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훈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한훈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세계 여러 나라와 무역 분쟁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유례없이 자국뿐 아니라 우방국들에게 특정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에 동참하기를 요청한 것이다. 이 회사는 이동통신 장비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의 ‘화웨이’다. 이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의 표면적 이유는 보안이슈지만 사실상 타겟은 5세대 이동통신장비다. 글로벌 이동통신장비 시장은 중국과 유럽이 양분하고 있다. 이번 분쟁은 미국이 자국의 장비제조업체를 보호하려는 무역 분쟁이 아니기에 기존 미국 발 무역 분쟁과 차이점이 있다.

5세대 이동통신 장비가 이렇게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4차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프라기 때문이다. 1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는 아날로그 기술을 기반으로 해 이동중에 음성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보적인 서비스로, 아주 제한적인 수의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아날로그 기술을 디지털로 대체해 모든 국민이 이동통신 서비스를 사용하고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한 것이 2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다.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부턴 제한적인 데이터 서비스가 가능해져 다양한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가 나타났다. 4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는 인터넷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데이터 전송 능력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이로 인해 이동통신 서비스가 기존의 음성 중심에서 데이터중심 서비스로 변했다. 그 결과 ‘모바일 경제’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4세대까지의 이동통신서비스는 사람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돼 왔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이 서비스를 활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5세대 이동통신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기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디자인됐다. 4차 산업혁명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모습은 컴퓨터가 입력된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계가 센서를 통해 주변 상황을 지속적으로 인지한 후 상황 정보를 모으면 컴퓨터가 가상으로 현실세계를 재현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컴퓨터가 이를 분석한 후 사람의 개입 없이 필요한 최적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기계간의 소통이 디자인된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디자인 된 것이 5세대 이동통신이다.

따라서 5세대 이동통신 시대의 주역은 더 이상 스마트폰이 아니라 가상의 현실을 구축하고 상황을 분석하게 하는 사물인터넷 기기와 통신망 내부에 설치될 컴퓨팅 기기, 분석을 위한 AI기술 등이다.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3가지 특성을 자율주행을 예로 표현하면 먼저 자율주행자동차는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을 피할 수 있도록 원격 조정하기 위해 실시간 소통을 지향한다. 또한 원격조정에 필요한 상황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동일지역에 있는 수백 대의 차량마다 설치된 수많은 센서와 동시 통신이 가능하다. 사고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기존보다 100배 이상의 데이터 처리 능력을 갖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6일 전세계 11개국에서 에리슨 통신장비의 사소한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4시간 이상 이동통신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무려 8,000만 명의 사용자가 모바일 결제, 지하철 및 버스 이용정보 등 위치기반 서비스, 경찰 및 구급차와 관련된 긴급서비스와 같은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와 단절돼 큰 혼란을 겪었다. KT 아현지사 화재로 우리가 겪었던 혼란의 글로벌화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결합된 5세대 이동통신망에 장애가 생겼을 경우를 상상해보면 그 파괴력은 기존에 우리가 겪었던 피해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다. 하늘을 날고 있던 무인비행기는 추락할 것이고, 자율 주행자동차는 서로 충돌하고, 생산라인을 흐르고 있던 제품은 전부 불량품이 될 것이며, 자동운전 중이던 석유화학공장 같은 곳에서의 대형 사고도 예상가능하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5세대 이동통신은 보안 기능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통신을 보장할 수 있는 ‘망의 생존성’에 대해 많은 고려가 있어야 하며, 서비스 스스로도 통신 장애시의 안전 모드에 대한 개념을 포함해 디자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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