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어우러진 꽃밭 앞에서 / 누군들 살의를 떠올리겠습니까 / 그러므로 우리들의 적이 숨어 있다면 / 그곳은 아름다운 꽃밭 속일 것입니다.

- 고정희, ‘현대사 연구1’

 

파란 하늘과 녹음 없이도 계절은 바뀐다. 개강을 맞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우들로 가득 찬 캠퍼스 역시 생동하는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을 조금 더 기민하게 들여다보면, 우리 대학의 평화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침묵을 대가로 빌려온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1980호 『대학신문』에서 다룬 서어서문학과 A교수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 잇따른 연구 부정 논란, 미해결된 시흥캠퍼스 문제 등은 물론, 학교 곳곳에 붙은 대자보와 가해자들의 사과문은 대학 공동체의 부끄러운 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캠퍼스 밖의 세상은 어떤가.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이고, 성 산업 카르텔과 공권력 유착 의혹, 디지털 성폭력 문제 등이 속속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대학신문』은 이러한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1면과 3면에서 지난 호에 이어 서울대 동문 단체들의 총동창회 정상화 요구를 보도했고, 총장에게 서어서문학과 A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A교수 특위의 기자회견을 다뤘다. A교수 특위 기사 바로 밑에 ‘학교는 지금 소통 중’이라는 제목으로 학생대표단과 본부 간의 소통간담회 포토뉴스를 배치한 구성도 재미있었지만, 학교의 굵직한 현안들을 간담회의 주요 논의 주제로 삼은 만큼 사진의 내용 요약에서 그치기보다 자세한 대화 내용을 담아낸 기사로 비중 있게 나왔다면 좋았을 것이다.

여러 면에 걸쳐 다채로운 색깔의 기사를 실은 덕분에 인상 깊은 기사들도 많았지만, 완결된 한 호의 신문을 관통하는 주제나 유기적인 메시지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날카로운 인사이트가 필요한 결정적 순간을 놓친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다룬 사회면 기사가 그렇다. 해당 기사는 말 그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과 현황, 전망을 보도하고 있다. 사회면 기사로서 품은 문제의식 자체는 좋았지만, 내용 면에서 기존에 읽었던 같은 주제의 수많은 글과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이처럼 ‘다르지 않은’ 기사에 생기를 불어넣는 결정적 한 방은 결국 기자만의 치열한 고민과 분석에서 나온다. 

더불어 자잘한 오타나 아쉬운 단어 사용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1면에서는 이상묵 교수의 입학식 축사를 언급하며 ‘자신의 장애를 학문으로 극복’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비장애인의 몸만을 ‘정상’으로 바라보는 오랜 편견의 소산이다. 널리 통용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쉽게 쓰는 말은 고치기도 어렵다. 『대학신문』은 학보사라는 무게감을 지닌 언론인만큼, 위와 같은 부분에서 좀 더 세심하고 신중한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봄은 아주 멀리서, 너무도 느린 걸음으로 오는 듯하다. 『대학신문』의 창으로 바라본 세상이 아직 아름답지 않다면 아름답지 않은 그대로 보여주길 원한다. 그럴듯한 포장으로 정갈한 글을 쓰기는 쉽지만, 『대학신문』이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루기 힘든 꿈일지라도, 『대학신문』의 지면 속으로 들어올 세상 역시 언젠가는 따뜻한 봄을 맞이하길 기원한다. 

박정연

영어교육과·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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