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홍(자유전공학부 학사졸업)

박연홍

자유전공학부 학사졸업

수시 면접 날이 생각납니다. 서울대입구역을 나선 후 마주한 끝이 보이지 않는 버스 줄, 그리고 8차선 도로를 가득 채운 차들의 행렬이 줬던 첫인상은 아직도 또렷합니다. ‘네이버 길찾기’에서 알려준 예상 소요 시간만 믿고 길을 나선 수험생에겐 무척이나 가혹한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간발의 차이로 면접을 봤습니다. 그러나 겨우 잡은 택시 안에서 반쯤 우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던 건 단연 제 평생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랬던 저는 이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등교를 잘합니다. 늦잠 자서, 게을러서 지각해도 계산을 잘못해서 늦진 않습니다. 요일과 시간, 그리고 도로 상황에 따라 다른 경로를 택하는 센스까지 갖췄습니다. 강의동 간 이동도 마찬가집니다. 지도 창을 띄어놓은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쥔 채로 캠퍼스를 한참 헤매던 새내기가 어느새 각종 지름길을 능숙하게 찾아다닙니다. 심지어 순환셔틀버스 시간표도 꿰차, 윗공대-자연대 연강도 무리 없이 해냅나다. 새삼 관악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구나 싶은 순간들입니다.

관악에서의 4년은 이렇게 낯선 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캠퍼스, 수업, 사람 그리고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까지. 낯설었던 모든 것들이 이젠 낯설지 않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캠퍼스 곳곳을 쏘다니는 새내기들을 보면 무색하기까지 합니다. 익숙함이 꼭 능숙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운 전공 공부는 지금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에 서툰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더 새로울 것 없는 이 모든 것들은 이젠 제 삶의 일부입니다. 한때는 내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줬던 것이 평범한 일상의 범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낯섦으로 가득 차 멀게만 느껴졌던 서울대가 어느새 내 학교가 된 것입니다.

졸업식이 한 달 채 남지 않은 지금,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지금 익숙한 모든 것들이 익숙해져 갔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대게 힘든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치 통학 길에 익숙해지는 덴 무수한 지각과 십 수만 원의 택시요금이 있었듯이 말입니다. 지금 제 전공이 제 전공이 되기까진 301동에서의 피곤하고 외로운 새벽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학교 곳곳에서 뛰어난 학우들을 만나는 것은 떨어지는 자신감을 붙들어 잡으며 스스로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어렵사리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뭐든 지나고 나면 미화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힘들었던 순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힘든 것을 보니 4년간의 학부 생활이 꽤 쉽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간 속엔 깨달음이 있었고, 그 깨달음을 통해 저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됐습니다. 낯설기만 했던 서울대가 내 학교가 되기까지의 고된 과정은 4년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현재 저의 모습으로 저를 이끌어줬습니다. 수많은 힘든 기억들 속에서도 제가 서울대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교문을 나서자마자 다시 돌아와 석사과정을 밟을 계획이기에 완전한 작별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앞으로 마주하게 될 학교는 이전까지의 내 학교와는 분명히 매우 다를 것입니다. 이에 조금은 멋쩍지만 마지막 아닌 마지막 인사를 하고자 합니다. 내 학교 서울대학교, 그리고 4년을 함께해준 여러분 모두에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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