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 맺기
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 맺기
  • 대학신문
  • 승인 2018.11.1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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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영 전임상담사
관악학생생활관 학생상담센터

심리 상담사로서 내담자들과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관계’에 관한 문제다. 관계 문제는 부모, 연인, 친구와 같이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 역시 포함된다. 서울대 학생상담센터에서 4년가량 일하면서 느꼈던 가장 독특한 점은, 서울대 재학생들 가운데 상당수 학생들의 관계의 질, 특히 자신과 맺는 관계의 질이 그다지 견고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자신과 맺는 관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존감’ 또는 ‘자기애’라고 볼 수 있다. 어마어마한 입시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서울대 학생들을 볼 때마다 고고한 백조의 모습이 그려진다. 겉으로 보기엔 우아하고 멋진 존재지만 물 밑에선 쉬지 않고 짧은 다리를 움직이는 백조처럼, 타인들이 기대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느라 내적으로 상당한 공허함, 외로움을 느끼며 상담실을 내방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 역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방황했던 것 같아, 예전의 나의 모습이 그들에게 투영돼 안타까움이 더욱 커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애’(narcissism)는 그리스 신화 중에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이끌려 물에 빠져 죽은 목동, 나르시수스(Narcissus)의 이름을 딴 용어로, 정신분석학에서는 리비도의 힘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건강한 자기애는 건강한 자존감의 밑바탕이 되는 좋은 질료지만, 과도한 자기애는 수치심과 공허함, 고립감과 외로움을 자초하기 쉽다. 과도한 자기애를 지닌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엔 자신만만하고 웅대한 자기상을 가지고 있지만, 외부의 칭찬과 인정이 없는 독자적인 내적 세계는 빈껍데기처럼 공허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의 찬사와 인정을 갈구하고 있으며, 한편으론 특별하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이 될까봐 늘 두렵고 불안해하다가 실제로 자신이 기대한 이상적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는 지옥으로 치닫는 극심한 수준의 수치심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자기애적 상처(narcissi

stic injury)에 취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려서부터 외부의 인정과 찬사를 받으며 자라오다가, 서울대에 입학한 이후 자신과 비슷한 수많은 인재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평범함’은 어떤 이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똑똑함이나 우수함이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큰 축이었는데, 그 축이 사실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특별하지도 않다는 자기애적 상처는 입학 후 첫 학기에 흔히 경험하는 증상인 것 같다. 다행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자기애적 상처를 주위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서로 어루만지며 회복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족, 연인,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진실하지 못한 경우에는 웅대하고 거대한 자기상을 회복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끝없는 전쟁을 치르다가 심리상담센터를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담자들과 나는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연습을 시작한다. 우선 장점과 단점을 모두 포함한 자신의 고유한 특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미처럼 진하고 검붉은 향기를 가진 꽃이 되고 싶지만 사실 나는 하얗고 은은한 백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다음 단계는 백합이 얼마나 소중한 꽃인지 그 가치를 알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많은 단점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므로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가면 뒤에 숨지 않아도 되기에 한없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자 어빈 얄롬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어두운 인생의 바다에서 홀로 떠돌아다니는 돛단배들이며, 우리는 다른 배들의 움직임을 통해 빛을 본다. 가서 닿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리와 유사한 그들의 실존상황은 커다란 위안을 준다.”

인생이라는 고독하고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나와 같이 나약하고 외로운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있다면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는 진정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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