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부문엔 42명이 응모했다. 그 가운데 4명의 작품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것이어서 그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그 중에서도 10번과 15번(심사위원에게 전달된 원고에서 이름을 볼 수 없었고 모두 번호로 대체됐다)이 가작과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두 명의 심사위원이 이 둘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견도 없었다. 6번과 32번도 상당한 시적 역량이 보여서 이들과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었다. 6번의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 삼키다’와 ‘절벽 위 봄빛이 휘황한 숲의 나무’ 등도 주목할만 했다. 시적인 어휘력과 묘사력은 충분한데 그 화려함보다 더 절실한 생각과 삶에 대한 주제가 녹아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32번의 ‘아보카도’와 ‘백목련’ 등도 나름의 독특한 개성적 사연을 자신만의 언어로 시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개성’이 좀더 광대한 영역을 빨아들여 시적인 섬세함을 더 거칠고 숨가뿐 세계 속에서 단련시켜야 할 것이다.

10번은 ‘털귀덮개의 노인’과 ‘지갑’ ‘짜미’ 등이 읽힌다. ‘짜미’는 발레리 풍의 ‘바람이 분다 살아보아야 하겠다’로부터 시작했다. 어떠한 ‘바람’이 우리를 살도록 해줄 것인가? 이 단순한 그러나 진지한 질문은 흥미있는 스토리와 긴박한 드라마를 동반한다. 그러나 집중시키고 모든 것을 녹여 통일시킬 단순함이 시에선 있어야 하고 그것만이 독자를 빨아들인다. ‘지갑’이 좀더 그러한 면에서 성공적이다. ‘동전’을 의인화해 친근하고 정답게 묘사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 문제로 아귀다툼하는 점차 각박해져가는 삶 속에서 이렇게 ‘돈’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며, 어머니와 딸의 일상을 따뜻한 동화적 빛으로 감쌌다. 옛 「공방전」 같은 고전소설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현대 문명의 각박함을 감싸안는 고전적 향취를 느끼게 된다. 우수작이 될 만한 품격이 있는데 좀더 단련하라는 의미로 가작을 주기로 했다.

대상으로 선정된 15번은 응모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7편을 냈는데 그 모두 고르게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안심하고 뽑을 수 있었다. ‘박물관의 혹등고래’는 고래의 주검을 경쾌하게 묘사하고 박제된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을 대비시켜 진정한 슬픔의 문제를 제기한다. ‘투란도트로 가는 열차’도 재미있게 읽혔다. 인생과 역사의 열차 속 무신론자와 순교자의 대비가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이 유기적인 스토리로 표현되는 대신에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메탈릭 사과꽃 멜로디’와 ‘손목 태엽’이 좋다. 한 시인의 작품인데 둘이 전혀 다른 풍모를 띤다. ‘손목 태엽’은 일종의 우화적 시이다. 외딴 창고의 어떤 기계가 있는데 손잡이엔 어떤 알지 못할 사람의 손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 기계는 반대쪽으로 도는 세계의 동력장치라고 시인은 말한다. 나와는 반대로 도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며, 내가 그 기계의 손과 악수할 때 진정으로 그 존재의 눈을 보고 그 마음과 소통하며 그 기계를 돌릴 수 없는 상황이 제시된다. 미묘한 엇갈림과 모순을 흥미있는 우화적 어법으로 전개한 것이다. ‘메탈릭 사과꽃 멜로디’는 불온한 헤비메탈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광적인 스피드 속에 몸을 맡긴 존재들에 대한 노래다. 그들 모두 고립돼 있고 고독하고 불안하며 무엇인가 갈망한다. 시 전체는 모두 격렬한 리듬과 속도감 속에서 흘러가는 이미지와 말들과 소음과 외침이다. 이야기들은 모두 조각조각 단절된 파편들의 불안하고 유동적인 배치 속에서 흔들린다. 빨간 사과를 잔뜩 싣고 거리를 달리는 행상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 시는 이 숨가쁜 시대의 괴물적인 속도의 전쟁터인 도로를 부각시킨다. 사람들은 이 속도의 시대에 날카롭게 날아드는 칼날들을 두려워하며, 자신들을 단단하게 잠군다. 거울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이 두들겨대는 음악은 이 거친 세상에 대한 반항이지만 거기에는 어떤 구원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멜랑콜리아’의 대파국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 속에서 모든 것이 우울하다. 이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신범순 교수(국어국문학과)

윤여탁 교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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