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사라져가는 동네를 기록하는 ‘창작집단 도르리’를 만나다

노후화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가는 동네인 인천 동구 화수동과 만석동. 이곳엔 주민들이 동네를 떠나기 전에 동네 속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서의 추억을 만들고, 그곳만의 풍경과 이야기를 그림, 만화, 인형, 조각 등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지난달 26일, 그들이 사는 터전을 예술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창작집단 도르리’의 ‘이모’ 오정희 씨(40)와 ‘삼촌’ 김성수 씨(29)를 만났다.

'전봇대에 불이 들어오면’(2018)은 화수동과 만석동에 있는 집을 한 채씩 꼼꼼히 표현한 후 12월 전시에 걸맞게 이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배열한 작품이다.

오정희 씨와 김성수 씨는 함께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 창작집단의 이름을 ‘음식을 내어 함께 먹는다’는 뜻의 제주도 방언 ‘도르리’로 지은 것도 그 이유다. 김성수 씨는 “우리는 모두 만석동에 위치한 공부방인 ‘기차길옆작은학교’에 다닌 학생들”이라며 “함께 공부한 친구 중 예술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모여 도르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현재 상근자가 돼 기차길옆작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작품활동을 지도하는 그들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아닌 ‘이모’ ‘삼촌’으로 불린다. 오정희 씨는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선 선생님과 학생 같은 수직적인 관계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모두 가족처럼 함께하기 때문에 이모나 삼촌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르리는 학생들이 ‘삼촌’ ‘이모’와 함께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는 교육의 장이다. 도르리에서 목공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나무를 깎아 만든 작품으로 ‘꼬마 목수전’을 열었다. 꼬마 목수전에서 발생한 수익금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전달했다. 김성수 씨는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노동과 예술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바랐다”며 “아이들은 자신이 손수 조각한 작품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어 기뻐했다”고 웃어 보였다. 또한 그들은 기차길옆작은학교가 정기적으로 인형극을 열 수 있도록 돕는다. 오정희 씨는 “아이들이 직접 만든 인형으로 인형극을 올리는 것이 인형극에 의미를 더한다”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도르리는 쇠퇴하는 인천 화수동과 만석동의 모습도 기록한다. 도르리에게 이곳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김성수 씨는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데 그중 ‘한 달 프로젝트’는 달별로 볼 수 있는 동네의 특색을 그리는 작업”이라며 “그 그림들을 모아 2019년도 달력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실제 달력에선 배추와 무를 하나씩 화분에 심어 재배하는 11월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김 씨는 “이곳은 햇볕이 드는 곳이 드물어 배추와 무를 화분에 심는다”며 “이는 다른 곳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도르리는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품으로도 동네의 모습을 기록한다. 그들은 동네에 있는 집들의 특징을 살려 조각을 만들었다. ‘전봇대에 불이 들어오면’(2018)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오정희 씨는 “모든 집의 지붕, 창문, 벽면 등을 세심하게 표현했다”며 “이 작품을 통해 훗날 모든 집이 철거돼 화수동과 만석동이 사라지더라도 사람들이 이곳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동네의 모습을 기록하는 동안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심적인 부담감을 느끼기도 한다. 김성수 씨는 “동네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조각하는 작업 자체엔 어려움이 없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휑해지는 동네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다”고 전했다. 또한 김 씨는 “사라져가는 동네를 작품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과 이 활동이 진정 동네를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불안감이 충돌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도르리는 현재 동네 주민에게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 씨는 “동네 주민이 문화 예술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인천문화재단과 협업할 예정”이라며 “동네의 모습을 담은 기존의 전시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김 씨는 “동네 주민이 쉽게 들러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며 “앞으로 도르리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화수동의 ‘진정한 주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평범하고 친근한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르리는 오늘도 화수동과 만석동이 품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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