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snu.ac.kr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snu.ac.kr

“불법 촬영 따위가 인간의 존엄을 영영 파괴할 수는 없으리라고 믿지만” “다 끝난 거 아닌가, 이만하면.” 

2019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박민정의 「모르그 디오라마」는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이 범람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위에 인용한 작가의 수상소감을 자꾸만 곱씹게 된다.

얼마 전, 가수 정준영이 ‘단톡방’ 및 1:1 대화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사진과 영상을 황금 메달처럼 전시하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친구들과 의리와 결속을 다지는 도구로 이용했다. 그런데 이것은 특정 연예인들의 개인적 일탈이나 범죄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이 사건이 강간과 성 착취를 통한 성접대, 마약, 경찰 유착 등 부패한 우리 사회의 치부를 담고 있는 클럽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드러났다는 점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성적 대상화와 성범죄가 일상이 될 때, 그리고 그것이 ‘비즈니스’와 연결되고 권력과 유착될 때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가 곪을 수 있는가. 이번 사태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사건에 대한 일부 대중들의 비뚤어진 호기심과 그것에 부응하고 나아가 그것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언론의 보도 행태는 씁쓸함을 더해준다. 한 언론은 ‘단독’이라는 자극적인 수식어를 붙여 피해자 중 연예인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유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는 피해자로 추측되는 여성 연예인들의 이름과 ‘정준영 동영상’이란 키워드로 도배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피해자의 실명을 추측하거나, 동영상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글들이 올라왔으며, 불법 촬영물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며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지금까지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많은 불법 촬영물이 ‘포르노’로, 하나의 스펙터클로 인식되고 소비돼 왔다. 그렇게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쉽게 망각되며, 성범죄는 ‘스캔들’로, 대화의 안줏거리로 전락했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사건과 무관한 인물들까지도 피해자로 추정하며, 대중들의 호기심에 불을 붙이는 자극적인 언론의 태도는 보도 윤리를 저버린 것이란 점이다. 피해자는 촬영 및 유포 행위에 동의하지 않았음은 물론, 자극적인 보도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자극적인 보도는 피해자를 또 다른 방식으로 전시하고, 그것의 소비를 권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민정의 「모르그 디오라마」는 대중들의 스펙터클로서 불법 촬영물이 범람하는 이 시대를, 변사체가 무료 구경거리로 전락했던 19세기 말 파리의 시체 공시소 ‘모르그’에 견주고 있다. 소설가는 “‘몰카’ 피해자 여성의 고통을 다룬답시고 그 캐릭터를 착취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 삼는다. 무릇 작가란 타자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증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끈덕지게 자문하는 존재다. 그래서 작가는 타자의 고통을 그려내야 하는 작가적 책무가 오히려 개인의 고통에 대한 착취가 되지 않을지 경계해야만 한다. 그리고 피해자를 안줏거리로, 관음증적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섬세한 감수성과 윤리. 그것은 비단 작가뿐만이 아니라,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요청된다.

유예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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