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대학문학상 희곡 시나리오 부문 우수작
제60회 대학문학상 희곡 시나리오 부문 우수작
  • 대학신문
  • 승인 2018.12.02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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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일(산림과학부·12)

S#1. 도로 (낮)

움직이는 택시 안.

뒷자리에 앉아 입을 다문 채 창밖을 내다보는 성인(27, 남).

두꺼운 잿빛 코트를 입고 있다.

눈이 내린 도시 풍경.

택시기사는 앞에서 묵묵히 운전한다.

햇살이 성인의 얼굴을 반쯤 비춘다.

창에 습기가 껴있어 바깥 풍경이 흐릿하다.

고정된 피사체 없이 창에 눈을 두었던 성인이 창을 닦고 창밖의 무언가에 초점을 맞춘다.

인도 위에서 고양이가 찻길 방향으로 달리고 있고, 젊은 여자가 고양이를 뒤쫓고 있다.

검고 긴 생머리에 붉은 코트를 입었다.

고양이가 향하는 차도에서는 승용차와 큰 화물차가 달려오고 있다.

성인, 왼손으로 문손잡이를 꼭 쥐었다가 다급하게 창문을 내린다.

창문이 열리자 바람소리와 찻소리로 차 안이 시끄러워진다.

성인 어... 어...

차도에 거의 다다른 고양이.

C.U. 안절부절못하는 성인의 얼굴.

E.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오는 택시기사의 외침.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택시기사 ...학생! 학생!

기사의 부름을 듣자 화들짝 놀라 몸을 앞으로 돌리는 성인.

성인 예?

택시기사 (높아진 목소리로) 다 온 거 아니에요? 여기 내려주면 되지?

성인 (정신없는 목소리로) 예, 예... 저 앞에 세워주세요.

갓길에 택시가 서자 문을 열고 내려 커다란 책가방을 메는 성인.

택시는 그가 문을 닫자마자 출발해버린다.

택시를 잠시 바라보다가, 급히 택시가 온 방향을 돌아보는 성인.

저 멀리 고양이가 뛰어든 자리에 승용차와 화물차가 멈추어 있다.

승용차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

주위 인도에는 인적이 없다.

멀찍이서 사고현장을 바라보는 성인.

고양이를 뒤쫓던 젊은 여자가 울면서 차들을 바라보다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보인다.

성인,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며 도로변의 건물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 앞으로 걸어간다.

어두운 건물 현관으로 들어서 흐려지는 그의 뒷모습.

잠시 후 화면에 그려지는 타이틀 ‘원’.

F.O.

S#2. 고양이 카페 (밤)

C.U. 고양이 선반에 놓인 방석 위에 앉아 있는 스코티쉬폴드 고양이.

눈을 깜빡이며 하품을 한다.

자신의 앞다리를 혀로 그루밍하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서너 마리의 고양이가 일시에 문 쪽을 바라본다.

병호 어서 오세요~

문을 바라보며 인사하는 병호(27, 남).

문으로 들어오는 성인.

얇은 외투를 입고 있다.

눈을 마주치자 서로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병호 왔어, 브로~ 일찍 왔네?

성인 응. 피곤해서 공부가 안되네. 요즘 점점 심해져.

병호 (근엄한 말투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 쉬엄쉬엄해. 뭐 마실래?

성인 (피식하며)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얼음 하나만 넣어줘.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는 병호.

성인은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주머니에서 폴더폰을 꺼내며 매장 안을 둘러본다.

카페 안에는 십여 마리의 고양이와 두 테이블의 커플 손님이 있다.

병호 (커피를 만들며) 밤에 맥주 고? 나 퇴근할 때까지 쉬고 있어.

성인 됐어, 들어가서 공부해야 해.

병호 너 그렇게 안 쉬고 하다가 또 방전될라. 작년에도 잘 하다가 막판에 몸살 나서 시험 망쳤잖아.

병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성인.

성인 조급해서 그래, 이 년째 공부 중인데 점점 나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병호 공부가?

성인 공부도 그렇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야. 아무것도 못 하고 이 년 동안 침식되는 느낌.

병호, 성인에게 커피를 가져다주고 맞은편에 앉는다.

병호 지랄. 너도 좀 꼴리는 대로 살어. 재밌는 것들 즐기며 해야 공부도 더 잘되는겨.

