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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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예진 기자
  • 승인 2019.03.03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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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 변천사

‘뉴트로(newtro = new+retro)’ 과거를 현재의 감성으로 새롭게 되살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고리타분한 ‘우리 땐 말이야…….’ ‘썰’에서 벗어나 『대학신문』이 서울대의 옛 모습을 여섯 번의 연재를 통해 만나보고자 한다. 지금 학생들은 경험하지 못한 서울대의 아날로그 감성을 즐겨보자.

사진제공: 『대학신문』 1982년 8월 23일

이번 주엔 ‘서울대 수강신청의 변천사’를 다루고자 한다.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던 20세기엔 수강신청을 어떻게 했을까?’ ‘지금의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신문』 기자들이 약 40여 년 전 발행된 『대학신문』을 펼쳤다. 1980년부터 2010년까지 발행된 『대학신문』엔 수강신청의 ‘새로운 과거’가 그려져 있었다.

◇1980년대 OMR 카드 수강신청=1980년대엔 학생들이 수기로 OMR카드를 작성해 수강신청을 했다. 수강신청 기간 이후 등록을 하는 지금과 달리, 등록과 수강신청을 함께 했다. 학생들은 수강신청용지와 OMR카드에 필요사항을 기입한 후 지도교수와 학과장 승인을 받고 수업을 개설한 학과나 본인의 학과 사무실에 제출했다. 이때 교과목, 강좌, 학번 등을 컴퓨터용 수성펜을 이용해 작성했는데 학생들이 이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아 오류가 나는 일이 잦았다. 1984년부터 신입생은 기초과정 교양 과목(현 ‘학문의 기초’ 과목)을 수강해야 했는데, 특별 시험에서 합격한 과목에 대해선 학점이 인정돼 해당 과목 수강이 면제되기도 했다.

◇1990년대 수강신청 전산화 도입과 강의평가제=1990년엔 한국사, 국민윤리, 교련과목 등의 법정필수과목이 폐지되고 교양 개설 과목 수가 대폭 확대돼 교양과목 수강신청이 치열해졌다. 그리고 1991년, 수강신청 전산화 시스템이 도입됐다. 전산화 이후 인기과목을 신청하려는 수강신청 열기를 ‘수강전쟁’이나 ‘거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땐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아 새벽 3시부터 학생들이 중앙전산원(현 정보화본부) 앞부터 행정관 앞 잔디밭까지 이어지는 행렬을 이루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개인 PC 모뎀으로 통신망에 접속해 수강신청을 하려는 학생들 때문에 통신이 마비되기도 했다. 약 8년간 PC통신을 통해 수강신청이 이뤄지다가 1998년 인터넷 수강신청이 도입됐다. 같은 해 강의평가제도 본격적으로 시작돼 강의 시간에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학생들이 강의 전반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게 됐다.

◇2000년대 신입생 할당과 홀짝제=2000년대엔 현재와 같이 재학생 수강신청 이후 신입생의 수강신청이 이뤄졌다. 그런데 개설된 수업에 학년별로 수강인원을 할당하지 않아 1학년 대상 일반교양 과목에서 1학년 비율이 7%밖에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2004년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과목당 학년별로 수강인원을 할당했지만 학년별로 수요 측정이 불가능해 폐지됐다. 결국 2005년부턴 1학기 수강신청 때 일정 비율을 신입생에 할당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엔 수강신청 서버의 계속되는 마비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홀짝제를 도입해 수강신청 기간을 이틀로 늘렸다. 한편, 2000년대에도 수강신청 전까지 강의 계획서가 올라오지 않는 수업이 다수였다.

30여년 간 수강신청이 이뤄진 변천사를 살펴보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수강신청 방식도 달라졌지만 ‘전쟁’ 같은 수강신청과 그와 관련된 학생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 만큼 개선될 ‘새로운 미래’의 수강신청 모습을 기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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