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신동욱 선생의 지조와 정의를 되새기다
심사 신동욱 선생의 지조와 정의를 되새기다
  • 박경준 기자
  • 승인 2019.03.03 0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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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독립운동가 신동욱 선생의 후손 신대규 씨
신대규 씨가 요시찰함* 견본을 보여주며 일제 경찰이 신동욱 선생을 어떻게 감시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불기심의 정신으로 일제에 맞서다

지난 1일(금),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은 태극기의 물결로 휩싸였다. 우리 민족이 자주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지금과 같이 자유로이 태극기를 흔들 수 있게 된 데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대학신문』은 지난달 28일, 3·1절 100주년 을 기념해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얼굴 없는 독립운동가’ 심사 신동욱 선생의 후손 신대규 씨를 만나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정신을 조명해봤다.

심사 신동욱 선생은 1870년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일생을 항일운동에 바친 독립운동가다. 신대규 씨는 “항일운동 이후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자주 이사를 하다 보니 사진이 유실됐다”며 남아있는 사진이 없어 얼굴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간단한 인상이라도 기억나는 게 없냐고 묻자 그는 “이마가 드러나 있고 조그마한 수염이 난, 골격이 뚜렷한 단정한 선비의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을사조약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신동욱 선생은 동생인 신동화 선생과 함께 심남일, 전수용과 같은 호남 지역 의병장들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두 형제의 물질적 지원을 차단해야만 의병운동이 사그라들 것이라 판단한 일제는 1911년 호남의병을 평정하기 위해 두 사람을 장성 헌병대에 구금했다. 몇 차례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반복할 정도로 혹독한 고문이 3개월 간 이어졌지만, 두 형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일제는 명망 있는 인사들을 돈으로 회유하기 위한 술책의 일환으로 신 선생과 그의 부친에게 은사금을 제안했지만, 부자는 이 역시도 거절해 다시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강이가 뒤틀려 안짱다리가 될 정도였지만, 신 선생은 유언으로 “창씨개명은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마지막까지 항일 투쟁의 뜻을 버리지 않았다.

이렇듯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신 선생이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소에도 강조하곤 했던 ‘불기심’(不欺心) 덕분이었다고 신대규 씨는 설명했다. 불기심이란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시간이 지나 썩어 없어지는 육신과 달리 사람의 근본인 양심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므로 항상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양심과 정의가 바로 선 대한민국을 염원하다

올해도 정치권에선 어김없이 친일파 청산 문제와 독립운동 유공자 지원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만큼 신대규 씨가 친일파 청산을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신 씨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아버지는 악랄한 친일파였지만 자신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임한 사람도 있다”며 “100년이나 지난 지금 정부가 앞장서 친일파의 후손들을 적대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정부 차원에서 문제를 강제로 해결하기보단 친일파의 후손들이 스스로 선조들의 죄를 인정하고, 친일 행위로 얻은 이득은 사회에 환원했으면 좋겠다”며 자발적인 반성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신대규 씨는 독립유공자에 대한 지원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며 “대표자로 활동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기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대규 씨는 국가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해외동포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그는 “국가가 힘이 없었을 때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난 동포들의 후손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정부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인지 여부에 얽매이지 않고 해외동포에 대한 포용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대규 씨는 앞으로 후손들이 지켜나가야 할 가치를 묻자 ‘정의’라고 답하며 “모두가 올바른 정의관으로 확고하게 무장하고, 그 정의관이 민족과 국가의 뿌리가 된다면 남북통일을 이루고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욱 선생의 ‘불기심’ 정신을 이어받아 정의가 바로 선 대한민국의 미래를 소망한다.

*요시찰함(要視察函): 경찰이 감시의 목적으로 요주의 인물의 집 앞에 달아뒀던 함.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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