성인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재미는 나중 문제야, 지금 그런 건 사치야.

고양이 한 마리가 성인의 발치로 와서 몸을 비빈다.

성인은 몸을 숙여 고양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병호 아니, 재미는 지금 문제야. 너 시험 붙고 나면 사는 게 갑자기 재밌어질 것 같아?

성인 (고양이를 만지며) 지금보다야 낫겠지.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테니까.

병호 먹고 살 걱정은 얘들도 안 해.

성인 ... 고양이 기르고 싶다.

병호 갑자기 웬?

성인 어릴 때 마당 있던 집에서 이사한 후로 동물을 한 번도 못 길러봤거든. 아빠가 엄청 싫어해서. 난 진짜 좋아했는데.

병호, 성인을 바라보다 일어나 성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손을 바라보는 성인.

손가락으로 볼을 콕 찌르고 웃으며 카페 안쪽으로 걸어가는 병호, 그런 병호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성인.

S#3. 주택가 거리 (밤)

가방을 메고, 가로등이 듬성듬성 서 있는 어두운 거리를 걷는 성인.

양옆으로 서너 층짜리 오래된 다세대 주택과 빌라가 늘어서 있고, 간헐적으로 편의점과 호프집과 미용실이 보인다.

일부 호프집 앞에는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다.

거리는 조용하지만, 호프집 앞을 지날 때면 술 취한 사람들의 고양된 목소리가 들린다.

낡은 빌라 단지로 들어섰을 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성인.

빌라 화단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흐릿하여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성인 안녕?

주위를 둘러보지만 다른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화단 앞에 서 있다가 가던 길을 가는 성인.

한 빌라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간다.

S#4. 성인의 집 안 (밤)

현관에 신발 두 켤레가 흐트러져있다.

문이 열리고, 성인이 집으로 들어온다.

성인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며) 다녀왔습니다.

성인의 시선을 따라 드러나는 집 내부 전경.

왼쪽 벽에는 방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좁은 거실이 있다.

거실에는 옷이 잔뜩 걸린 행거와 반으로 접혀있는 접이식 침대, 그리고 TV가 있다.

거실 바닥에 가로누워 TV를 보다가 성인에게 고개를 돌리는 아버지(55, 남).

아버지 앞에는 열린 맥주 캔 두 개와 과자봉지 하나가 놓여 있다.

아버지 왔니.

성인 네.

아버지 공부는 잘했고?

성인 그럭저럭요.

아버지 수고했다.

다시 TV로 시선을 돌리는 아버지.

거실에 놓인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성인.

아버지 저거 봐라 저거, 개판이다 아주. 집 안에서 저게 뭐 하는 짓이냐.

리모컨을 쥔 손으로 TV를 가리키는 아버지.

TV에서 방송 프로그램 ‘TV 동물농장’이 방영되고 있다.

마당이 딸린 넓은 집에서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는 가족의 모습.

성인 (짐짓 쾌활하게) 강아지들이랑 노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요. 아빠도 길러보면 좋아할 걸요?

아버지 안 그래도 좁은 집구석 미어터질 일 있니. 나중에 변호사 되서 큰 집 사면 그때 마음껏 길러.

잠시 말없이 아버지를 내려다보다가 방으로 들어가는 성인.

성인이 움직인 자리의 벽에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C.U. 성인의 가족사진.

8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성인과 아버지가 말끔한 차림으로 앉아 어색하게 웃고 있다.

S#5. 학교 도서관 (낮)

칸막이 책상에 앉아 공부 중인 성인.

책상 한쪽에 두꺼운 교재가 여러 권 쌓여있다.

맨 위에 놓인 책에 쓰인 제목 ‘법률저널 LEET 모의고사.’

책들의 옆면에는 ‘이성인’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다.

책을 읽다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펴는 성인.

목을 한 번 돌리고 다시 책을 내려다본다.

S#6. 주택가 거리 (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택가 거리를 걷는 성인.

성인 내 생애 마지막 날에 어린 시절의 꿈을 기억조차도 할 수 없다면...

빌라 단지 입구를 지나 걷다가 화단 옆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어폰를 귀에서 빼고 조심스럽게 구석으로 다가간다.

전날과 같은 장소에 새끼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다른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새끼고양이는 인기척을 느끼고 구석으로 고개를 박는다.

