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렌즈’를 선물한 생물학자

해밀턴 선생님. 선생님이 훌쩍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네 해가 흘렀습니다. 새 세기와 새 학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0년 3월 어느 날 선생님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제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십니까?

기억하세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미시건 대학에 계시던 시절 제가 선생님의 제자가 되려고 찾아 뵈었던 1983년 겨울 말입니다. 그 때 선생님 댁에서 보낸 닷새는 제 생애 중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같은 학과 동료였던 리처드 도킨스 박사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준 이른바 ‘유전자의 렌즈(genetic lens)’를 우리에게 선사한 선생님과 매일 밤 학문을 논할 수 있었던 영광을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마지막 날 저를 다시 불러 어쩌면 영국으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하신 말씀 때문에 하버드 대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러 갈 수밖에 없었던 제 마음을 주변 사람들은 가늠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마치고 선생님이 떠나고 없는 미시건대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지금의 서울대로 돌아온 다음 저는 줄곧 안식년만 기다렸습니다. 그저 일년이라도 선생님 곁에서 머물며 그 옛날 밤을 새며 나눴던 그 많은 가설들을 하나하나 검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끝내 제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생물의 이타주의 진화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분석해

 

선생님, 저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어언 20년이 돼 갑니다. 어느 해, 어느 과목에서라도 선생님의 이론을 가르치지 않았던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해밀턴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기시작하면 누구나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 옛날 다윈 선생님도 풀지 못해 괴로워했던 자기 희생, 즉 이타주의의 진화는 집단도 아니고 개체도 아닌 유전자의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포괄적응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은 실로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많은 삶의 의문들이 하루아침에 실타래가 풀리듯 술술 풀려나가는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늘 그 흥분에 삽니다.

저는 종종 학생들 앞에서 다윈 선생님이 우리 대학에 오신다 해도 아마 업적이 모자라 교수도 못해먹을 거라는 푸념을 합니다. 논문의 질보다는 편수가 더 중요한 풍토 속에서는 아마 선생님도 견디기 어려우실 겁니다. 어쩌면 지금쯤엔 제가 편수로만 보면 선생님보다 더 많은 논문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논문이라고 어찌 다 같겠습니까? 선생님의 논문은 매 편마다 생물학의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기초를 제공


물론 출판하는 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선생님의 1964년 『이론생물학회지(The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논문은 진화생물학의 새 지평을 열었고 요즘 각광받는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기초를 제공하셨지요. 저는 요즘도 분자생물학 분야에 비해 워낙 발표되는 논문의 수가 적은 바람에 인용도가 떨어진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만, 선생님의 그 논문은 생물학 전 분야에서 가장 인용횟수가 높은 논문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그 겨울 선생님은 기생충과 기주의 관계에 관해 쓴 제 석사 학위논문에 관해 유난히 많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기생충에 대한 방어전략으로 성(sex)이 진화했다고 하신 선생님의 논문 덕에 어제의 학문으로 설움받던 기생충학이 하루아침에 가장 흥미로운 주제가 되기도 했지요.

선생님의 이론은 이제 선생님이 생전에 한번 와보지도 못한 이곳에서도 펄펄 살아 움직입니다. 자연과학은 말할 나위도 없고 인문학자들의 모임에서도 유전자의 관점은 이제 결코 무시 못할 주제가 되었습니다. 몇년전에는 어느 미술대전에서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의 작품이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주셔서. 이젠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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