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를 개척하듯 한국농업에 애쓴 35년

“황무지를 개척하는 선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고학균 교수는 30여년 전 농업기계학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마음을 이같이 설명하며 말문을 열었다.

“34년 6개월의 시간이 너무 바쁘게 지나간 것 같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며 “요즘은 지금까지의 교수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고 교수는 1970년부터 교수로 재직해 여러 보직을 거치며 농생대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그는 “학장 시절 농업생명과학대학을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것과 교무담당 학장보 시절에 ‘농과대학’의 명칭을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바꾼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지난 날을 돌이켰다.

벼 수확후 처리기술을 개발하는 등 한국 농업을 기계화하는 데 일조한 고 교수는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농수산학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지난 2004년 「농민신문」에서 선정한 ‘광복 이후 한국농업발전에 영향을 미친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교수들이 본연의 임무인 교육, 그 중에서도 인성 교육에 힘써야 한다”며, “승진하려면 논문과 연구에 힘써야 하는 경쟁체제이지만, 연구와 교육의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 된다. 교수들은 학생들과 대화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그만두려는 제자에게 장학금을 마련해주기도 했다는 고학균 교수. 그는 학생들에게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큰 비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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