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자유전공학부·14)

놀고만 있냐는 물음에 오기가 불끈 솟아나 당선 사실을 실토해버렸고, 어머니께서는 시를 빨리 보여 달라고 명령하셨다. 보내놓고 나는 선고(宣告)를 기다렸다. 책이 잡히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 전화가 왔다.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알겠는데 어려워서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백번은 읽은 것 같다고. 이건 시인으로서 실패한 거 아닐까,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단어와 문장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드렸다. 동전이랑 지갑은 이런저런 의미고 이 문장은 이런 뜻이라고. 이해 가지요? 그래, 니가 나한테 안 태어났으면은 더 멋지게 했을랑가 싶어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두 가지 마음의 갈등이었다. 에이 왜 그런 생각을 해요, 그건 220동 계단에서 혼자 쭈그려 앉아 울다가 끄적인 글일 뿐인데요.

어쨌거나 이건 내 자랑을 하면서 어머니를 때리는 모양새였다. 글을 쓴다면서 생각하는 거라곤 늘 어머니뿐이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어머니를 팔아먹어야만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불효녀가 되어버렸나 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께선 농담조로 내 이름(孝貞)을 족보에서 파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사실 나야말로 시를 써서 어머니를 지갑에 넣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나도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걸.

나름대로 큰 물꼬가 트였음에도 이야기는 다시 예상된 진로로 흘러들었고, 나는 언젠가는 직장을 구하겠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한 시간 후 깜깜한 교실에 갇힌 그림자 하나를 보고 나는 그 타협을 부정하는 글자들을, 최대한 빨리 ‘성공’ 해야 한다고 휘갈겨 썼다. 결국 우리는 영원히 반복하는 걸까. 그보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왜 항상 시시껄렁한 구덩이로 빠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것보다도 어머니는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애교라곤 몽땅 털어버렸고, 고향도 조국도 떠나와 버렸다. 여기서 나는 뭘 배워가야 하는가? 아픈 가족들을 치료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들의 생존 방식은 하나뿐일까.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 아니, 고민보다는 발악을 해야 할 차례일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시를 애정있게 들여다봐 주신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응원해주는 애인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시를 가르쳐주신 신범순 교수님, 고맙습니다. 엄마, 사랑하고 감사해요. 말뿐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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