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플래시 게임 규제, 논란의 중심에 서다

지난달 20일 개인 제작자들이 자작 플래시 게임을 무료로 공유하는 사이트인 주전자닷컴은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등급 분류 규정 위반으로 인한 제재를 받았다”며 ‘자작 게임란’ 폐쇄를 공지했다. 폐쇄 공지 이후 약 4만 개의 플래시 게임이 일괄적으로 삭제될 위기에 처했고, 어린 창작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이 애써 만든 게임이 삭제될 위기에 내몰려야 했다.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이 “이사 떡을 돌리는 데 식약청이 들이닥치는 꼴”이라며 이번 규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가운데, 게임위가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에 대한 단속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논란이 거세졌다.

게임위의 단속에 항의하는 뜻으로 주전자닷컴에 올라온 ‘게등위가 주전자닷컴 없애는 게임’.

마른 하늘에 규제 벼락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할 목적으로 게임물을 제작·배급하고자 하는 자는 게임물을 제작하거나 배급하기 이전에 게임위로부터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 이번 제재의 근거 역시 주전자닷컴에 업로드된 게임이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전자닷컴에 게임을 등록하는 개발자들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정규 코딩 교육 과정에서 배운 내용들을 이용해 직접 만들어본 자작 게임을 올리는 청소년들이 대다수다. 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이동섭 의원 측은 “해당 법률은 ‘바다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게임의 난립을 막기 위한 규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며 “이번 사건처럼 플래시 게임 규제에 적용하는 것은 입법 취지와 정확히 합치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게임위의 이번 제재는 교육부의 코딩 진흥 정책과도 정반대의 성격을 띤다. 교육부는 2015년 교육과정을 개정하며 4차 산업시대에 대비한 인재육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2019년부터 초·중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이 의무화되고 소프트웨어 교육 선도 학교를 선정해 지원하는 등 코딩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처럼 4차 산업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전까지 적용하지 않던 규정을 갑자기 끌고 와서 학생들을 규제한 게임위의 행보는 다소 엉뚱하다. 갑작스런 규제의 배경에 대해 게임위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규제했다”는 다소 피상적인 답변만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주전자닷컴 관리자 윤우석 씨는 이번 플래시 게임 규제에 대해 “꿈을 좇아 스스로 창작하고 공유하는 아이들에게 격려와 지원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순수한 창작활동을 어른들의 잣대에 맞춰 훼방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지경”이라며 “규제하려고만 드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더욱이 이번 규제는 지난 2010년 ‘MOD, 쯔꾸르와 같은 게임 툴을 이용해 만든 게임들도 심의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에 게임위가 “상업적인 이용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시정조치를 내렸다”며 “비영리적인 아마추어 게임까지 차단할 계획이 없다”고 했던 것과 완벽히 배치된다는 점에서 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플래시 게임 역시 해당 게임툴로 만든 것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비현실적 규제의 벽에 떠나가는 창작자들

만일 창작자들이 스스로 게임물 등급을 게임위에 심의받는다면 이전처럼 제작과 배포가 가능하다. 그러나 해당 규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하다는 게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중론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다. 게임 제작자들이 정식 심의를 받기 위해선 게임위의 기준에 따라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게임위 측에서 제시한 심의 수수료 조견표(표①)에 따르면, 개인 창작자가 게임의 등급 분류를 희망할 경우 최소 2만 원에서 최대 몇 십만 원에 이르는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업체 제작 게임에 비해 30% 가량 감면된 금액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꿈나무들에겐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표① 개인 자격으로 심의를 받을 때의 수수료 조견표. 기본 금액에 심의받고자 하는 게임에 해당하는 이용형태계수와 장르계수를 곱한 값이 심의수수료다. 예를 들어 45MB짜리 오프라인 격투 게임인 ‘레바의 모험’을 배포하려 할 경우 56,000원을 내고 심의를 받아야 한다.

게임위로부터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창작물 등록을 중단할 것을 요청받는 것은 비단 주전자닷컴만이 아니다. ‘플래시365’와 ‘주니어네이버’ 등의 사이트 역시 지난 2월 게임위의 요청을 받고 플래시 게임 서비스 종료를 알렸다. 이에 창작자들의 수수료 부담 없이는 자신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평가받을 기회가 사라진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게임 산업의 ‘유스팜’(Youth Farm)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섭 의원실의 이도경 비서관은 “PC게임을 지나치게 강력하게 규제할 경우 개발자들은 모바일 오픈 마켓으로 눈을 돌리거나 아예 의욕을 잃고 게임 개발자의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작들이 구글 플레이 스토어 등 모바일 플랫폼에 집중되면서, 독창적 PC 게임이 국내에서 출시되는 사례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게임 산업이 가장 발전된 나라인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게임 등급 심의가 자율화돼 있고, 직접 유통되는 콘솔게임의 경우를 제외하곤 대다수의 게임이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보면 우리나라의 해당 규제가 게임 산업 전반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도경 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게임을 제외한 다른 컨텐츠는 이 정도의 사전 검열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탓에 지나치게 엄한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달 28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뒤늦게 해당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청소년이 개발한 비영리 목적 게임의 경우 게임위의 등급 분류를 받지 않고도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의 공공기관 사이트를 통해 게임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전반적인 수수료 감면도 함께 추진코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멀쩡히 운영되던 민간 사이트를 모두 규제한 다음 뒤늦게 공공기관이 구축한 사이트에서 제한적으로 게임을 공개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윤우석 씨는 “수수료를 아무리 면제하더라도 학생들에게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장벽이 될 수 있다”며 “자율등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의원 측 역시 “지나친 검열을 삼가야 한다”며 자작 게임을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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