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자유전공학부·16)

소설과의 첫 만남이 운명적이었다면 보다 극적이었을 것 같다만, 어릴 적 나는 책에 그닥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 앞 문고리에 걸려있던 책 묶음들은 지루한 인상으로 남아있을 뿐. 소설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순수하지 않다. 어릴 적 나를 ‘00초 다독왕’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00초 다독왕은 책에 대한 순수한 열망보다는 그저 도서관 소식지 다독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치기로 시작됐다. 다독왕이 되기 위해 매일 두 권씩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물론 두 권을 다 읽은 적도 있었지만, 안 읽은 채로 반납함에 넣은 적도 많았다. 그렇게 도서관을 습관처럼 드나들다가, 습관처럼 소설을 사랑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노력으로 책을 사랑하게 됐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책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비단 내 노력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의 공기, 사람, 그리고 상황이 맞아 떨어졌기에 책을 사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이를 놓치곤 한다. 오로지 나의 노력만으로 성적을 잘 받아서 대학에 입학했고, 또 상을 받았다는 자만감에 취해있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착각은 무서운 칼이 돼 실패를 재단하기도 한다. ‘노오력이 부족해서’라는 말로 내 자신을 채찍질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꽤 많은 시간을, 그리고 지금을 노력의 굴레에서 살아왔다. 무언가 내가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또 목표를 달성할 때 그 환상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그래서 다소 힘이 들었다. 주위 다른 사람들도 아파하는 듯했다. 노력의 굴레에서는 하염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 나를 위로하고 싶었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랐다. 이렇게 나는 그저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갈 것이다. 나의 이야기에 색감을 더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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