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백과사전인 뉴욕에서 페미니즘 미술을 찾아보다

2016년 5월 이후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중요한 이야기가 됐다. 3년이 지난 지금 2018년 현재, 페미니즘은 단순히 사회 전반에 걸친 분위기를 넘어 교육,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존재를 이해하고 평등한 구조를 찾는 변화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서울의 미술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2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서울에선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여성 도착하다’, 코리아나 미술관의 ‘히든 워커스’(『대학신문』 2018년 4월 8일자) 같은 주요 미술관 전시뿐만 아니라 ‘나는 페미니스트다’와 ‘탈코르셋 100인전’과 같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전시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런 전시들은 미술계의 변화를 보여준 동시에 단기간 열리고 마는 기획전이란 한계를 가진다. 이에 『대학신문』은 앞으로 서울의 미술계가 페미니즘을 주제로 지속적으로 다루길 바라며 현재 페미니즘 미술을 상설로 다루는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자리 잡고 있는 뉴욕을 찾아갔다.

세계 최초의 페미니즘 미술관

세계 미술의 시선은 파리에서 런던으로 다시 뉴욕에서 홍콩과 베를린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뉴욕은 이미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오랜 기간 세계의 시선을 받아왔다. 뉴욕은 동시대의 가장 유명한 미술 작품들뿐만 아니라 동시대 다양한 목소리의 작품을 찾는 것 역시 가능한, 한마디로 동시대 미술의 거대한 백과사전과 같은 도시다. 뉴욕엔 흑인 문화, LGBT 문화 등 여러 주제를 가진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미술관과 갤러리는 그 수가 상당하다. 뉴욕에선 1900년대 중반부터 많은 여성 단체가 활발히 움직였다. 1969년 래디컬 페미니스트 선언이 이뤄졌고, 뉴욕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인스티튜트(New York Feminist Artist Institute)와 같은 교육기관은 물론 게릴라 걸즈(Guerrilla Girls)와 같은 미술 단체들의 창작 활동들도 활발했다. 1980년대 페미니즘 백래시*가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며 여러 기관과 단체들은 문을 닫았지만, 오늘날 뉴욕에서 다양한 페미니즘 기관들이 다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신문』은 세계 최초의 페미니즘 미술관인 브루클린 미술관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미술 단체인 국립여성작가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Women Artist, NAWA) 그리고 뉴욕 곳곳의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아 뉴욕이 페미니즘에 가지는 관심과 그에 대한 미술계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뉴욕의 미술계는 미술관들의 다양한 형태의 전시와 기획프로그램 등을 통해 대답하고 있었다.

브루클린 미술관은 뉴욕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다양한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대형 미술관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페미니즘 미술을 위한 ‘엘리자베스 새클러 센터’(Elizabeth A. Sackler Center for Feminist Art)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최초로 ‘페미니즘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디너 파티’(Dinner Party), 게릴라 걸즈의 포스터 작업 등 여러 페미니즘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곳으로 그 의의가 크다.(사진①)(사진②)

(사진①) 엘리자베스 새클러 센터 1 전시실은 뉴욕 페미니즘 미술 단체, 작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전시하고 있다.

(사진②)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디너 파티’(Dinner party), 1979, 혼합매체. 엘리자베스 새클러 센터의 중요한 소장품으로 가장 유명한 디너 파티는 39명의 역사 속 여성을 기억하는 작업이다.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자리 잡기 이전에 여성이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돼 온 상황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 작업은 첫 소개와 동시에 비난을 받아 약 20년 간 전시되지 못했으나 2002년 뉴욕타임스에 의해 재평가돼야 할 작품으로 언급된 후 대중에게 다시 소개됐다. 캐나다, 독일, 영국 등 6개국 순회 전시 후 2007년부터 브루클린 미술관에 소장돼 상설 전시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새클러 센터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시각을 통해 다양한 사회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기획전시에서 전시되고 있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esia Gentileschi)의 ‘수잔나와 장로들’에 드로잉을 더 해 완성된 베티 톰킨스(Betty Tomkins)의 ‘아폴로기아’(Apologia)는 기존과 달리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조금 더 직설적인 이해를 시도한다.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와 아름다운 몸매로 인한 부도덕한 행위, 혹은 젠틸레스키가 끔찍했던 개인의 경험을 승화하기 위해 유사한 역사적인 사건을 그린 것으로 이해돼 왔다. 톰킨스은 이런 기존의 평가에 의문을 표한다. 톰킨스은 드로잉을 통해 ‘아름다운 몸에 대한 탐욕’이 아닌 기존의 이해가 놓치고 있는 그림 속 남성들의 행동 자체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톰킨스의 드로잉을 통해 관객들은 작품 속 남성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가시적으로 인정하게 되고, 그림의 내용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제점과 동시에 그림을 이해하는 사회의 기울어진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사진③)

