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3D 푸드 프린팅’의 본고장을 다녀오다

조만간 원하는 음식을 집에서도 뽑아 먹을 수 있게 될지 모른다. 4차 산업혁명과 기존의 식품공학이 만나 ‘3D 푸드 프린팅’(3D Food Printing)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3D 프린팅이 플라스틱과 같은 고체 재료를 이용해 제품을 만든다면, 3D 푸드 프린팅은 식용 소재를 출력해 피자나 파스타 등의 음식을 만들어낸다. 아직까지 국내에선 프린터로 ‘출력해서 먹는 음식’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소하다. 하지만 유럽 일대에선 2000년대부터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을 뿐만 아니라 이미 3D 프린터로 출력한 음식을 팔고 있을 만큼 3D 푸드 프린팅 기술이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등지에 위치한 식품 기업과 연구소에 방문해 3D 푸드 프린팅 기술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일상적인 식생활에 불어올 변화의 바람에 대해서도 전망해 보고자 한다.

프린팅에 맛을 더하다

현재 대부분의 3D 푸드 프린터는 재료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음식을 출력한다. 레시피를 3D 푸드 프린터에 입력하면 프린터는 노즐의 위치를 조정해 재료를 쌓는다. 따라서 사용자가 설계한 음식의 레시피 모양 그대로 정확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이진규 교수(이화여대 식품공학과)는 “레시피 프로그램이 x, y, z축에 따른 3차원의 좌표를 지정하면 프린터가 그에 맞는 위치에 재료를 출력해 음식의 형태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재료를 한 층씩 쌓아 음식을 만든다는 기본적인 원리는 같지만 재료의 고유한 성질에 따라 작동원리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이재환 교수(성균관대 식품생명공학과)는 “적당한 점탄성을 지니는 재료는 압출 적층*을 통해 바닥부터 한 층씩 쌓아 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형태를 유지하지만, 파우더 형태의 재료는 레이저를 이용해 각 층을 응고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재료의 특성에 맞게 전처리·후처리 과정에서 온도를 변화시키거나 파우더를 이용해 재료를 굳히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가공법을 통해 3D 푸드 프린터는 서로 다른 성질의 재료들을 동시에 뽑아내 일반 식품과 유사한 맛과 식감을 갖는 제품을 출력할 수 있다.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재료를 출력해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기존의 식품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식품에 비해 생산 과정이 간단하다. 기존의 식품 공정은 하나의 공정 설비에서 하나의 제품만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3D 푸드 프린팅은 하나의 기기에서 수많은 제품을 출력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생산하기 위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획기적이다. 내츄럴 머신스 공동 대표 르넷 꾸스마 씨는 “3D 푸드 프린팅은 생산 설비에 구애받지 않고 무한한 음식을 만들어낸다”며 “이를 통해 개개인의 필요에 의한 개인별 맞춤형 식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3D 푸드 프린팅을 통해 일반 가정에서 완전한 식품을 이용할 수 있다면 기존의 식품 포장과 운반, 그리고 조리 과정을 생략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마튼 슈바이처 교수(네덜란드 와게닝겐대 식품공학과)는 “3D 푸드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면 식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기존의 과정들이 간소화돼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이라며 3D 푸드 프린팅의 장점에 관해 설명했다.

3D 푸드 프린팅 레시피 프로그램을 이용해 삼차원의 음식을 설계하는 모습이다.
내츄럴 머신스에서 개발한 3D 푸드 프린터 ‘푸디니’이다. 좌측의 5개의 카트리지로 여러 재료를 한 번에 출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 3D 푸드 프린팅의 본고장에선

