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렇게 팔팔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지난주 이 시간엔 방 침대에서 몸져누워있었다. 독감에 걸렸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금방 나았을 텐데 이상하게 열도 안 내려가고 기침도 계속 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A형 독감이란다. ‘예방주사 맞을걸’하고 후회하고 있는 찰나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5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순간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사실 독감에 걸렸다는 것보다 5일간 집에서 나가면 안 된다는 사실이 더 곤란했다. 그냥 마스크하고 신문사에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약국에서도 병원에서랑 똑같은 말을 들었다. 지난주부터 독감이 유행하고 있으니 집에서 나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온 후 진짜 5일 동안 쉬어도 되는 건가 해서 인터넷에서 ‘A형 독감 격리’로 검색을 해봤다. 독감 때문에 쉬면서 고생한 이야기도 많이 보여 일단 쉬어도 되긴 되는구나라고 안심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독감에 걸렸는데도 제대로 쉴 수 없다는 글들이 많이 보였다. ‘회사에서 병가를 안 준다’ ‘회사에서 이틀만 쉴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하냐?’라는 내용의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글들을 보니 일단 근무 조정을 통해 쉴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운이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최소한 쉴 수 있는 내 경우에 감사하며 5일간 쉬기로 했다.

우리 사회는 아파서 쉬는 것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앞에서 말했던 병가를 받기 힘들다는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복지 수준에 비해 비교적 발달해있다고 평가되는 건강보험의 경우에도 상병수당*에 대해선 도입은 커녕 아직도 논의조차 잘 안 되고 있다. 제도적 측면뿐만 아니라 의식적 측면에서도 아파서 쉬는 것을 도덕적 해이로 여기는 풍조가 강하다. 그렇게 생산성과 효율성을 부르짖으면서 아픈 사람을 일하게 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이런 풍조에선 설령 제도상 쉴 수 있는 경우라도 아파서 쉬는 것에 대해 당사자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의사가 쉬어야 한다고 말을 해도 결국 인터넷을 찾아보고 그제야 쉬어도 되겠구나 하고 안심했던 나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 봤던 일본 만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열이 조금 나서 어머니가 오늘 학교 쉬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당시 이걸 보고 어린 나이에도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다. 독감도 아니고 열이 조금 나는데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다니. 물론 이게 사실을 반영한 것인지는 잘 모른다. 여하튼 그 주인공은 온종일 푹 쉬고 오후엔 병문안 온 친구랑 즐겁게 이야기한 뒤 다음날 깨끗이 나아 다시 학교에 갔다. 만화지만 정말 만화 같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부터 감기 때문에 쉬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학교와 기숙사에서 집단생활을 했던 탓에 고등학교 때는 환절기 때마다 감기에 걸렸다. 하지만 당연한 듯이 학교에 갔고 결국 코감기, 목감기, 몸살 등 온갖 감기 다 겪고 나서야 나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경험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교실에 기침 소리가 났었고 그래도 다들 학교에 나왔다. 한창 공부할 학생이 감기 따위로 결석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얼마 전 학생들이 독감으로 학교는 쉬지만, 학원은 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런 걸 보면 지금도 예전과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결국 이렇게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아픔을 참는 훈련을 하는 건 아닐까?

*상병수당: 질병에 걸려 휴가나 입원 등으로 소득을 상실할 경우 소득의 일정 수준을 보장해 주는 제도


여동하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