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을 대하는 진보의 자세

최근 미국에서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돌풍을 일으킨 민주당 소속 오카시오-코르테스(오카시오)가 연일 화제다. 그가 당선되자 많은 이들은 그의 나이, 히스패닉계라는 인종적 배경, 여성이라는 성별에 주목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다. 그가 속해 있는 ‘민주사회주의자 그룹’은 언론 인터뷰에서 ‘장기적 목표는 자본주의를 끝내는 것’이라 말할 정도로 급진적 성향을 띤다. 또한 오카시오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 입안됐다가 좌초된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정책을 일신하면서 유명해졌다. 오카시오가 의회에서 젊은 활동가 그룹과 함께 발표한 그린 뉴딜 정책은 최근 북미대륙을 강타한 한파 등의 기후 변화에 대한 대중적 경각심을 십분 활용하긴 했다. 하지만 오카시오의 차별성은 ‘모두를 위한 녹색 일자리’(Green Jobs for All)라는 슬로건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는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통해 지역주민을 위한 소득과 일자리를 보장하고, 이를 위한 재원을 부자에 대한 최고세율을 높임으로써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주류 매체에서 잘 팔리는 생태주의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다수 대중을 위한 사회경제적 개혁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이 청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것이다.

20대 청년층, 특히 그중에서도 젊은 남성의 낮은 지지율 때문에 고민하는 한국의 진보주의자는 오카시오와 자신이 공유하는 것보단 그와 공유하지 않는 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길 권하고 싶다. 오카시오가 인기를 누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진보·좌파 세력이 오랫동안 상실했던 보편적 기획에 대한 대중적 참여 욕구와 상상력을 부활시킨 데 있다. 그를 따라 다니는 ‘모두를 위한 녹색 일자리’라는 구호는 만성적인 저임금, 불안정 고용에 시달리는 청춘남녀에게 ‘모두를 위한 정의’로 읽힌다. 오카시오가 갖는 또 한 가지 미덕은 대중과의 소통 능력에 있다. 그는 의회 일정을 SNS에 생중계하면서도 일부 차별적 악성댓글에 거침없는 일침을 날리며 대중의 환호를 자아냈다. 이는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 만연했다는 이유로 특정 매체를 규제하자는 제안을 남발하는 일부 진보적 선량들의 빈약한 상상력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이처럼 진정한 대중적 진보주의자는 공공의 장소에서 올바른 의견이 ‘다수파’가 되는 방법을 모색한다.