유럽의 여러 식품 연구소는 3D 푸드 프린팅이 갖는 장점에 주목해 2000년대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식품 기업들을 중심으로 3D 푸드 프린터가 개발됐고 이후 영국이나 스페인 등에 3D 푸드 프린팅을 통해 만들어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문을 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이런 3D 푸드 프린팅을 다양한 곳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현재는 아래서부터 한 층씩 쌓아 올린다는 3D 푸드 프린팅의 원리를 이용해 식품의 미세구조를 조정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식품을 덩어리째로 만들어내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적층하는 방식으로 식품을 생산하면 식품의 특정한 위치에 특정한 재료를 삽입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식품 입자 사이에 가교제* 역할을 하는 미세 입자를 삽입하면 형태적인 안정성을 높일 수 있고 식품의 화학반응까지도 조절해 원래의 맛과 다른 맛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마튼 슈바이처 교수는 “가교제를 이용해 겔화점*과 같은 식품 재료의 고유한 물리적인 특성을 조절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더 적은 양의 설탕으로 기존과 같은 단맛을 느끼게 하는 등 더욱 건강한 식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 외에도 식품의 영양분을 조정하는데 미세 구조의 조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르넷 꾸스마 씨는 “개개인에게 맞는 영양정보를 바탕으로 음식마다 영양분의 함량 및 식감을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D 푸드 프린팅 기술에 대한 연구를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시도도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EU와 독일의 식품회사 바이오준이 함께한 ̒퍼포먼스(PERFORMANCE, Personalized Food for the Nutrition of Elderly Consumers)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퍼포먼스 프로젝트는 음식을 씹어 삼키는 것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함유한 음식을 적절한 식감을 갖도록 출력해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바이오준̓의 쿡 마티아스 대표는 “3D 푸드 프린팅은 오늘날의 데이터 기술과 융합될 수 있다”며 “3D 푸드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면 건강 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준에서 개발한 스무스푸드의 모습이다. 닭고기와 콩의 맛을 내는 카트리지를 3D 푸드 프린터로 출력한 것이다. 쿡 마티아스 대표가 기자에게 건넨 스무스 푸드는 실제 음식과 맛은 같으나 씹기 곤란한 환자들이 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다.

또한 네덜란드의 하스호게스쿨에선 소아병동의 환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단백질을 섭취시키기 위해 3D 푸드 프린터로 단백질 아이스크림을 생산하기도 한다. 안티엔 주이드버그 교수(네델란드 하스호게스쿨 식품혁신과)는 “기존 아이스크림과 같은 맛과 향을 내 환아들이 거부감 없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며 단백질 아이스크림 사업의 의의를 설명했다.

먹음직스러운 미래를 상상하다

3D 푸드 프린팅은 본격적인 상업화를 앞두고 있다. 관련 종사자들은 상업화를 위해선 식품 신기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극복해 시장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3D 푸드 프린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인 ‘3-dible’의 운영자 제이슨 레이 씨는 “식품은 안전과 직결돼 있다 보니 소비자들은 식품 안전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화에 보수적인 편”이라며 “신기술이 식품 업계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소비자에게 기술을 많이 노출해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그 기술을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기 조작이나 레시피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감도 문제다. 내츄럴 머신스 공동 대표 르넷 꾸스마 씨는 “지금은 가정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전자레인지 역시 초기엔 조작법이 어려워 대중화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3D 푸드 프린팅이 새로운 기술인만큼 소비자들이 더욱 어렵게 받아들일 수 있어 조작법을 단순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3D 푸드 프린팅 기술이 이런 난점을 극복해 상업화에 성공한다면 기존의 일상적인 식생활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식사를 위해 식자재를 준비하고 요리하는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안티엔 주이드버그 교수는 이를 두고 “현재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간편식이나 배달음식 문화가 활성화돼 있는 상황에서 3D 푸드 프린터의 보급화는 요리 문화 자체를 소멸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밖에도 소비자들은 더욱 주체적인 식품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제이슨 레이 씨는 “소비자가 식료품점에 전시된 식품 중 원하는 것을 고르는 것에서 나아가 날마다 음식을 직접 설계해 먹게 된다”며 “개인의 기호 및 건강 상태에 따라 원하는대로 식품의 영양 성분까지도 조절할 수 있다”고 적극적인 식품 소비문화가 자리 잡게 될 것이라 설명했다.

처음엔 생소하고 낯설었던 스마트폰이 이젠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듯 3D 푸드 프린터 역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태동기의 기술 장벽을 넘어 3D 푸드 프린팅이 보편화되면 기존 식문화는 송두리째 뒤흔들릴 것이다. 유럽을 넘어 한국에서도 최근 소수의 연구자가 관련 연구에 착수했다. 피자나 파스타를 넘어 김치와 불고기와 같은 한식까지도 프린터로 간편하게 뽑아 먹을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압출 적층: 유동성이 있는 재료를 높은 압력을 통해 노즐을 통과시킨 후 층층이 쌓는 방식

*가교제: 입자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물질

*겔화점: 덩어리가 굳어져 유동성이 없어지기 시작하는 온도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kr

레이아웃: 황지연 기자 ellie0519@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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