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폐지의 새로운 발견, ‘러블리 페이퍼’에서 시작하다

추운 날이면 어떤 사람들은 새빨개진 손으로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그리곤 그들은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찾은 종이들을 차곡차곡 쌓아 낡은 수레에 담는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모습이다. 이런 폐지 줍는 노인들을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노고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바로 ‘러블리 페이퍼’다.

러블리 페이퍼의 시작은 사소한 일상에서부터였다. 평소 자원 재활용에 관심이 많던 러블리 페이퍼 기우진 대표는 자신의 헌 책과 옷을 팔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힘겹게 끌고 있는 노인을 보게 됐다.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기 대표는 2013년에 ‘종이 나눔 운동 본부’ 활동을 시작했다. 종이가 많이 버려지는 단체로부터 기부 받은 폐지를 돈으로 바꾼 후, 이 돈을 노인들에게 지원하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이 활동은 폐지 가격이 불안정해지면 기부금에도 변동이 생긴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기 대표는 고민 끝에 사회적 기업 ‘러블리 페이퍼’를 창립했다. 그는 “어른들에게 비싸게 산 폐지로 특정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기업화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러블리 페이퍼의 사회적 가치와 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준 사람들 덕에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러블리 페이퍼는 ‘사랑스러운’(lovely)이 아닌 ‘재활용을 통해 사랑을 전한다’(love:RE)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이름대로 러블리 페이퍼가 재생산하고 있는 사랑은 폐지를 줍는 일을 노동으로서 인정하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한국환경공단이 지난달 발표한 「10월 재활용가능 자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폐골판지 시가는 1kg에 평균 68원 남짓이다. 러블리 페이퍼는 노인들이 주워온 폐지를 시가의 20배 가격을 주고 구매한다. 기우진 대표는 이에 대해 “노인들이 주운 폐지의 가치가 최저 임금에 준하도록 하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구매한 폐골판지는 캔버스로 업사이클링된다. 폐골판지를 몇 겹 덧대고 그 위에 캔버스 천을 감싸는 형태다. 이 캔버스 위엔 재능을 기부한 작가들의 캘리그라피나 일러스트가 그려진다. 러블리 페이퍼는 이렇게 탄생한 ‘페이퍼 캔버스 아트’를 판매하고 남은 돈으로 다시 폐지를 구매한다. 재능 기부 작가로 참여했던 천수빈 씨(17)는 “처음엔 학교 동아리 차원에서 참여했던 터라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작품을 완성한 후엔 내 작품이 가치 있게 쓰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 몹시 뿌듯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그들의 노력은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시선을 달리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기 대표는 “폐지 수집을 하나의 직업군으로 보면 그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없다”며 “그들을 돕긴 돕되 시각과 방향이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폐지 줍는 노인을 단지 우리가 도움을 줘야 하는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라며 “폐지를 줍는 활동을 캔버스 아트 제작의 한 과정에 편입함으로써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러블리 페이퍼는 노인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그들의 경제적 빈곤과 정서적 빈곤을 함께 해결하려 한다. 노인들을 돕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종이 나눔 운동을 하고 노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생필품을 전달하는 게 그 증거다. 기 대표는 “단지 경제적인 지원뿐만이 아니라 노인들과의 관계를 지속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러블리 페이퍼가 어르신들을 대하는 방법”이라며 “상대를 폐지 줍는 사람이 아닌 그저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우리나라의 노인들이 경제적 빈곤과 정서적 빈곤을 함께 겪는데, 경제적 빈곤에 비해 정서적 빈곤에 대한 지원책은 미미하다”며 “러블리 페이퍼는 폐지 재활용을 넘어 함께 영화를 보거나 평상을 놓는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관점을 시혜에서 호혜로 바꾸는 것이 러블리 페이퍼의 궁극적 목표다. 기우진 대표는 “현재 러블리 페이퍼의 활동이 인천 부평구에만 집중돼 있다는 한계도 있고, 하나의 기업으로서 종종 어떻게 더 도울까보다 어떻게 상품을 더 팔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속상함도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블리 페이퍼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만큼 노인 빈곤문제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처럼 사회적 기업으로서 러블리 페이퍼는 계속해서 사랑을 재생산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노인의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실천하려는 러블리 페이퍼의 노력만큼 ‘사회’에 대한 사랑도, ‘기업’으로서의 발전도 놓치지 않길 바라본다.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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