우리는 오카시오의 흥행을 통해 역으로 지금—이곳 진보의 모습은 어떤지 청년의 눈높이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하의 서술은 진보정당이든 민주당이든 광의의 개혁·진보를 지지하지 않게 된 평범한 청년의 시각이 무엇인지에 대한 스케치이다. 앞질러 말하면, 진보가 청년층에서 지지를 잃은 것은 ‘모두를 위한 정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력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당시 청년층은 오래 지속된 청년실업 문제와 사회경제적 불안정에 대한, 보다 나은 대안을 기대하며 남녀 가릴 것 없이 새 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현 정부와 진보정당은 이들의 바람에 대해 지금도 이렇다 할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 당장의 해법을 주지 못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나 자신도 여기에 한몫을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진보정치가 청년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청년에게 줘야 할 것은 주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던져주는 데 있다. 만일 진보가 단지 무능력하기만 하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진보가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선택적 정의’를 옹호한다고 청년들이 인식하게 된 것도 신뢰 상실의 결정적 계기 중 하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다수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정의관은 본래 ‘내가 대접받길 바라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 내게 가해지길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가하지 않는다’는 황금률이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여름경 ‘미러링’이라는 메갈리아식 혐오 표현을 다수 진보언론과 인사들이 미화하면서 이런 보편적 정의는 정면으로 위반당했고, 그 이후 진보세력이 나와 내 가족·이웃·친구의 일상적 문제를 대변할 것이라는 신뢰는 급격히 추락했다. 급기야 젠더문제는 청년층 지지율 하락의 진앙이 되고 말았다. 특히 메갈리아식 혐오 표현은 사회적 약자로 일컬어지는 어린이,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을 낳았고 실제 범죄(호주국자 아동성폭력 사건, 워마드 몰카범죄 사건)까지 이어지는 등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도, 일부 인사는 이런 문제를 외면하며 ‘남성혐오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일관하거나 이 문제에 대한 항의를 극우 여론으로 치부했다. 이런 편협한 인식은 최근 언론 상에서 논란이 됐다가 철회된 여가부의 교사 지도용 교육 자료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는 ‘혐오를 지양하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단순명료한 명제에서조차 성별에 따라 단어의 정의를 멋대로 뒤틀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최근 정부가 유튜브와 게임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계획을 발표하고 HTTPS 보안의 취약점을 이용해 사이트 접속 시도를 차단하는 등, 과거의 진보라면 결코 지지하지 않았을 해법에 집착한 것도 잘못된 신호를 줬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본래 노선을 배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진보의 가치 기준대로면 불법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유통하는 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데 공권력을 동원해야지, 이를 빌미로 불특정 다수의 접속 권한을 제약하면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은 기성사회의 도덕적 위선이나 이중잣대에 민감하다. 필요할 때마다 잣대를 뒤트는 진보의 모습은 청년의 눈에 결코 정의롭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보를 지지하지 않는 청년의 눈에 진보는 스스로를 좋은 대화 상대보단 우월한 논평가의 위치에 놓는다는 점에서 추하기까지 하다. 20대의 하락한 지지율을 지난 정권의 교육 탓으로 돌리는 여당인사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유체이탈 화법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청년층의 반감이 확산됐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또 상당수 청년은 진보가 이렇다 할 대안도 없으면서 불안정한 처지에 있는 자신을 낙인찍고 모욕하면서까지 가르치려 든다고 느낀다. 최근 한 연구자는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중하층 계급 남성을 겨냥하며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자신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시킬 것이고, 이 역사적 흐름에 당랑거철로 맞서던 남성들은 더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청년층의 정의관이 변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지금의 청년은 ‘나’의 권리문제가 지금 얼마나 구제됐는가를 사회 진보의 척도로 삼는다. 이들에게 ‘이거야말로 사회 진보의 방향이다’라고 강변하며 일방적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건 하나마나한 소리다. 기브앤테이크, 상호적 정의, 개인의 자유는 20대 남녀 모두를 관통하는 도덕적 키워드다.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20대의 보편적 정서에 입각해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청년계층(특히 남성)이 보수화됐다는 진단은 한가한 이야기다. 그보단 애초에 진보가 스스로의 정의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자문하는 것이 급선무다. 물론 지금까지 청년의 눈에 비춰지는 진보의 부정적 모습이 진보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에 진보주의자가 고수해야 할 실천 강령을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우선 진보는 청년들이 생각하는 약자에 대한 기준은 다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보편적 시민권’에 초점을 맞춰 다수의 유권자를 설득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무력하고 취약해지는 시기를 반드시 겪는다. 다수의 시민이 이러한 약자성, 취약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를 보호하는 보편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두 번째로, 진보가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정치적·도덕적 기준을 ‘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지킬 수 있는 생활규범’을 중심으로 정의해야 한다. 진보는 불특정 다수를 잠재적인 범죄자나 위험분자로 낙인찍는 공포정치 및 공안논리와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보적 실천 강령의 본질은 다수의 약자가 단결하는 데 있지, 서로 누가 더 불쌍한 약자인지를 경쟁하는 데 있지 않다. 후자의 방식에 매몰되는 정치세력은 청년의 입장에서 매력적이지도 않고 신뢰가 가지도 않는다. 이 세 가지 사항을 명심하면 진보가 청년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박원익 평론가정의당 의견그룹 '진보너머' 대표
박원익 평론가
정의당 의견그룹
'진보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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