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원 前 헌법재판관을 만나다

2017년, 봄이 다가올 무렵 헌법재판소(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했다. 탄핵이 청구되고 파면이 선고되기까지 전 국민의 눈은 헌재를 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특히나 큰 관심을 받았다. 주심을 맡아 냉철한 판단과 날카로운 질문으로 헌법을 수호하는 법관의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강일원 전 재판관은 올해 법복을 벗기까지 33년 동안 판사의 직을 수행했으며, 최근엔 세계적인 헌법 자문 기구인 ‘베니스 위원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 전 재판관은 지난 16일(금) 법학강의동(15-1동)에서 인권을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대학신문』은 강연과 그 이후 인터뷰에서 강 전 재판관의 이야기를 들었다.

흥미로 시작해 보람으로 이어온 길

법정 밖에서 만난 강일원 전 재판관은, 그럼에도 재판관의 모습이었다. 법복이 아닌 정장을 입고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지만, 몸짓과 말 한마디에도 판사로서 지켜온 신념과 경험이 담겨있었다.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에도 언행을 삼가는 것. 강일원 전 재판관은 삼갈 신 자에 홀로 독 자로 이뤄진 이 단어를 판사로서의 좌우명이라 설명했다. 그의 좌우명은 법관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됐다. 강 전 재판관은 법관의 제일 덕목이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물음에 공정성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덧붙여 “법관은 스스로 공정한 것을 넘어 공정하게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사의 판결로 재판의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불리한 결정을 받은 사람이 결과에 승복하기 위해선 판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때문에 그는 일상에서 신독을 잊지 않았다. 강 전 재판관은 “사석에서도 항상 사건 당사자들이 나를 지켜본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회상했다. 그리곤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다면 판사로서 부족했을 것”이라며 자신은 좌우명 덕에 늘 떳떳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신독의 삶은 가볍지 않았다. 판사로서 힘들었던 기억을 묻자 강일원 전 재판관은 “법복을 벗고서야 판사 생활 그 자체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느꼈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그가 법관이라는 평생의 업을 택한 까닭은 즐거움이었다. 강 전 재판관은 “꼭 법학을 공부하리라 생각지 않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도 판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떠올렸다. 사회계열로 대학에 입학해 여러 학문 사이에서 고민한 그는 “판결과 집행이 이뤄지는 현실적인 면”에서 법학만의 매력을 느꼈고 결국 23살의 이른 나이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그는 판사의 길이 아니라 연구하고 공부하는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반년의 시보* 생활을 겪으며 생각을 달리했다. 강 전 재판관은 “판결 초고를 작성하고, 그 초고가 실제 판결이 되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설명했다. 뚜렷한 꿈을 갖진 않았었던 그는 그렇게 법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강일원 전 재판관이 묵묵히 길을 따를 수 있었던 데엔 법정의 보람도 한몫했다. 강 전 재판관은 본인이 주재한 군사정권 시절의 한 사건을 소개했다. 당시 피고인 여섯 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섰고 그는 무죄를 결정했다. 그는 “무죄를 선고하자 그분들이 울면서 가족과 기뻐했다”고 당시를 기억하곤 “피고인의 억울함을 인지하고 증명한 끝에 무죄를 판결하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기본권 수호, 헌법재판관의 소명

강일원 전 재판관은 2012년부터 올해 9월까지 헌법재판관의 직을 수행했고, 임기 동안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힘썼다. 그 예로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이 헌법 불합치라 판단하고 간통죄에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법재판의 의미와 헌법재판관의 역할을 묻자 강일원 전 재판관은 기본권의 수호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헌법엔 통치 구조를 정하는 규범과 기본권 보장을 규정한 규범,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하곤 그중 후자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렇기에 그는 헌법재판관의 핵심적인 역할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관은 기본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용기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보기에 한국의 기본권 보장 수준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강 전 재판관은 “대한민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국민이 선진국의 국민보다 기본권을 덜 보장받을 이유가 없다”며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UN에서 체결된 인권 조약 대부분에 한국이 가입했음에도 헌재나 대법원, 많은 학자가 그 조약의 효과를 낮춰 본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국제 사회의 인권 기준을 경시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한 것이다. 강 전 재판관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예로 들었다. UN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이 인권 조약 위반이라 판단했고 한국 정부에 수차례 해결을 권고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올해 헌재가 전향적 결정을 내리기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강 전 재판관은 이를 “대법원과 헌재가 조약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헌법 제37조를 읊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며 인권 조약이 담고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인권 조약에 규정된 인권 중 우리 헌법에 없는 것은 거의 없다”고 짚고는 기본권을 국제적 기준과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에 우려를 전했다.

구체적으로 강일원 전 재판관은 표현의 자유 증진과 불명확한 형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현행법상 모욕과 명예훼손에 관한 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범죄 요건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채 처벌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미투 운동에서 여성의 고발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재로 위축됐다”며 “표현의 자유 보장에 있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아쉬워했다. 실제 강일원 전 재판관은 모욕죄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모욕의 범위와 규제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더불어 강 전 재판관은 불명확한 형법 규정을 두고 “이렇게 불친절한 법이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강 전 재판관은 범죄와 형벌이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 비춰봤을 때 많은 형법 조항이 명확하지 않은 규정을 두고 있어 위헌적 소지를 안고 있다고 봤다. 예컨대 형법 제355조 2항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를 ‘배임죄’라 규정한 조문을 봤을 때, 정확히 어떤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 국민 보편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겠냐는 문제 제기다.

하늘을 보되 땅에 발 딛다

강일원 전 재판관은 이상을 제시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강 전 재판관은 현실의 구체적 대안을 두고 그 가능성을 가늠했고, 현실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우리나라 사법이 나아갈 과정을 바라봤다.

강일원 전 재판관은 기본권을 논하며 당장 개선이 가능한 분야와 단계적 개선이 필요한 분야를 구분하고 있다. 그는 “자유권, 평등권에 있어 국제 사회와 우리의 기준이 다를 수 없고, 달라선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국가 재정이 투입될 분야에선 하루아침에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했다. 예컨대 헌법이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국가 복지 예산과 밀접하게 연관돼 당장 확실한 증진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재 논란이 되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조약’이 말하듯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난민 유입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필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전했다. 다만 현실에 묶여 방향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강일원 전 재판관은 한국 사법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아도 된다며 개선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전 재판관은 한국 사법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국제 사회에서 한국은 뒤지지 않는 사법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겪고 군사 독재의 시기를 거쳐 왔다”며 사법이 거친 질곡과 짧은 역사에 비춰 봤을 때 한국 사법은 큰 발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더불어 한국의 사법 제도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며 “국민께서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그는 개선의 예로 로스쿨 제도와 법조 일원화를 들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오직 법만 공부한 판사가 임용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고, 경험 있는 판사를 양성하기 위해 법조 일원화를 시행했다는 것이다. 강 전 재판관은 제도 개선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제도의 손질이 이뤄지고 있으니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신중한 논의를 이어가자는 주장이다.

“입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대 강연에서 산적한 기본권 문제를 다룰 방향을 묻자 강일원 전 재판관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기본권은 정부가 국민에게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침해될 수도 있지만, 입법할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도 침해될 수 있다”며 입법부가 선제적으로 대처해주길 당부했다.

*시보: 어떤 관직에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에 실제로 그 일에 종사하여 익히는 일

사진: 손유빈 수습기자 yu_bin072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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