”며 “그러나 센서가 움직이는 물체를 보행자가 아닌 도로를 횡단하는 자전거로만 감지했다면 제조물 책임이 발생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사고 상황에서 AI의 판단과 대처에 따라 AI 제조사의 책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이중기 교수는 “AI의 인식 알고리즘이 사람을 인식했는지부터 비상제동장치의 작동 필요성을 인식했는지까지 모두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윤리적 과제 수행과 대중의 선택=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으로 인해 사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운전자나 보행자 중 누군가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흔히 이와 같은 상황을 ‘트롤리 딜레마’ 상황이라고 일컫는다. 최근 이런 상황에서 자율주행시스템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맞닥뜨릴 수 있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조사하기 위해 MIT 미디어 랩의 연구원들은 ‘윤리 기계’(Moral Machine) 실험을 고안해 223개국의 230만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보행자의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 등을 구분한 상세 상황에서 누구를 살려야 하는지 선택해야 했다. 지난 10월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수보단 다수를 우선시해야 하며, 동물보다는 인간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그러나 세부적인 상황에 대한 답변은 국가 및 문화권별로 상이하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윤리적 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어려우며,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전문가들이 대중의 의견이 반영된 통계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지적도 존재한다. 소한 드소자 씨(미국 MIT 미디어랩 박사과정)는 “전문가들이 모든 상황에서 대중의 선택에 따라 판단해야 할 필요는 없다”며 “특히 대중의 선호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질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의 데이터는 규제 기관이나 정책 입안자의 결정 시 고려될 수 있는 정보 중 하나”라며 “규제에 대한 대중의 잠재적인 반응을 고려하기 위해 이를 참고할 수는 있다”고 주장했다. IT칼럼니스트 여정현 씨도 ‘인공지능과 윤리, 그 간극에 대하여’에서 “벌써부터 인공지능이 인종주의자가 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기계 학습 과정에서 인간의 선입견을 배운다면 인공지능이 또 다른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리 모듈 개발 시 고려해야 하는 이론은?=오늘날 자율주행자동차가 마주한 딜레마 상황의 판단 근거로 공리주의적인 프로그램이 대두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윤리 이론 대신 자율주행시스템에게 관련 법의 내용을 학습시킨 뒤 법적 근거를 토대로 판단을 내리게 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여정현 씨는 “윤리는 법보다는 넓은 개념이고, 법률이나 판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공리주의와 같은 큰 원칙을 알려줄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교통연구원 미래차연구센터 김규옥 센터장은 “자율주행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며 “이 때문에 딜레마 상황에선 공리주의적 원칙에 따라 더 많은 사람의 편익이 상승하는 쪽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순용 교수(서울교대 윤리교육과)도 “아직은 확정할 수 없는 단계지만 기본적으론 더 설득력이 있고 사회적 합의를 잘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공리주의적 계산법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리주의적 이론을 적용할 때 우선 보행자와 탑승자의 조건이 비교돼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김규옥 센터장은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차량 내부의 탑승자를 보호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며 “따라서 자율주행자동차는 사고 상황에서 비교적 많은 안전장치가 갖춰진 탑승자보다 무방비 상태의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변순용 교수는 “탑승자를 우선시하는 차를 소비자들이 선호한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이기적인’ 자동차는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사고 상황에서는 보행자를 우선시하면서 자율주행자동차 자체의 안전성을 보완해 탑승자의 안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첨언했다.

