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지역 브랜딩,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리는 ‘전주’하면 ‘한옥마을’을 떠올리고 ‘보령’하면 ‘머드축제’를 떠올린다. 이처럼 ‘지역 브랜드’는 지역의 상품 및 축제, 나아가 지역 그 자체를 소비자에게 특별한 브랜드로 인식시키는 일종의 지역마케팅이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전통이나 특산물을 활용한 관광상품을 개발해 지역을 알리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런 지역 브랜드가 때론 지역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거나 그 방식에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가령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얻은 ‘카페거리’는 강릉부터 제주도까지 전국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지만, 점차 프랜차이즈 카페로 채워지게 됐다. 이 때문에 모습이 획일화돼 지역의 특색을 오히려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다양한 지역 브랜딩 사례를 살펴보며 앞으로 지역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선 넘으면 정색이야 삡!

지역의 특색을 살렸지만 그 방식에서 아쉬움이 남는 브랜딩이 있다. ‘소싸움 경기’(사진①)(사진②)와 ‘○○아가씨 선발대회’(사진③)가 그 예다.

청도에서는 매주 24경기의 소싸움 경기가 열리는데, 이는 우권(牛券) 발매 후 적중자에게 환급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싸움소 주인 박창식 씨는 “소싸움은 청도에서 시작돼 창녕, 김해 등지로 전파됐다”며 소싸움이 청도에서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소싸움은 경기 시간도, 관객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38초 만에 끝난 경기에 야유를 보내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소가 다친 건 아닌지 걱정하는 관객도 있다. 이러한 온도 차는 법에서도 나타난다.

사진①

동물권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지난 3월 ‘동물보호법’도 개정됐다. 현재 ‘동물보호법’ 및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서는 ‘도박, 광고, 오락, 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동물의 사육·훈련 등을 위하여 필요한 방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과 싸우게 하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등 잔인한 방식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을 학대행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소싸움은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에 대해 청도공영사업공사 김영표 차장은 “소싸움은 전통적인 민속경기”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사진②

하지만 지난 7월 7일에 열린 ‘동물축제에 반대하는 축제’를 기획한 김한민 작가는 “전통과 문화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며 동물권에 대한 감수성이 변했다면 전통도 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씨는 “국내 100여 개 동물축제의 90% 이상은 적자”라며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전했다. 한편 그는 관람객이 주로 가족과 함께 관람한다는 점을 들어 아이들에게 동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우려했다. 딸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전종현 씨(36)는 “우리만 즐거운 게 아니라 소도 즐거울 수 있는 축제를 원한다”고 말했다.

사진③

한편 지역 특산물의 홍보대사를 뽑는 ‘○○아가씨 선발대회’도 진행방식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여성만 참가할 수 있으며, 나이 제한이나 미혼과 같은 자격 조건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03년에 폐지됐다가 2015년에 부활한 ‘영광 굴비모델 선발대회’의 경우, 이와 같은 논란이 일어 1회 만에 다시 폐지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전세종연구원 윤설민 연구위원은 “홍보사절을 뽑는다는 점에서 ○○아가씨 선발대회는 일반 지역축제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선전성이 포함된 장기자랑처럼 프로그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역 입장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발기준이 특산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박성춘 교수(윤리교육과)는 “젊은 여성을 아가씨로 표현하고 이를 상업적인 것과 결부시킨 것”이라며 “이런 관행을 하루빨리 깨야 할 것”이라 전했다.

‘보기’보다 즐거운, 모두의 지역 브랜드

지역 브랜드는 관광객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단순히 외부의 ‘타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속에 ‘내부자’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관광객들은 ‘보는’ 것을 넘어 ‘체험하기’를 원한다. 소비자에게 이러한 체험을 제공하는 곳들이 있다.

사진④

10월 ‘진주남강유등축제’ 기간엔 밤이 돼도 남강변이 어두워지지 않는다. 유등축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이 강을 건너는 것을 저지하고 성 안팎의 사람들이 연락하기 위해 강에 유등을 띄운 것에서 유래했다. 진주성벽을 둘러싼 수많은 유등은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오르려는 일본군과 성을 지키고 있는 관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사진④) 축제 기간 진주성을 찾은 관광객들은 잠시 진주성 전투 당시로 돌아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⑤

가을의 서울과 수원, 화성에서는 전통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다.(사진⑤) 정조대왕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열린 ‘정조 효 문화제’에서는 창덕궁에서 출발해 사도세자의 무덤까지 향했던 능행차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천 명이 조선 시대의 의상과 소품들을 그대로 착용하고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에 일반인들은 저절로 이끌려 이들을 뒤따르게 된다. 이 행렬을 따라가던 정이삭 군(14)은 “이렇게 큰 행렬을 본 적이 없다”며 “저 행렬에 하나가 되는 것 같아 따라 걷는 것이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⑥

‘임금님표 이천 쌀’로 유명한 이천은 해마다 ‘이천 쌀 문화축제’를 개최한다.(사진⑥) 축제에선 가마솥 밥 짓기, 모내기 체험 등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체험의 장을 마련한다. 축제에 참여한 최명서 씨(65)는 “어릴 적 생각이 나 탈곡기 체험이 가장 즐거웠다”고 전했다. 이유경 씨(37)는 행사의 프로그램이 다양해 좋았다는 말을 전하는 한편 “고장 어르신들이 집 밖으로 나와 함께 즐길 기회인 것 같다”며 축제의 가치를 강조했다.

영양군 농정과 김인혁 주무관은 ‘○○아가씨 축제’가 전국적으로 줄어드는 이유가 “참가자 모집이 잘 안 돼 대회 개최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자체는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는 동시에 모두가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지속가능한’ 지역 브랜드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좋은 브랜드’와 ‘바른 브랜드’라는 두 가치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남윤재 교수(경희대 문화관광콘텐츠학과)는 “지자체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지역 브랜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바른 지역 브랜드’를 위해선 소비자 역시 스스로 그리고 지자체에 무엇이 바른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역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레이아웃: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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