‘야옹’하고 작게 우는 고양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나 쪼그려 앉는 성인.

고민하다가 고양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몸을 움츠리는 고양이.

고양이를 천천히 손바닥 위에 올려 내려다본다.

눈에는 눈곱이 끼어있고, 털이 지저분하다.

S#7. 성인의 집 (밤)

고양이를 손에 올린 채 집에 들어오는 성인.

TV가 켜져 있다.

아버지는 거실에 접이식 침대를 펴고 자고 있다.

성인,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고양이를 책상 위에 올려둔다.

고양이가 울자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댄다.

성인 쉿!

성인, 거실로 나가 아버지를 내려다보고, 리모컨을 집어 든다.

TV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방영되고 있다.

독일인 교도관이 유대인 수용자들을 재미 삼아 쏘아죽이는 장면.

잠시 영화를 보다 고양이 울음소리에 황급히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간다.

S#8. 성인의 방 (아침)

똑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

잠에서 깨어 문 쪽을 보는 성인.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가 고양이가 든 상자를 들고 문에 기대서 있다.

성인 (몸을 일으키며)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그래.

성인 (눈을 비비며) 그 고양이, 집 앞 화단에서 발견했어요. 며칠째 새끼 혼자 있어서 도와주려고요.

아버지 어떻게 도와주려고?

성인 아파 보여서 일단 병원 데려가서 검사하게요.

침대에서 나와 아버지에게서 상자를 건네받는 성인.

아버지 그러고?

성인 인터넷에서 분양자 찾을 때까지 일주일 정도만 있으면 데리고 있을게요.

아버지 바로 풀어놔.

성인 안돼요, 얘 먹이도 못 찾아서 밖에 두면 금방 죽어요.

아버지 새벽에 이놈 울어서 아빠 몇 번이나 깼다. 네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성인 그게 왜 절 생각해서...

아버지 이번엔 붙어야지, 성인아. 아빠 힘든 것 알잖니.

조용히 말을 마치고 돌아나가는 아버지.

표정이 어두워지는 성인.

S#9. 병호네 아파트 단지 (낮)

단지 내 놀이터에 서 있는 성인과 벤치에 앉아 있는 병호.

병호는 추리닝 차림에 모자를 눌러썼다.

고양이가 담긴 상자가 벤치 옆에 놓여 있다.

고양이의 털이 말끔히 정돈되어 있다.

병호 그래서 이 고양이를 내가 맡아달라고?

성인 응, 분양자 나올 때까지만.

병호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되게 귀엽다. 안 그래도 삼색이 한번 길러보고 싶었는데. 내가 기를래.

성인 뭐? 너 강아지도 기르잖아.

병호 아, 강아지는 분양 보냈어. 너무 시끄러워서.

우려가 담긴 눈빛으로 병호를 바라보는 성인.

성인 기를 수 있겠어? 새끼 고양이는 신경 써야 하는 거 진짜 많은데. 정말 일주일만 맡아줘도 돼.

병호 (웃으면서) 고양이카페 알바한테 별걸 다 걱정하시네요. 걱정 마라 이성인. 환상의 집사가 되어줄 테니.

F.O.

S#10. 캠퍼스 내 학생식당 (낮)

INS. 뉴스 화면.

기자들에 둘러싸여 취조를 받는 법조인의 모습.

화면 아래에 쓰인 뉴스 제목 “서울대 출신 K 법조인, 검찰 인맥 활용 ‘몰래 변론’…10억 원 넘게 불법 수임”

아나운서 경찰에 따르면 K 법조인은 변호사 시절 수사 확대방지를 조건으로 의뢰인으로부터 수억 원을 불법 수임하였으며...

식사하며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를 보는 성인과 혜영(27, 여).

식사하는 학생들로 식당이 거의 다 들어차 있어 와글와글하다.

혜영 자랑스러운 우리 선배님 또 나오시네.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는 게 신기해.

성인 (피식 웃으며) 그러게. 돈이 얼마나 좋길래 저렇게까지 하고 말았던 걸까.

혜영 그거야 권력이 있으니까. 너도 나중에 저렇게 될 수도 있어.

성인 절대. 나는 저런 일로 피해 보는 사람들 돕고 싶어서 공부하는걸. 우리 아빠처럼.