김현섭 교수(철학과)는 ‘공리주의적’ 프로그램과 ‘운전자 중심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가정한 뒤 게임이론적 보수표(payoff table)를 작성해 의견을 제시했다. 여기선 운전자 1명과 보행자 10명 중 한 쪽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정됐다. 딜레마 상황에서 선택의 주체인 두 사람은 자율주행자동차의 운전자와 보행자 중 1인으로서 사고를 당할 확률을 동일하게 갖고 있다. ‘공리주의적’ 프로그램은 다수의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운전자가 희생하는 것을 뜻하며, ‘운전자 중심적’ 프로그램은 운전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것을 의미했다. 김현섭 교수는 “운행자와 보행자의 입장을 각각 고려했을 때 각자에게 ‘운전자 중심적’ 프로그램이 우월한 전략이 된다”며 “그러나 두 사람이 모두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경우엔 ‘공리주의적’ 프로그램을 선택했을 때보다 교통사고로 입을 피해의 기댓값이 커지는 나쁜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김현섭 교수는 게임이론적 보수표를 통해 ‘공리주의적’ 프로그램과 ‘운전자 중심적’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를 제기했다. 해당 표에서 선택자 A와 B는 자율주행자동차 운전자로 사고를 당할 확률과 보행자로 사고를 당할 확률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표에 제시된 연수는 사고로 인한 기대여명의 감소를 의미한다.

◇윤리 모듈의 구체적인 개발 방식=자율주행시스템의 윤리적 프로그래밍을 위해서는 도덕적 인공지능의 개발 방식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이는 크게 탑다운(Top-down) 방식과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구분된다. 탑다운 방식은 판단 기준이 되는 윤리 원칙을 설정한 뒤, 관련 이론을 근거로 만들어진 사고결정 메커니즘을 인공지능에 탑재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설정되는 윤리 원칙은 의무론이나 공리주의, 원칙주의적 방식 등 상이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반면 바텀업 방식은 기계 학습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한 뒤 원칙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딥러닝 혹은 머신러닝이라고 불리는 이 과정에선 사용자의 선호 및 취향과 빅데이터가 모두 활용된다. 이중기 교수는 “딥러닝을 통해 알고리즘은 인간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완전히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바텀업 방식에서도 원칙이 되는 기본적인 근거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오늘날 세계적으론 탑다운 방식과 바텀업 방식이 결합된 방안이 등장하고 있다. 변순용 교수는 “현재 개발 중인 ‘더블 하이브리드 방식’이라고 명명된 모듈도 탑다운 방식과 바텀업 방식이 결합된 것”이라며 “이 모듈은 일차적으로는 공리주의와 의무론을 결합하며 그 후 바텀업 방식이 더해지는 구조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탑다운 방식 내부에서 공리주의와 의무론을 통한 단계적 계산을 통해 한 번의 결합 과정을 거치며 이후에는 딥러닝 기술의 적용을 통해 바텀업 방식이 적용된다. 그러나 자율주행자동차와 같이 개인과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인공지능에겐 바텀업 방식에서도 도덕적 판단이 요구된다. 즉 소비자가 명령했거나 승인한 행위라고 해도 사회적 규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인공지능이 자체적으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순용 교수는 “자율주행자동차가 타인의 신체나 이익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도덕적 판단을 행할 수 있는 수준의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가 공리주의적인 방식을 강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김현섭 교수는 “2016년 「사이언스」에 게재된 한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공리주의적 프로그램의 장착을 강제하는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를 감안했을 때 직접 규제 방식이 아닌 간접 규제 방식을 사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리주의에 대한 대중의 저항으로 인해 자율주행자동차의 구매가 감소한다면 교통사고사상자 수 감소 같은 자율주행자동차 도입의 긍정적 측면이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공리주의적 프로그램 장착 여부로 주행을 허가하거나 처벌을 가하는 직접 규제 방식이 결국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섭 교수는 “경제적 유인이나 공리주의적 프로그램을 장착한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더 높은 보조금 지급 등의 간접 규제가 오히려 공리주의적 프로그램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을 촉진할 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용화를 위한 준비 단계로서 자율주행자동차의 임시운행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이와 같이 기술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은 법적·윤리적 측면의 넓은 범위에서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선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법적 제도의 마련과 윤리적 가이드라인의 도입이 자율주행자동차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다. 그러나 변순용 교수는 “모든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자율주행자동차도 이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며 “법과 윤리적 측면의 논의는 자율주행자동차를 규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율주행자동차의 장점은 최대한 활용하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원활한 상용화를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간의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레이아웃: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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