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박물관이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외국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 거대한 공룡의 뼈를 연상할 것이다. 또, 자연사 박물관이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그 무엇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공룡처럼 사라진 과거의 생물표본을 발굴하여 전시하는 것도 자연사 박물관의 한 임무이기는 하겠지만, 사실 자연사 박물관은 현대사회와 과학기술에 있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할을 담당한다. 다만, 사회에서 자연사 박물관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외국에서의 일이고 우리나라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왜? 우리나라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자연사 박물관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OECD 국가 중 한국은 국립 자연사 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나라이다. 물론 자연사 박물관을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그 투자에 대한 단기적 이득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사 박물관은 한 나라의 자연과학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고 또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 구실을 한다.외국의 잘 꾸며진 자연사 박물관을 가 본 사람이면 아마도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을 한 일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와 어린 딸, 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화석이나 표본 앞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하며 노트에 적는 장면은 일상적인 일이다. 때로는 그룹으로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때로는 혼자서 깊은 사색을 하며 우주와 지구,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 대하여, 그리고 태양계와 은하계, 무한한 우주공간에 대한 상상과 꿈을 키우는 곳이 바로 자연사 박물관이다. 과학자는 꿈을 먹고 산다. 과학입국은 꿈을 키우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교육열기와 외국의 흉내를 내는 기술로 경제발전을 이끌어 올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창의력 있는 과학기술이 확보되지 않고는 더 이상의 도약이 어렵다고 본다. 창의력은 수능시험이 아닌 꿈에서 나온다. 꿈을 키우는 자연사 박물관 없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고자 하는 것은 마치 등산장비 없이 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것과 같지 않을까.국립 자연사 박물관뿐 아니라 각 지방마다 지역의 자연사 박물관이 있어야 하고, 대학에도 있어야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 서울대학교에 자연과학 연구와 교육의 필수기관인 자연사 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나마 초보적인 자연사박물관을 운영하는 곳은 국립대학이 아닌 이화여대나 경희대, 한남대와 같은 사립대학들이다. 모두가 유행따라 첨단과학만을 쫓아갈 때, 서울대학교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다음 세대의 꿈을 키우고자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강의와 연구에 지쳤을 때, 실험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때때로 좁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싶을 때, 찾아가서 영원한 시간과 가없는 우주공간에 대한 꿈과 상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 서울대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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