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학원 베나슈누 교수 초청 강연

흔히 외국인 강연자를 학술대회에 초빙할 경우 학문적으로 발달한 선진국 출신의 사람이 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달리 지난 14일(목) 개최된 국제대학원 개발협력세미나에선 알제리 재무장관을 역임한 압델라티프 베나슈누 교수(파리대 경제학과)가 강연자로 등장해 많은 청중의 기대를 받았다. 세미나의 강연자로 초청된 베나슈누 교수는 경제력의 여섯 가지 원천을 바탕으로 지난 4세기 동안 전개된 세계 패권의 흐름을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제3세계가 직면한 현 상황과 향후 대처에 대해선 원활히 논의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베나슈누 교수는 강연을 시작하며 “경제적 힘의 원천이 무엇이며, 과거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라며 “이를 통해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전망을 조망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베나슈누 교수는 강연을 시작하며 “경제적 힘의 원천이 무엇이며, 과거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라며 “이를 통해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전망을 조망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경제력의 원천이 패권국을 만들기까지

베나슈누 교수는 경제력의 여섯 가지 원천으로 자원 접근성, 국내시장의 규모, 기술적 역량, 재정적 힘, 군대, 소프트파워를 꼽았다. 그는 각 요소의 결합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인이라고 봤다. 국가의 성패를 판가름하기 위해선 요소들이 결합한 양상을 살펴야 한다. 각 요소 사이엔 성공적인 조합과 그렇지 못한 조합이 있다. 베나슈누 교수는 “자원 접근에 유리한 국가라 하더라도 그 자원을 기술적 역량과 경제성장으로 변환시키기 어렵다면 좋지 못한 조합”이라며 성공적이지 못한 조합의 예를 들었다. 이는 보통 자원의 저주라 불리는 상황이다.

지난 4세기 동안 국내외의 경제적 원천들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국가는 세계 패권국으로 자리하며 역사적 흐름을 주도했다. 베나슈누 교수는 각국의 경제적 원천과 그 조합을 바탕으로 17세기의 네덜란드와 18세기의 영국에 이어 미국이 경제 강대국의 자리에 오르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17세기에 네덜란드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높은 자원 접근성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당시 고부가가치 자원이었던 향신료를 독점적으로 교역할 수 있었던 네덜란드는 부를 축적해 경제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은 이에 더해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이끌어 세계의 패권을 쟁취했다. 또한 파운드의 기축통화 지위를 바탕으로 긴 시간 동안 세계의 패자로 자리했다. 영국과 유사한 기반을 갖고 등장한 미국은 기술력과 재정적 원천의 결합을 통해 패권을 쥐었고 군사력을 통해 자원 접근성을 높였다. 베나슈누 교수는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정을 통해 자원을 제공받고, 군사안보를 제공함으로써 군사력을 통한 자원 접근을 실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패권국이 가졌던 기본적 요소와 그 조합은 유사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요소를 확보한 국가가 등장함으로써 패권 교체가 일어났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오늘날의 맥락도 간략하게 다뤄졌다. 베나슈누 교수는 미중 세력 경쟁에서 중국이 군사력과 기술적 발달 수준에서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활용해 위안화를 기축통화의 자리에 올리고자 하며 이를 통해 달러의 독점적 지위를 흔들고 있다. 군비경쟁과 기술격차 측면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며 자국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타파하고자 일방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국가들이 상호의존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한 국가의 결정은 필연적으로 다른 국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베나슈누 교수는 “다른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국가의 행위는 결국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초래한다”며 “타국뿐 아니라 자국에도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외의 국가별 상황이 지니는 의미와 연관성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세계적 맥락을 피상적으로만 훑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세미나가 남긴 의의와 한계

베나슈누 교수의 개인적 경험과 특징은 세미나에 차별성과 장점을 더해 줄 것으로 예상됐다.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알제리에서 나고 자랐으며, 자국에서 재무장관까지 역임하는 등 흔치 않은 경험을 하며 자신만의 신념을 확립했을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수의 참가자는 개발도상국이 변화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강연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강연에서 시간적 문제를 이유로 생략됐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참가자 A씨는 “객관적으로 봐도 세미나가 참석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누구나 아는 내용을 피상적으로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아 전달된 메시지가 크게 없었다”고 평가했다.

강연이 끝난 후 이어진 질의응답 과정에서 몇몇 참가자들은 프랑스어로 질문을 쏟아냈다. 베나슈누 교수도 이를 막지 않고 오히려 프랑스어로 답변하면서 프랑스어를 모르는 참가자들이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영어로 진행된다고 사전에 안내된 행사의 질의응답 시간에 이런 상황이 반복돼 프랑스어를 모르는 참가자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간 후 간략하게 영어 통역이 이뤄졌으나 워낙 질문과 답변의 내용이 길어 짧은 요약으론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개발도상국,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이 아직까지 경제발전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베나슈누 교수는 “경제다변화를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A씨는 이를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평가했으나 “해당 내용이 결론 부분에 한 줄로만 언급되며 세부적인 예시나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한편 세네갈 출신의 참가자는 식민지화의 역사가 아프리카의 현 개발상황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매장된 자원을 아프리카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나 베나슈누 교수는 이에 세네갈의 자원 매장 정도를 다시 파악해보라고 답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적절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세미나가 기존에 안내했던 방향과 맞지 않은 내용으로 전개되며 부족함을 드러낸 이유론 제국주의가 남긴 특수한 유착관계를 의심해볼 수 있다. 실제로 개발 협력을 주요 방향성으로 삼았던 본래 취지와는 달리 본 발표에선 일반적인 역사적 흐름과 피상적인 국제 상황만이 다뤄졌다. A씨는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파워엘리트이기 때문에 식민지 시대의 개발도상국 상황과 오늘날의 개발협력과 같은 내용을 언급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A씨는 구 식민지 엘리트가 과거에 강력하게 식민지를 억압했던 식민지 경영국의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해당 국가와 결탁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구조를 지적했다.

이 같은 이유로 세미나에서 여러 부실한 모습이 비춰진 것은 분명히 반성을 요구한다. A씨는 “앞으로 이처럼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학술행사가 개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발언자와 개최자 사이에서의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란 의견을 표명했다. 앞으로의 학술대회에선 내용적 측면 뿐 아니라 그 뒤에 감춰진 구조적 측면까지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진: 박소윤 기자

evepark004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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