혜영 (국을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아빠?

성인 어, 나 어릴 때 사기를 크게 당했거든. 비싼 변호사 썼는데도 한 푼도 못 받았어.

젓가락질을 멈추고 숙연해지는 혜영과 담담한 성인.

혜영 아... 근데, 저 사람도 젊을 땐 정의로웠대. 자리가 사람을 만드나봐.

성인 (쓴웃음) 하긴, 왕이 되면 무슨 짓인들 못 할까. (잠시 쉬고) 그게 어떤 느낌인지 나는 영영 모를 수도 있어.

혜영 그게 무슨 말이야?

성인 그냥. 요즘 좀 복잡해서. 저런 뉴스 볼 때마다 이 길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싶어.

혜영 걱정된다 너. 그런 고민하는 사람들은 들어가서 더 힘들어하던데. 삭막하다고.

성인 갔다가 뛰쳐나오지는 않겠지?

혜영 돕고 싶다며. 도우려면 힘을 길러야지, 더러워도.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는 성인.

행정관 건물 앞에 허름한 천막이 세워져 있다.

혜영 (미소를 띠고) 성인아.

성인 응?

혜영 이따 노래 부르러 와. 와서 스트레스 풀고 가.

S#11. 서울대학교 캠퍼스 (저녁)

저녁노을로 하늘이 노랗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성인.

행정관 쪽으로 걸어간다.

행정관에 가까워지면서 웅성웅성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행정관 옆을 지나치자 피켓을 들고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동요 ‘곰 세 마리’의 멜로디에 맞춰 단체로 노래를 부른다.

시위대 갑질교수가 서울대에 있어, 의과대, 사회대, 인문대...

맨 앞에 선 사람들은 ‘학생인권 보호않는 교수사회 규탄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있고,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한 기자 두어 명이 맨 뒤에서 취재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노래하는 시위대를 바라보는 성인.

시위대 뒤에는 천막이 쳐있고, ‘학생회장 단식투쟁 7일째’라고 손으로 거칠게 쓴 천이 걸려있다.

서 있는 학생들에게 리플릿을 나눠주던 혜영, 성인을 알아보고 웃으며 다가온다.

손을 들어 인사하는 성인.

혜영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마워!

성인 잠깐 들른 거야. 고생한다.

혜영 고생은 무슨, 날 위해서 하는 일인걸.

성인에게 리플릿을 주고 다른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혜영.

성인은 받아든 리플릿을 내려다본다.

‘K교수 학생 성희롱, 정직 3개월...

C교수 대학원생 갑질, 정직 1개월...

이게 학교냐?’

큰 글씨로 쓰인 문구.

뒷면에는 개사한 노래 가사가 적혀있다.

성인, 종이를 내려다보다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부른다.

성인과 사람들 ...공과대는 인건비횡령, 너도 같이 나가라.

노래가 끝나고, 앉으라는 안내에 따라 서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바닥에 앉는다.

학생회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시작한다.

앉지 않고 맨 뒤에서 선 채 잠시 발언을 듣다가 발걸음을 떼는 성인.

혜영은 앞에 앉아 있어 성인이 가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성인의 얼굴을 비추며 함께 움직이는 카메라.

성인,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돌려 멀어진 시위대를 바라본다.

갑작스런 바람에 들고 있던 리플릿을 놓치는 성인.

리플릿이 길가에 가닿는다.

떨어뜨린 리플릿 주위에 같은 리플릿이 여러 장 나뒹굴고 있다.

성인, 다가와 자신이 떨어뜨린 리플릿을 주워들고 프레임 아웃.

바람에 따라 낙엽과 섞여 흔들리는 리플릿들.

S#12. 성인의 방 (밤)

스탠드를 켜고 공부 중인 성인.

책상 위에는 물이 담긴 컵과 과자봉지, 책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C.U. 책상에 펼쳐진 교재와 공책, 공책에 부지런히 무언가를 적는 손.

툭- 교재 위에 떨어지는 붉은 피.

코를 손으로 훑고는 고개를 젖히는 성인.

성인 아이...

책상 구석에 놓인 휴지로 손을 뻗는 성인.

E. 휴대전화 진동 소리.

휴지로 코를 막고 가방을 뒤져 휴대전화를 꺼낸다.

