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목) 2019학년도 전기 대학원 합격자가 발표된다.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서울대는 미래에 연구를 수행해나갈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고 대학의 연구 역량 강화를 목표로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학원 정원을 늘려왔다. 하지만 연구중심대학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현재 서울대 교육 조직은 학과·학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대학원을 관리 및 운영하는 체계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 『대학신문』에선 그 누구도 관리하는 이 없는, 중심 밖의 서울대 대학원 교육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구멍 나버린 대학원 입학률, 신입생은 어디에?=‘연구중심대학’ 서울대는 BK21 등의 정부사업을 유치하며 학부 정원을 줄이고 대학원 정원을 늘려왔다. 그 결과 대학원 정원은 꾸준히 늘어, 1995년 대학원 입학 정원은 석사과정이 2,591명, 박사과정이 986명으로 총 3,577명이었지만, 2015년엔 2천 명가량 늘어나 석사, 박사, 석·박사통합과정을 합해 총 5,472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자료 출처: 대학알리미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학원 신입생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정원 미달 사태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특히 올해 학년도 대학원 모집에선 신입생 수가 200명가량 감소해 정원 대비 신입생 충원율이 79%대에 머물렀다.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에 올라온 자료엔 서울대 대학원(전문대학원 제외)의 신입생 정원은 지난해 4,305명, 올해 4,309명으로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정원 내 신입생 수는 지난해 3,629명이었던 것에 반해 올해는 3,412명에 머물렀다.

특히 이공계의 경우 전문연구요원 제도나 연구수당 등 대학원생들의 연구와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자연대, 공대 대학원 입학률은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 대학원 31곳 중 2018학년도 전기 모집에 석사 지원자가 없는 곳은 자연대 협동과정인 유전공학전공을 비롯해 총 4곳이었으며, 후기 모집의 경우 공대 조선해양공학과 등 5곳이었다. 박사 지원자의 경우 전기와 후기 모집 모두 지원자가 없는 학과는 각각 6곳이었다. 그나마 석·박사통합과정의 경우 지원자가 아예 없는 학과·전공은 전기 모집에 1곳, 후기 모집에 2곳이 있었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 대학원 정보=낮은 대학원 입학률 뒤편엔 장학금, 연구수당, 졸업 후 진로 등 대학원 교육 및 연구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복합적인 고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보들은 실제로 대학원에 들어가 보기 전까진 알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대학원 입학 경쟁률이나 중도 탈락률, 졸업 소요기간 등은 물론, 장학금이나 연구실 환경에 대한 정보는 대학 내에서도 제대로 축적돼 있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공개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학원을 경험해본 사람들만 알음알음 그 실태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제한된 정보로 인한 불편함은 결국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몫이 되곤 한다. 인문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는 A 씨는 “학부와 다른 전공의 대학원을 가고 싶지만, 장학금 등 관련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대학원 입시와 관련해선 입학 경쟁률 같은 것은 나와 있지 않은 등 여러모로 정보들이 폐쇄적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와 같은 불편함에 한 대학원 졸업생이 나서 대학원 진학 정보 공유 사이트 ‘김박사넷(phdkim.net)’을 만들었지만, 당초 이공계 연구실 정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인문사회계 등의 대학원 정보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김박사넷(phdkim.net)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검색해봤다. 해당 교수에 대한 재학생/졸업생 평가가 부족해 연구실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정치외교학부 이외에도 상당수 인문사회계 연구실 정보는 아직 이공계 연구실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상태였다. (사진 제공: 김박사넷)

일각에선 대학원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대학원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원 스스로 정보를 공개하고 평가를 받아야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의원회에서 ‘서울대 대학원 교육 실태’ 연구를 수행했던 노재선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대학원 관련 정보를 공개할수록 골칫거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 생각해 공개를 꺼릴 수도 있다”며 “그러나 정보 공개를 통해 대학원 운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향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 대학원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대포장’ 대학원 교육=지난달 18일 평의원회는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원 교육 및 연구 환경을 묻는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여름동안 이뤄졌던 ‘서울대 대학원 교육 실태’ 연구 보고서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간담회엔 대학원총학생회(원총)뿐만 아니라 외교학과 자치회, 생명과학부 자치회 등 각 대학원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된 자치기구 소속 대학원생들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 대학원생들은 입을 모아 ‘기대 이하였던 대학원 교육’을 지적했다. 원총 홍지수 사무총장(치의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수료)은 “대학원생들 사이에 강의의 질에 대한 불만이 심하다”며 “교수 혼자 발표하는 것 위주로 강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전공을 배운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생명과학부 대학원 자치회의 박인국 학생회장(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15) 또한 “대학원에 왔더니 강의 상당수가 학부 때 배운 내용을 다시 한 번 훑는 수준”이라며 “거기에 전반적인 강의의 수도 부족해 강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새로운 강의가 개설되는 경우도 드물다”고 말했다.

박사과정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 학내 상당수 학과엔 박사과정을 위한 커리큘럼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그 결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 대다수는 석사과정생들과 섞여 수업을 듣고 있다. 사실상 박사과정생들만을 위한 강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원총 이우창 고등교육전문위원(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수료)은 “서울대엔 박사과정을 위한 연구 및 교육 모델이 부재하다”며 “사실상 박사과정생들이 알아서 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연구지도 및 교육과정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불만 뒤엔 과대 포장된 대학원 교육과정이 숨겨져 있다. 현재 각 학과 별로 홈페이지에 대학원 강좌를 안내하고는 있지만, 이 중 실제로 열리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생명과학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대학원 전공 교과목의 경우 전공필수 과목을 비롯해 100개의 강의가 적혀있지만 이 중 2018학년도 2학기에 열린 강의는 같은 이름의 강의를 제외하곤 31개뿐이었으며, 국어국문학과의 경우 75개의 강의 중 이번 학기 개설된 강의는 17개였다. 박인국 학생회장은 “심지어 그나마 열린 몇몇 강의 중엔 학생 수가 부족해 폐강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원 교육, A/S가 이뤄지려면?=하지만 연구지도 및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이를 말할 수 있는 창구가 거의 없다보니 대학원 교육 환경 개선이 이뤄지기엔 한계가 존재한다. 대학원의 경우 지도교수와의 관계 때문에 섣불리 불만을 얘기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육·연구 환경에 대해 교수진과 소통할 제도적 통로가 제대로 뒷받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엔 본부 차원에서도, 각 대학원 차원에서도 대학원생을 전담하는 기구는 없다. 교육부총장이 대학원장을 겸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 별도의 조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입학 관련 업무는 입학본부에서, 행정적 업무는 학사과와 교무과 등에서 일정 부분 나눠 맡고 있다. 각 대학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부생의 경우 소통 통로로서 매학기 단과대 학장단과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를 열지만, 대학원생의 경우 자연대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학원 교개협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본부 및 대학원 차원에서 대학원생을 다루는 기구를 상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우창 전문위원은 “단과대나 전공에서 대학원생들이 느끼는 강의 수요나 교수의 지도에 대한 애로사항들이 있지만 학교 차원에서 이를 수렴하는 기구는 없다”며 “대학원생을 담당하는 기구를 설립하고 이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의원회 김병섭 회장(행정학과) 또한 “대학원 학생을 다루는 기구, 채널이 본부에 마련돼야 한다”며 “대학 차원에서 대학원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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