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덕경
체육교육과 석사과정

최근 빙상연맹 사건으로 인해 체육계가 홍역을 앓고 있다. 관련 기사를 보자마자 6년 전 서울대 운동부 소속으로 중학교 운동부와 합동 훈련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박아!” 잔뜩 상기된 코치의 목소리에 1학년 남학생 한 명이 코트에 꿇어앉아 “쿵”하고 스스로 머리를 바닥에 던졌다. “더 세게!” 코치가 윽박지르자, 학생은 더욱 세게 머리를 던졌다. 코치가 지시한 전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대가였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은 두려움에 더욱 실수하지 않으려 애썼다. 3년 뒤, 그 중학생 선수들 중 한 명에게 운동을 그만뒀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만둘 수밖에 없었을 수많은 이유들이 떠올랐지만 당시의 억압적 훈련 분위기가 큰 몫을 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 우리나라 운동선수 양성 시스템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 지도 시스템은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엘리트 스포츠 성장 방식의 굴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당시 우리나라 스포츠 정책은 ‘성적’과 ‘효율’, 두 가지 가치를 골자로 ‘88서울올림픽을 통한 스포츠 강국으로의 도약’이란 목표를 이뤘다. 아직까지 많은 엘리트 선수 지도자들이 당시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듯하다. ‘기능적 숙련도 향상’ ‘주입식 전술 교육’ ‘신체 능력 향상’ 등 훈련 내용의 대부분이 개인 혹은 팀 퍼포먼스를 단기간에 향상시켜 경기에서 이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목표로부터 지도자들은 ‘강압적 훈련 분위기 조성’의 명분을 찾았다. 그리고 많은 학생선수들이 ‘왜 이 훈련을 하는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지도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운동 기계가 됐다.

거센 비난을 마주하고 있는 현 시점이 운동선수 양성 시스템이 변해야 할 적기다. ‘운동 경험을 통한 전인적 성장’ ‘운동하고 싶은 환경’과 같은 가치가 ‘성적’과 ‘효율’을 대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훈련 내용 면에서 프로그램 구성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운동을 계속해야 할 동기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종목 특유의 매력이 무엇인지, 연습한 전술을 이해하고 경기에서 구현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얼마나 짜릿한지,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경험이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체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기는 운동’이 아닌 ‘스포츠’를 배워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운동 참여 동기를 쉽게 내면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운동선수 양성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빙산연맹 사건의 여파로 이미 국내 체육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체육특기자 전형을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출범했다. 또한 몇몇 시·도 교육청은 운동부 합숙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이 변화들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지도자와 학생 간에 형성된 일방적 의사소통 방식의 기형적 구조의 원인을 살피고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학교 운동부 지도자 직무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비인격적 지도자를 지속적으로 색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생 선수들이 훈련을 통해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승리, 결과가 아닌 ‘도전’ ‘협력’ ‘극복’에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 다시 말해, 목적 달성(승리)을 위한 수단이 가장 스포츠다워야만 한다는 국민적 공감을 얻어야 한다.

성적·결과지향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적어도 스포츠는 달랐으면 좋겠다. 스포츠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승리’이기에 역설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가치가 우리나라 체육계를 너무나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되돌아보면 오히려 ‘이기지 않음’에서 배우는 것들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찾아온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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