화면을 보고 미소를 짓는 성인.

성인 어 병호야. 이 시간에 웬일이야?

병호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성인 뭔데? 고양이는 잘 지내?

병호 어 그게, 야 성인아, 고양이 우유 먹이면 안 되냐?

성인 데워서 먹이면 되는데 왜?

병호 아, 고양이한테 우유 줬더니 먹다 계속 토하더라고. 그래서 먹이면 안 되는 건가 해서.

성인, 일어나 방을 서성인다.

성인 (놀라며) 뭐? 아니 그걸...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찬 우유는 먹이면 안 돼. 먹여도 되는 거랑 안 되는 거 잘 구분해서 줘. 인터넷 쳐보면 다 나와.

병호 오케이. 미안, 미안. 나 완전 잘 기르고 있어, 걱정 마. 고양이 화장실도 사놨다구.

성인 알았어, 알았어. 좀만 더 신경 써줘. 잘 자.

전화를 끊고, 창가로 가 밖을 바라본다.

작은 반지하 창으로 가로등 빛이 들어온다.

창가 앞을 지나가는 성체 삼색고양이가 보인다.

가로등 빛을 받으며 멍하니 서 있는 성인.

S#13. 학생식당 (낮)

학생식당 야외 테라스에 앉아 홀로 밥을 먹는 성인.

캠퍼스 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와 식사하는 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밥을 먹으며 병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일요일에 고양이 보러 가도 돼? 고양이 간식 좀 사 갈게’

CUT TO

식사를 마치고 나와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는 성인.

E. 희미하게 들려오는 응급차 소리.

걸어갈수록 응급차 소리가 커진다.

성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천막과 행정관 건물 사이에 응급차가 서 있고, 응급요원 두 명이 응급용 들것에 학생회장을 눕혀 응급차에 태운다.

수많은 학생이 멀찍이서 지켜보고, 쓰러진 학생회장 가까이에서 세 학생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학생들 어떡해... 괜찮을까?

세 학생 중 한 명이 혜영임을 알아보는 성인.

눈시울이 붉어진 혜영과 눈이 마주친다.

혜영에게 다가가는 사이 세 학생을 태우고 빠져나가는 응급차.

구경하던 학생들은 금세 흩어진다.

천막 쪽으로 걸어가는 성인.

천막은 입구가 활짝 열려 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다.

몸을 돌려 행정관을 바라본다.

유리로 된 현관문에 나무판자가 걸린 채 굳게 닫혀있고, 안에는 양복을 입은 직원 두 명이 밖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다.

성인, 문에 가까이 다가가 손바닥을 가져다 댄다.

판자와 문 너머의 성인을 문 안쪽에서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

돌아서는 성인, 무언가 생각난 듯 휴대전화를 꺼낸다.

병호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와있다.

‘안 와도 될 것 같아. 고양이가 집을 나갔어.’

S#14. 병호네 아파트 (저녁)

현관문 앞에 서서 격하게 문을 두드리는 성인.

잠시 후, 병호가 문을 연다.

안으로 들어가 집을 둘러보는 성인.

거실에 놓인 컴퓨터에 게임이 켜져 있다.

성인 자세히 말해봐, 언제 어떻게 나갔는지. 찾으려고 노력은 해봐야지.

병호 어제 아침에, 수업 갔다 오는 사이에.

성인 바로 말해줬어야지 그런 건!

병호 집구석 어디에 숨어있는 줄 알았지 난. 얘네 숨는 거 좋아하잖아.

노려보는 성인과 시선을 피하는 병호.

성인 어디까지 찾아봤어?

병호 요 앞 놀이터까지.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벌써 멀리 갔나 봐.

성인 아니, 어제면 아직 아파트 내에 있을 수도 있어. 있을 만한 곳 생각해보자.

잠시 말없이 있는 두 사람.

집을 배회하다 창가에 놓인 고양이 화장실로 다가가는 성인.

화장실은 깨끗하다.

성인 병호야.

병호 응?

성인 너, 목요일 수업 드랍했다고 하지 않았어?

병호 어? 내가 그랬나?

성인 야. 한병호.

날카로운 목소리에 놀라는 병호.

성인 고양이 진짜 집 나간 거 맞아?

병호 ...

성인 똑바로 말해.

