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배리어프리, 장애인이 문화 생활을 마음껏 즐기기 위한 첫걸음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장애인이 편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없앤 사회 환경을 뜻한다. 2009년에 만들어진 미국 비영리 기구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이어’(Metropolitan Washington Ear)가 대표적으로 배리어프리 문화를 주도한 단체다. 이들은 매년 공연 관람에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에게 50편 이상의 음성 해설을 제공한다. 영국의 전문 성우가 모여 만든 ‘음성해설협회’는 공연이나 영화 등을 해설해줌으로써 장애인의 문화생활에 도움을 준다. 아직 국내에선 배리어프리 문화의 도입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최근 장애인을 위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장애인 문화생활의 현주소와 이들이 겪고 있는 문화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짚고자 한다.

그늘진 문화의 사각지대

현재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문화 향유 기회를 갖지 못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은 평균적으로 TV 시청에 96.6%, 문화예술을 관람하는 데는 6.4%의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실외 여가 활동을 잘 즐기지 못해 TV 시청과 같은 실내 여가 활동을 주로 하는 것이다. 장애인이실외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선 별도의 보조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관련 서비스가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 박민영 씨는 “배리어프리 공연을 관람해본 적이 없다”며 “대부분의 공연·전시 기획자가 배리어프리 문화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장애인은 문화생활에 있어 불편함을 호소한다. 시각장애인 표기철 씨는 “공연을 관람할 때마다 장애인 좌석이 공연장의 뒷공간에만 마련돼 있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시각 장애인 이혜정 씨는 “공연을 볼 때마다 배우의 의상이나 무대에 사용된 소품을 알 수 없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애인은 문화생활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눈높이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는 만큼 사회 곳곳엔 이들을 위해 문화생활의 장벽을 허물려는 시도가 있다.

문화의 문턱을 낮추다

장애인은 공연의 시청각 요소를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 이에 소셜 벤처 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위해 자막과 내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셜 벤처 ‘컬쳐커넥트’에선 직접 제작한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제공한다. 자막엔 배우의 대사뿐 아니라 표정이나 행동과 같은 반언어·비언어적 표현도 포함돼 있다. 컬쳐커넥트에서 진행한 뮤지컬 ‘번지 점프를 하다’를 관람한 청각장애인 조민희 씨는 “배우의 대사만을 자막으로 옮긴 것으로는 공연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이번 공연에선 자막에 배우의 감정까지 표현돼 배우와 호흡하는 것 같았다”고 공연 관람 소감을 전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선 2015년부터 매달 시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과 청각 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이 담긴 영화를 상영한다. 올해는 <아이 캔 스피크>(2017) 외 4편을 상영할 예정이다. 공연장을 방문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공연을 오디오 콘텐츠로 전환하기도 한다. ‘스튜디오 뮤지컬’이 제작한 팟캐스트 ‘이곳은 들리는 공연장’에선 장애인이 공연장에 찾아가지 않고도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오디오 클립을 제공한다. 

왕경업 씨는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과정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며 "국내에서 공연되고 있는 모든 작품의 배리어프리화를 꿈꾼다"고 전했다. (사진 제공: 컬처커넥트)
왕경업 씨는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과정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며 "국내에서 공연되고 있는 모든 작품의 배리어프리화를 꿈꾼다"고 전했다. (사진 제공: 컬처커넥트)

전시에선 전시 공간의 배리어프리화가 중요하다. 장애인이 전시를 관람하는데 방해받을 만한 공간적 요소를 제거하면 이들이 보다 편하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이 전시회를 보러 오는 길에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통로, 점자 보도가 있는지 고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시장 내부에선 관람 동선 안내를 위해 도우미를 배치하거나 관람객이 작품 앞에 서면 자동으로 해설이 재생되는 시스템을 설치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연세대 문화디자인경영학과 학생 6명이 모여 만든 스타트업 ‘두시반 프로덕션’에선 작년 3월 배리어프리 전시를 진행했다. 두시반 프로덕션 팀원 이연지 씨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공연을 관람하러 온 경우 그가 전시실의 모퉁이를 휠체어로 돌 수 있을지 확인했다”며 “작품별로 작품을 감상하는 적정한 거리가 있는데. 이를 장애인에게 어떻게 알릴지 고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시의 주제나 작품이 비장애인만을 위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하기도 한다. 예컨대 두시반 프로덕션의 전시 ‘꿈의 언어’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기’를 주제로 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최근 장애인을 위한 촉각 명화라는 새로운 전시 콘텐츠도 생겨났다. 촉각 명화는 기성 미술 작품을 입체로 재구성해 시각 장애인이 촉각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것이다. 봉천동에 위치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선 촉각 명화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미술 작품 이해를 돕는다. 실로암사회복지관 촉각교재제작팀 미술점역사 이지연 씨는 “시각 장애인은 학교에서 이론 위주의 미술 교육을 받는다”며 “복지관에선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집중해 미술 교육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촉각 명화를 제작할 때 작품의 크기나 작품에 사용된 재료와 기법 외에 다른 요소도 고려한다. 촉각 명화에선 작가가 작품에서 표현하려 했던 대상의 색이 무엇인지에 따라 작품의 소재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 씨는 “작품 속의 사물이 빨간색이면 따뜻한 소재를, 파란색이면 차가운 소재를 사용한다”며 “같은 파란색 물체일지라도 그 물체의 특성에 따라 다른 소재를 선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넘기 힘든 장벽

장애인이 자유롭게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장애인은 공연이나 전시를 예매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느낀다. 비장애인을 주 사용자로 가정하고 만들어진 예매 플랫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컬쳐커넥트 대표 왕경업 씨는 “대부분 공연·전시 티켓 예매 플랫폼은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는 구조”라며 “앞으로는 자동응답시스템과 같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청각 장애인이 매번 낯선 공연 관람 장소를 마주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평소 가본 적 없는 공연장까지 이동하기 힘들고 청각장애인은 통역사 없이 현장에서 소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연 자막이나 전시 해설이 제공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스마트폰 사용에 서투른 장애인에겐 또 다른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실제 두시반 프로덕션 전예원 씨는 “장애인이 전시 관람을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 이용을 어려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왕경업 씨는 “스마트폰 사용에 서투른 사람을 위해서는 공연 전후로 기기 조작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설명했다. 

성숙한 문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아직 배리어프리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장벽이 많지만, 언젠가 그 장벽이 허물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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