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집에 이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실제 활동공간은 집보다 오히려 학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캠퍼스는 기능적으로 효율적이며, 편안하고 안전해야 한다.

1980년대 초 관악 캠퍼스는 삭막했다는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공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공과대학 근처는 인적마저 드물었다. 그래도 아무 생각없이 걸을 수 있었고 모여 앉아 카드를 즐길 수 있었던 잔디밭이 넓었다. 편리하지는 않았지만 한가롭고 여유있는 캠퍼스였다.

당시에 비해 지금 교내의 활동 인구는 몇 배나 많아졌다. 차량 증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많은 건물들이 교육과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서로간에 혹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과밀로 인한 혼잡, 열린 공간(open space)의 감소 등으로 오히려 면학 분위기 악화와 연구력 약화로 이어질 지경이다. 그 간의 급격한 양적 팽창은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이제부터라도 캠퍼스의 개선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가야 한다. 또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의 대표 대학으로서, 캠퍼스의 계획과 관리에서도 선도적이고 다소 실험적일 필요가 있다.

환경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이를 지향하는 마스터플랜(master plan)을 수립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 교내 구성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의견의 수렴을 통해 마스터플랜을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플랜에는 보행자 중심의 교통체계, 환경친화적 물 관리, 실험실 폐기물의 안전한 관리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서울대학교는 서울시내에서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관 중의 하나이다.

우선 환경친화적인 물 관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신축 기숙사 등에 도입한 빗물모으기 시설은 바람직한 시도이다. 주차장이나 차도, 보도는 투수성 재료로 포장해, 빗물의 지하 침투가 용이하게 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빗물의 관리는 집중 호우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재의 이점도 갖는다. 실제로 집중호우시 교내 곳곳에서 침수 사태가 발생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교내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직접 처리하는 오수처리시설도 생각해야 할 때다. 선진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오염자 부담 원칙은 환경정책의 기본이다. 처리한 오수를 잡용수로 재이용하는 중수도의 도입은 자원순환형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 또, 처리한 오수는 교내 수환경 공원 조성에 이용되거나 도림천으로 방류될 수도 있다. 자하연과 같은 수변 공간이 주는 잇점은 부연할 필요도 없다. 체육시설도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공과대학에 있던 연못을 메운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처리수를 도림천에 방류하면 하천 유지용수 확보로 하천 생태계의 복원이 가능하다. 캠퍼스의 환경 개선과 서울대학교의 책임있는 자세는 교내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게도 긍정적 평가를 받을 것이고 나아가 왕따당하는 서울대학교에서 사랑받는 서울대학교가 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단풍으로 산과 길이 곱다. 우리 서울대 캠퍼스는 이전 당시의 마스터플랜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캠퍼스라고 생각한다. 있는 일부터 시작하자. 이제부터 캠퍼스를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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