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기자<br>취재부
강동완 기자
취재부

나는 녹두에 산다. 아니, 정확히는 살았다.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꿈꿔 왔다. 그러나 무절제한 생활 습관을 고쳐놓지 않고서 자취를 택하기란 제법 큰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는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할 때가 다가오자 스스로 상경 채비를 갖춰야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혼자 살 집을 구한다는, 낯선 풍경에 대한 호기심이 예비 자취생의 설렘을 북돋았다. 

우여곡절 끝에 녹두에 방을 잡았다. 계약서에 날인을 하고 살림살이를 옮겨 놓았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 사이엔 언제나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혼자 사는 것이 이리 불편하고 외로울 줄은 몰랐다.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던 나는 이게 아닌데 싶은 실망감에 휩싸여 휘청거렸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불 꺼진 방에 들어오면 쓸쓸함 외엔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지난 가을이었다. 캠퍼스를 거닐다 『대학신문』의 모집 공고를 봤다. 순간 마음속에 파문이 일었다. 불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문학을 하는 청년이 시대 상황에 무지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 길로 지원서를 보내 어느덧 학보사 기자가 됐다. 좌절과 고독에서 벗어나 양심 있는 지식인이 되리라는 소망을 품게 됐고, 바쁜 취재 과정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웠다.

기사 소재를 궁리하다 녹두 주민으로서 녹두 기획을 준비했고, 이젠 기숙사생으로서 기사를 내게 됐다. 평소 즐겨 찾던 가게에 손님이 아닌 기자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평범한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 노력했다. 애써 얻어낸 인터뷰를 날려버릴 때면 이젠 더 이상 일을 계속하기 힘들 것이라며 망설이기도 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사로 담아낸 결과물을 인쇄하고 나니 마치 오랫동안 지고 있던 빚을 갚는 기분이었다. 나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막연하게나마 앞으론 더 나아지리라는 하나의 희망을 가져볼 수 있기를 바랐다.

막상 기사를 내고 보니 혹시 모를 걱정에 마음이 공중에 떴다. 종이 매체를 잘 읽지 않는 요즘 분위기가 마음에 걸렸다. 혹자는 책과 신문을 올드 미디어라 깎아내리고, 심지어 종이 매체의 죽음을 논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을 바쳐 일궈낸 귀중한 기사가, 다른 누군가에겐 별 걱정 없이 내버리는 폐지로 변모하는 것이다. 신문 한 부가 쓰레기로 전락하는 일종의 순환, 그 과정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신문을 나르는 내 모습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불쌍한 소년처럼 보이진 않을까.

나는 비오는 날이면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키곤 한다. 한번은 갑작스레 떨어지는 소나기에 『대학신문』을 머리에 이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사람을 봤다. 이것이야말로 『대학신문』이 맡은 바 사명을 다하는 광경이로구나, 내 처지가 딱해서인지 저절로 자조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다만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작은 기쁨을 보탰다. 그래도 저 사람은 신문을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무심결에 신문을 펼치고 내 기사를 읽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만약 신문을 사랑하면서도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한마디만 전해주고 싶다. 비오는 날이면 『대학신문』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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