병호 그, 그게...

눈을 내리깔고 머리를 긁적이는 병호.

병호 죽었어.

성인 뭐...?

얼어붙는 성인.

병호 아니 그게, 그때 우유 먹은 날, 자고 일어나보니까 죽어있더라고.

성인 병원에 안 데려갔어?

병호 미안,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몰랐지 난.

성인 (찌푸리며) 너 진짜... 그래서, 어떻게 했어?

병호 뭘?

성인 고양이.

머뭇거리는 병호.

병호 버렸어.

성인 어디에?

병호 ... 쓰레기 봉투에.

짝- 맞은 뺨을 손으로 감싸는 병호와 붉어진 눈으로 노려보는 성인.

아무 말 없이 돌아 나오는 성인과 제자리에 서 있는 병호.

S#15. 주택가 거리 (밤)

가방을 메고 길을 걷는 성인.
주택들 사이에 간간이 위치한 호프집들이 모두 호황이다.
호프집에서 나오는 환한 네온사인 불빛이 성인의 슬픈 얼굴을 비춘다.
한 호프집을 지나다가 야외 테이블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는 성인.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 2병과 건어물 안주가 있다.
성인을 알아보고 일어나 취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아버지.

아버지 (잔뜩 취한 목소리로) 우리 아들! 공부 잘하고 왔어? 우리 자랑스러운 아들 한 번 안아보자.

성인을 껴안는 아버지.
가만히 안겨있지만, 술 냄새가 나는지 고개를 돌리는 성인.

성인 왜 혼자 드시고 계세요? 날도 추운데.
아버지 (얼굴을 잡고) 우리 아들 오는 거 맞아 주려고 그랬지. 아빠가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
성인 네.
아버지 아빠는 아들이 행복하면 좋겠어. 아들 꼭 성공해서 고생 안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
성인 아빠... 저,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될까요?
아버지 (얼굴을 보며) 그럼 그럼, 시험 보고 나면 아들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돼. 미래의 변호사 이성인! 화이팅!

성인,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성인 많이 드셨는데 이만 들어가요. 내일도 출근하시잖아요.
아버지 (끄덕이며) 그래, 우리 아들 공부하는 동안은 힘들어도 일 열심히 해야지. 아들이랑 걸으니까 기분 좋다.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부축하는 성인의 뒷모습.
빛이 없어 뒷모습이 어둡다.


S#16. 호프집 안 (밤)

테이블에 마주 앉은 성인과 혜영.
상에는 앞접시와 소주가 놓여 있다.
안주 없이 소주를 마시는 성인과 혜영.

혜영 많이 힘드나보네, 갑자기 술을 다 먹자고 하고. 나도 간만에 먹고 싶긴 했어.
성인 좀 답답해서. 아니 좀 많이.
혜영 무슨 일 있었어?
성인 (소주를 따르며) 전에 말했던 새끼고양이 주웠던 거. 친구가 기른다기에 보냈는데, 며칠 만에 죽어버렸어.
혜영 어쩌다...?
성인 그 친구 실수로. 그렇게 무책임한 새낀지 몰랐어.
혜영 (책망하듯) 넌 왜 그 친구한테 보낸 거야?
성인 (방어적으로) 나도 보내고 싶지 않았어. 공부 때문에... 나 뭐하고 있는거지 대체.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찌개를 들고 다가와 테이블 가운데에 내려놓는 점원.

점원 주문하신 안주 나왔습니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멀어진다.
찌개가 금방 끓기 시작한다.
잠시 정적.

성인 너는 좀 어때? 그때 일 이후로 달라진 게 있어?
혜영 ... 나 이번에 휴학해. 좀 오래 할 수도 있어.
성인 응? 갑자기 왜?
혜영 나 희롱한 K교수 정직 3개월 확정됐어. 피해자 증언 계속 나오는데 더 안 받겠대.
성인 (흥분해서) 아니, 그게 말이 돼?
혜영 (국자로 찌개를 뜨며) 그 교수 못 보겠어서, 쉬면서 생각 좀 하려고.
성인 가만히 받아들이게? 더 싸워봐야지!
혜영 (날카롭게) 쉽게 말하지 마.
성인 아니, 이렇게 억울하게 끝낼 순 없잖아. 도망치듯이.
혜영 쉽게 말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혜영.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당황하는 성인.

