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교수

의학과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소 8층에서 우리나라 혈액사업 선진화 및 수혈의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온 한규섭 교수(의학과)를 만났다. 한 교수는 “여기 연건동에서 내 꿈을 다 이룬 것 같다”며 정년퇴임을 맞는 소회를 드러냈다.

Q. 다양한 의학 분야 중에서도 진단의학과 혈액관리 문제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과거엔 의사라고 하면 사후적으로 환자의 병을 고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졸업할 때 즈음 여러 종류의 검사를 통해 질병을 선별, 조기 발견, 예후 판정하는 진단검사의학이 새로운 분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미래가 보장된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 어려운 선택이었다. 진단의학에 입문해 수혈의학 쪽 일을 하다 보니 국가혈액관리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Q. 원활한 혈액 수급이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A. 혈액을 적절히 확보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혈액은 보관기간이 짧아 수입할 수 없으며 자급자족 원칙에 따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혈액수급뿐 아니라 재정 지원 역시 부족했다. 이전에 보건복지부 혈액관리위원회위원장을 맡아 일했을 때 정부가 혈액 사업의 중추인 적십자사에 3500억 원을 지원하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그 이후 적자로 힘들었던 혈액 사업이 많이 안정돼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헌혈이 부족하다. 젊은 사람들은 헌혈을 열심히 하는데, 서른 살만 넘으면 그 수가 확 줄어든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로 돌입하는 상황에서 혈액의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는 이런 현상은 큰 문제다. 어느 시점이 되면 국내에서 혈액수급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고연령대에게 헌혈을 권하는 방향으로 헌혈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Q. 2016년 한국표준 의료행위 분류체계를 실용적인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떤 방안들을 제시했나?

A. 절단 수술의 예를 들자면, 이전에는 수술에 대한 비용만 나와 있었을 뿐 절단한 것이 손인지 발인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을 해부학적으로 분류하고, 또 수술의 심각성을 파악해 코드화했다. 그러나 너무 세분화된 분류는 의료보험 처리가 복잡하다. 서랍을 하나 열면 아홉 개의 상자가 있고, 다시 하나를 열면 또 아홉 개의 보관함이 있어 서랍을 여느라 바쁜 것이다. 그래서 편의성을 유지하되 적당히 세분화된 것을 제안했다. 의료행위 분류체계는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보정해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Q. 의사와 검사의학과 교수로서 일했을 뿐 아니라 의료기관 경영에도 힘쓰면서 의료계 전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차기 의료계를 이끌어갈 후학들에게 남기고픈 말이 있다면?

A. 의료계가 좀 어렵다. 동료 의사들 중에서도 폐업하는 사람이 많다. 힘들어도 정도(正道)를 지켰으면 좋겠다. 수익을 위해 편법을 쓰는 의사들도 봤다. 보험 급여가 되는 수술도 있는데 굳이 환자에게 금전부담을 지우는 수술을 권유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설사 위법이 아닐지라도 편법을 쓰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가능하면 정도를 유지해라. 시류에 따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나침반을 아예 돌릴 수는 없더라도 바른 쪽으로 1도라도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의료인이 되길 바란다.

한 교수는 “훌륭한 동료, 선후배들을 보며 어떤 보편적 목적을 위해 끝까지 탐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배웠다”며 “덕분에 국가, 세계에 도움이 되는 업적들을 이뤄냈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분야든 간에 학생들이 그런 태도를 잃지 않고 정도를 걸어 나가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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