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워킹클래스히어로’ 곽유진 대표를 만나다

옷을 깔끔하게 갖춰 입고 집을 나설 때 우리는 기분 좋은 책임감을 느낀다. 누구나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을 때 이 책임감 속에서 몸가짐을 좀 더 바르게 하게 되고 일의 능률도 올라가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을 되살려 사람들이 조금 더 즐겁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게 도와주는 특별한 작업복이 있다. 더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원단을 살피고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워크웨어 브랜드 ‘워킹클래스히어로’의 곽유진 대표(의류학과 석사과정·18졸)를 만났다.

곽유진 대표는 자신이 워킹클래스히어로에서 직접 디자인한 작업복 상의를 입고 일한다. 곽 대표는 “제복을 입고 일하는 문화가 발달한 일본 등 외국과 달리 아직 한국에선 작업복의 개념이 낯설다”며 “워킹클래스히어로가 성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작업복을 접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작업복에 빠지다

곽유진 대표는 고급 여성복 브랜드에서 근무하던 디자이너였다. 그러던 중 매 시즌 한정된 주제 속에서만 이뤄지는 패션 업계에 회의를 느꼈다. 그는 실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패션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 패션마케팅을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일’의 가치를 깨달았다. 곽 대표는 “계속 직장에서 일하다 처음으로 일을 그만두고 난 후 오히려 내게 일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일이란 단순한 경제적 도구 이상으로, 내 능력을 표현하고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식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일의 가치를 발견한 그는 실제 현장에서 자신의 일을 가치 있게 대하는 사람들에 매력을 느껴 그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자 했다. 이에 대해 곽 대표는 “일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 내가 만든 작업복을 입고 일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높아졌으면 했다”고 말했다.

‘워킹클래스히어로’란 이름은 노동자에 대해 노래하는 존 레논의 곡 ‘워킹클래스히어로’에서 착안됐다. 곽유진 대표는 “음악은 누구나 평등하게 들을 수 있는 예술이란 점에서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철학에 부합했다”며 “워킹클래스의 옷을 입고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나름의 ‘히어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브랜드 이름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농부, 셰프, 목수 등 다양한 직업의 특성을 세부적으로 고려한다. 이 브랜드의 목표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입고 일할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이다. 곽 대표는 “작업복은 범주가 굉장히 넓다”며 “실내이건 야외이건, 사무직이건 육체적 노동이건 어떤 일이든 일을 할 때 주로 입는 모든 옷이 작업복”이라고 설명했다. 워킹클래스히어로는 직접 현장을 찾아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눈 후 적절한 디자인과 소재의 작업복을 만들어낸다.

사람을 존중하는 옷

워킹클래스히어로에서 만드는 작업복의 가장 큰 가치는 ‘존중’이다. 그렇기에 워킹클래스히어로에선 옷을 직접 입을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옷을 디자인한다. 곽유진 대표는 “워킹클래스히어로의 옷에 담긴 존중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며 “하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갖춰진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존중한다는 의미고, 또 하나는 타인들이 그 옷을 입고 일을 하는 이들을 존중한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존중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아내기 위해 워킹클래스히어로의 옷은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한다. 작업복인 만큼 실용적이기도 해야 하지만, 갖춰진 옷으로부터 오는 책임감이 이런 ‘존중’을 끌어내기에 미적인 요소도 고려하는 것이다.

기능과 아름다움을 하나의 옷에 구현하기 위해선 섬세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작업복의 옷깃 하나, 넥 라인 하나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서비스직을 위해 디자인된 상의엔 상체를 숙일 때 불편함을 겪는 여성들을 고려해 흘러내리지 않는 스퀘어 넥 라인을 선택했다. 또한 먼지가 많은 건축 현장에서 겹쳐 입는 외투엔 다른 옷 위에 입기 쉽도록 벨크로를 사용했고,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해 지퍼 달린 핸드폰 주머니를 추가했다. 곽유진 대표는 “작업복은 단순히 저렴하고 편안한 옷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을 할 때 기능적 측면과 디자인적 측면 모두에서 ‘잘’ 만들어진 옷을 입는 것은 작업의 효율 부분에서도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더 많은 영웅을 위해

워킹클래스히어로는 주문받은 작업복을 만들 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로서 시즌마다 컬렉션을 내기도 한다. 곽유진 대표는 “이번 가을 첫 컬렉션을 만들 때는 ‘다용도’에 중점을 둬 노동자라면 누구든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며 “그러다 보니 각 직업만의 특성보다 내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반영됐고, 거친 느낌이 많이 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컬렉션을 완성한 후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실제적인 조언을 받았다. 이 조언을 바탕으로 곽 대표는 다음 컬렉션에 도전하고 있다. 곽 대표는 “다음부터 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한 옷을 통해 그들을 돋보이게 해주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곽유진 대표에겐 워킹클래스히어로를 사회에서 일을 하는 ‘영웅’들을 위해 더 좋은 작업복을 만드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곽 대표는 “그동안 두꺼운 소재를 주로 사용했는데 일을 하다 보면 덥게 느껴진다는 반응들이 있었다”며 “이제 린넨 등 가벼운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직접 원단을 짜서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곽 대표는 워킹클래스히어로라는 브랜드 자체의 방향성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아직은 소규모로 운영 중이지만 장차 브랜드를 더 확대해서 고급 라인을 만들고, 그 옷들은 노동자들이 대여 형식으로도 접할 수 있게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지금 워킹클래스히어로에선 많은 사람을 위한 작업복을 만들어내느라 바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곽유진 대표는 노동자 한 명 한 명을 만나고, 그들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영혼이 채워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대의 영웅들이 좋은 옷을 입고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애쓰는 또 다른 영웅의 힘이 계속되길 바란다.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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