성인 미안, 그런 뜻 아니었어.
혜영 (눌러 담으며) 말했잖아, 힘이 있어야 한다고. 지금 우린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성인 ...
혜영 너 공부하는 거, 끝까지 해줘. 부탁이야. 그리고 변하지 말아줘.

잠시 생각에 잠기는 성인.
‘씨발’ 하고 작게 읊조리며 소주를 들이켠다.
잘못 내려놓아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주잔.
잔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암전.


S#17. 도로 (낮)

움직이는 택시 안.
뒷자리에 앉아 입을 다문 채 창밖을 내다보는 성인.
두꺼운 잿빛 코트를 입고 있다.
눈이 내린 도시 풍경.
택시기사는 앞에서 묵묵히 운전한다.
햇살이 그의 얼굴을 반쯤 비춘다.
창에 습기가 껴있어 바깥 풍경이 흐릿하다.
고정된 피사체 없이 창에 눈을 두었던 그가 창을 닦고 창밖의 무언가에 초점을 맞춘다.
C.U. 그의 얼굴. 눈동자가 커진다.
인도 위에서 고양이가 찻길 방향으로 달리고 있고, 젊은 여자가 고양이를 뒤쫓고 있다.
고양이가 향하는 차도에서는 승용차와 큰 화물차가 달려오고 있다.
성인, 왼손으로 문손잡이를 꼭 쥐었다가 다급하게 창문을 내린다.
창문이 열리자 바람 소리로 차 안이 시끄러워진다.

성인 어... 어...

BACK FOLLOW. 고양이를 쫓아 달리는 여자.
화면이 심하게 흔들린다.

여자 거기로 가면 안 돼! 돌아와!

찻길로 뛰어드는 고양이, 순식간에 덮치는 승용차.
우두커니 멈춰서는 여자.
이어지는 화물차와의 충돌.
손으로 입을 막고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가는 여자.
어찌할 줄 몰라 울다가 절박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 인도에는 인적이 없다.
멀리 도로변에 이쪽을 바라보는 성인이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몸을 돌리는 성인, 절망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여자.


S#18. LEET 모의고사장 안 (낮)

햇살이 드는 시험장.
수십 명의 학생이 고사장 안에서 문제를 풀고 있다.
도로가 보이는 창가에 앉은 성인,
문제를 풀다가 창밖을 내다본다.
편치 않은 표정.
고개를 흔들고 시험지로 시선을 돌린다.


S#19. LEET 모의고사장 밖 (낮)

가방을 메고 고사장 건물 밖으로 터덜터덜 나오는 학생들.
사람들 틈에 섞여 나오는 성인, 도로변으로 가 사고가 났던 쪽을 바라본다.
승용차와 화물차는 보이지 않는다.
사고현장으로 걸어가자 도로에 남은 사고 잔해와 스키드 마크가 보인다.
무거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성인.
인도 저편에서 고양이를 쫓던 여자를 발견한다.
여자는 쪼그려 앉은 채 울고 있고, 여자의 옆에 종이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천천히 다가가는 성인, 인식하지 못하는 듯한 여자.
가까이 가서 상자를 내려다보는 성인.
성체 삼색고양이가 피 흘린 채 죽어있다.
일그러지는 성인의 얼굴.
가까운 가로등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구토한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성인의 몸.

길게 F.O.


S#20. 지하철역 (저녁)

야외가 보이는 2층 지하철 역사 안.
역사에서 올려다보이는 하늘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는 카메라.
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들어있다.
지하철이 들어옴과 동시에 패닝하면 스크린도어가 보인다.
스크린도어에 책을 들고 있는 성인의 모습이 비친다.
지하철이 멈추고,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린 후 화면으로 입장하여 지하철에 탑승하는 성인.
문 바로 앞에서 문 쪽으로 몸을 향하고 선다.
출발하는 지하철.
성인이 선 채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본다.
지하철이 한강 위를 지나고 있다.
얼어붙은 한강이 노을빛을 반사해 붉게 반짝인다.
고개를 돌리던 성인의 시선이 문 위의 전광판에 고정된다.
전광판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오늘 저녁 시청광장 촛불집회... 역대 최대규모 예상’
C.U.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가만히 전광판을 바라보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는 성인의 얼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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