(사진③) 베티 톰킨스(Betty Tomkins)의 ‘아폴로기아’(Apologia), 2018, 아크릴.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만난 유학생 황지윤 씨는 “브루클린 미술관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미술관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반 대중과 여행객뿐만 아니라 많은 뉴욕 시내의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단골 현장학습 장소로 브루클린 미술관을 찾는다. 이는 브루클린 미술관이 제시하는 다양한 시선 때문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즘 미술관으로 정의한 미술관답게 엘리자베스 새클러 센터의 전시뿐만 아니라 다른 기획 전시들에도 페미니즘의 시선이 담겨있다. 고대이집트 소장품 전시의 마지막엔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이집트의 여성 미라는 왜 여성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지 않을까?” 여성은 미라로 만들어지기 위해 남성으로 꾸며져 대부분 남성의 모습으로 표현된 관에 넣어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여성은 반드시 남성과 함께 묻히거나, 남성의 모습으로 묻혀야 했다. 브루클린 미술관은 이런 사실에 기반을 두고 내세와 현세에 초점을 둔 고대 이집트 미술품의 전시의 말미에 새로운 질문을 한 가지 더한 것이다. 브루클린 미술관은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들의 소장품들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질문을 찾고, 관객들에게도 전달한다. 익숙할 수도 있는 주제의 전시지만, 마지막에 미술관이 던진 새로운 질문에 관객들 역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도시의 관심과 미술계의 대답

뉴욕은 페미니즘의 이슈가 늘 끊이지 않는 도시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면에서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10월에도 뉴욕의 법원 앞에선 법관의 여성비하 발언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도시의 전반적 분위기는 미술계에 영향을 끼친다. 페미니즘 그리고 다양한 주제에 대한 도시의 관심에 미술계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와 작품 그리고 활동으로 대답한다.

국립여성작가협회(NAWA)는 1889년에 설립된 여성 작가 협회로 오늘날까지도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도 NAWA와 같은 여러 여성 미술작가 협회가 있다. 협회들은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독려하고, 해마다 정기 전시회를 연다. 뉴욕의 NAWA도 비슷한 활동을 하지만 서울의 단체들보다 더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협회는 맨하탄의 중심부에 위치한 가먼트(Garment) 지역의 직영 갤러리, 뉴욕 곳곳에 위치한 협업 갤러리와 온라인 갤러리를 통해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한다. 또한 가먼트 갤러리 지역의 아트 페스티벌에 매년 참가하며 여성 작가들의 무대를 끊임없이 넓혀나가고 있다. NAWA 갤러리에서 만난 관계자 수잔 씨는 “NAWA를 통해 미국의 젊은 여성 작가들이 과거보다 더 많은 전시기회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에선 미술관뿐만 아니라 작가들 스스로도 대중에게 여성 작가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소개하고, 미술계에서 입지를 단단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사진④)

(사진④) NAWA의 가먼트 지역에 위치한 갤러리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걸고 관객을 맞이한다.

부쉬위크의 작은 갤러리 ‘Space 776’에선 멕시코의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미술작품과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그리는 작가의 미술작품이 한 공간에 전시되고 있었다.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 제나 씨는 “뉴욕 미술계는 늘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활동이 일어난다”며 자신의 작품이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작품과 같은 공간에서 전시되는 것에 대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 작은 갤러리의 전시와 같이 오늘날 뉴욕의 미술계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삼는 것을 단순히 여성 미술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다른 주제, 분야와 끊임없이 연결하고 있다. 이런 시도를 통해 뉴욕의 갤러리들은 도시의 다양성을 만들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사진⑤)

(사진⑤) 부쉬위크 지역의 작은 갤러리 ‘Space 776’에서 열린 전시에는 젊은 멕시코 작가의 정치적인 목소리가 담긴 회화 작품과 아시안 여성 작가의 회화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고 있었다.

2018년 가을, 뉴욕의 주요 미술관에선 여러 여성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선 힐마 클린트(Hilma af Klint), 뉴뮤지엄에선 사라 루카스(Sarah Lucas)의 개인전이 크게 열렸다.(사진⑥) 뉴욕의 미술관들은 남성 작가 중심이던 미술계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긴 여성 작가들을 선정해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미술관들은 상설 전시에서도 여성 작가들에 대한 소개를 시도한다. 뉴욕현대미술관은 도슨트 프로그램 중 상설 전시에 포함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중점으로 돌아보는 세션을 한 달에 1~2회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월 세션에 참여했던 황지윤 씨는 “큰 시대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전시를 보다 보면 쉽게 지나칠 법했던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며 “미술관이 제시하는 작품 해석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쉽게 이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⑥) 뉴뮤지엄에서 사라 루카스의 개인전이 대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뉴욕의 미술계는 대중에게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고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페미니즘에 대해 미술계는 여러 활동을 보여주며 사회의 다양성을 지속하고, 도시를 더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뉴욕의 미술계가 다양한 시선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이제 다양한 시선을 갖게 된 서울의 사람들에게 서울의 미술계가 앞으로 더 풍부한 방법과 시선으로 대답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백래시: 사회구조의 변화로 다수 집단이 자신의 권력이 줄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그 변화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현상.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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