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인터뷰 | 아동가족학과 12학번 김보미 씨, 디자인학부 13학번 김도경 씨

낙성대역의 한 카페에서 김보미 씨(아동가족학과·12)와 김도경 씨(디자인학부·13)를 만났다. 김보미 씨와 김도경 씨는 16학년도에 각각 총학생회장과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를 발족하고 인권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학생 사회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졸업을 목전에 둔 현재까지도 이들은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보미 씨(우)는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본 것 같다”며 미련 없는 모습을 보였다. 김도경 씨(좌) 역시 “졸업을 하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범하다”며 담담히 학교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수업을 통해 구체화하다

김보미 씨는 아동가족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2012년 입학한 그는 입학 당시부터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아동가족학을 공부하며 일과 가정의 경계에 선 여성의 문제는 결국 사회의 문제임을 깨달았다”며 자연스레 사회학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수업을 통해 젠더 문제가 사회의 다양한 곳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었다는 그는 “묘하게 불편했던 느낌들을 확실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얻었다”며 “스스로 문제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김도경 씨는 ‘디자인과 문화’ 수업을 들으며 “디자인이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라는 디자이너로서의 가치관을 정립해나갔다. 그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수용자가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진다”며 “사회 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들이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가장 적절히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메시지가 사용되는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사회 주요 가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문학·예술 수업을 들으며 페미니즘과 평등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도경 씨는 “이론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꼈다”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전공인 디자인을 활용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이 만난 것은 2015년이다. 당시 부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보미 씨는 디자인을 맡아줄 사람을 찾던 중 미대 학생회장의 추천을 받아 김도경 씨에게 연락했다. 김보미 씨의 취지와 목표에 공감한 김도경 씨는 그와 함께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 이들은 서울대 인권주간 서포터즈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서울대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인권 향상을 도모해나갔다.

 

당연했던 차별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다

김보미 씨는 “성소수자로서 겪은 조롱과 차별적 발언들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며 개인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 씁쓸함을 내비쳤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자각하고 성소수자 동아리 ‘QIS’에 가입한 그는 차별적 시선을 경험한 학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나갈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성소수자 문제 외에도 각종 차별적 문화가 학내에서 만연하다는 사실을 공론화시키고 개선안을 제시했다. 더불어 김보미 씨는 인권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사전에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설령 침해가 발생하더라도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김도경 씨 역시 인권 보장이 모든 일의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 생활 중에 인권침해적인 언행을 당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며 “문제 제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사회 내에 만연하기 때문에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해결을 요구하기 힘들어하고, 용기를 내 말해도 문제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들도 생긴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공공장소에서도 차별적 시선이 은연 중에 담긴 메시지들이 많다”며 “디자인이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사회 안에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런 그에게 총학생회 활동은 다양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를 바탕으로 김도경 씨는 디자인 총책을 맡아 김보미 씨를 도와 인권이 보장되는 서울대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두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느낀 차별적 시선과 폭력적 경험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벽을 허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생회 등 공동체 조직이 인권에 관심을 갖고 관련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보미 씨는 “벽을 허무는 것은 곧 인권이 진일보하는 밑거름이 된다”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네가 잘못된 것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답이 정해진 스펙 쌓기 경쟁에서 벗어나라

졸업 후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보미 씨와 김도경 씨는 모두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인권 향상을 위해 사회를 바꾸려 노력한 그들이지만, 확신에 찬 듯한 자신감 있는 행보의 이면엔 스스로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졸업 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도경 씨는 “주변에서 착실하게 사회의 기준에 맞춰 소위 ‘스펙’을 쌓아 취업을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잠시 나의 활동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런 자신의 행적 하나하나가 결국 자신의 일부이자 가치임을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미리 모든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려 애쓰지 말고, 일단 뭐든지 해보면서 스스로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김도경 씨의 말은 그의 이러한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김보미 씨 역시 “여러 기회가 주어진 덕에 좋아서 했던 일들을 하다 보니 대학 졸업까지 7년이 걸렸다”며 다채로운 대학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보였다. 그는 “대학생 때만 누릴 수 있는 여유와 기회가 등이 굉장히 많은데, 이를 모두 포기하고 사회에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재단하지 말라”며 김도경 씨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을 권했다. 그는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오늘날, 70년 이상 일을 해야 하는데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다”며 “내가 하고 싶은 게 명확하지 않을 때 사회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일들에 나를 맞추기보단 주체적으로 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사람들을 수단으로 여긴다면 이는 스스로의 마음을 좀먹는 것”이라며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보미 씨와 김도경 씨 모두 졸업 후 마땅히 정해진 진로가 없는 ‘백수’가 될 예정이지만, 둘은 오히려 이 시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보미 씨는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할 여유도 갖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해 어른이 돼버렸다”며 백수로 지내는 기간이 길진 않겠지만 꼭 필요한 휴식 시간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김도경 씨 역시 현재 심리학 연구 툴을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디자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는 3월 이후엔 새롭게 나의 흥미를 좇아 다양한 작업들을 시도해보고 싶다”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그는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면 된다”며 “1년 뒤 내가 어떤 재미난 일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고 정해진 진로 계획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은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생산적 활동을 포기한 삶을 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스스로를 찾기도 하고 재충전의 시간도 갖는 ‘당당한 백수’로서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김도경 씨와 김보미 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십 년이 지난 후 이 인터뷰를 다시 봤을 때도 지금의 가치를 잘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게 소망이다”라고 전했다. 사람을 편견 없이 사람 그 자체로 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길을 굳건히 개척해나가고 있는 두 사람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