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SNI 필드 차단’ 기술을 이용해 불법 사이트 접근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불법 사이트 차단은 ‘DNS 오염’과 같은 방식으로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지만, 이번 SNI 필드 차단은 정보 암호화가 이뤄지기 직전에 잠깐 정보가 노출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차단 방식과 궤를 달리한다. 보안 목적으로 이용되는 통신 내용의 일부를 방심위 측에서 확인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여러 우려가 표출되고 있다.

우선 이러한 방식의 인터넷 접속 규제는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염려가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접속 제한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당히 심한 수준으로, https 접속을 검열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중국과 일부 중동 국가밖에 없다. 이러한 인터넷 규제 확대는 국가기관과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사용자의 통신 정보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경우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궁극적으로 온라인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통제의 기준이 별도의 공론화나 사회적 합의 없이 방심위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 역시 문제다. 방심위의 심의 대상이 음란물 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논리에 따라 ‘불법 사이트’의 범위와 기준이 자의적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의 실효성 역시 크지 않다. 당장 VPN 우회 프로그램만 이용해도 차단된 사이트에 문제없이 접속할 수 있으며, 일련의 접속 서비스를 구글에서 처리하도록 조금만 조작을 해도 역시 차단이 바로 ‘뚫리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SNI 필드 차단은 보안 통신상의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이 문제가 보완된 ESNI 기술을 이용할 경우 이번 규제는 사실상 효과가 없어진다. 정부의 차단 방식이 보안상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고, 보안을 강화하면 차단이 통하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규제 강화 조치는 인터넷의 중앙통제를 줄여나가는 세계적인 흐름과 배치될뿐더러 그 효용도 크지 않다. 이번 조치가 통신 감청이나 검열과 무관하다는 정부의 해명 역시 여전히 관련 업계 종사자들과 인터넷 사용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불법 사이트 차단이라는 목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사생활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불법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실효성과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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