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 녹두거리는 한때 서울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서울대와 녹두의 유대 관계가 희미해지며 현재 녹두의 대학촌 생태계는 위기를 맞았다. 서울대와 녹두 지역 사회의 단절까지 우려되는 실정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같은 해외 유수 대학들은 대학과 지역 사회 양자의 발전이 동일 선상에 있다는 신념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이젠 서울대도 캠퍼스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관악캠퍼스가 자리 잡은 지 어언 45년, 『대학신문』에선 녹두의 흥망성쇠를 되짚고 서울대와 녹두가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1. 녹두가 걸어온 길

녹두거리는 오랫동안 서울대를 상징하는 대학가로서 융성했다. 1970년대 서울대가 관악구로 이전하고 캠퍼스 주변에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지며 녹두는 조금씩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엔 교통이 열악했기에 학교와 접근성이 좋았던 신림9동(현 대학동)엔 서울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유동 인구가 늘어나자 막걸릿집 ‘녹두집’을 중심으로 가게들이 들어서며 이 일대에 ‘녹두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녹두 주민들은 학생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과거 ‘녹두집’을 운영했던 한지호 씨는 “4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며 “학생운동을 지원했다고 경찰서에 끌려가는 등 갖가지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녹두 주민들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숙집을 운영하며 하숙촌을 형성했다. 박종철 열사의 하숙집도 이곳에 있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사법고시가 유행하고 고시원이 생겨나며 이른바 ‘고시촌’이 떠올랐다. 당시 녹두는 서울대 학생은 물론 전국에서 몰려든 고시생으로 북적였다. 30년 가까이 녹두에서 ‘황해도빈대떡’을 운영해온전정숙 씨는 “가게 곳곳마다 손님들이 들어차 저녁부터 아침까지 불 꺼질 일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각종 술집과 서점이 들어서면서 학생문화가 꽃피기도 했다. 1980년대 중후반 학생들의 일과는 2시 아크로 집회, 4시 교문 투쟁, 6시 거리 시위, 8시 녹두 주점 뒤풀이, 11시 자취방 토론으로 정해져 있었다. 학생들은 야학이나 공부방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과 머리를 맞댔다. 주민들은 학생들의 거리 시위를 돕고 은신처와 식량을 제공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소위 ‘불온서적’을 취급하던 서점 ‘그날이 오면’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이 오면’ 대표인 서울시의회 유정희 의원은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던 시절엔 서점 벽마다 연락을 전하는 메모지로 빼곡했다”며 “학생들이 서점에 가방을 던져놓고 시위에 나갔다가 최루탄을 피해 다시 숨어들어와 촛불을 켜고 지내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녹두는 활기를 띠었다. ‘삐에스몽테’와 ‘녹두리아’ 사이 골목은 ‘메인길’이라 불렸고, 금요일 밤이면 이 ‘메인길’에 택시들이 길게 늘어섰다.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김지수 씨(법학과·08)는 “선배가 녹두 ‘우동촌’에서 밥을 사준다고 하면 호사를 누린다며 우러러보던 시절이었다”며 “학생들에게 교문 밖은 녹두와 동의어였고, 밥을 먹고 공부를 하며 술을 마시던 녹두는 생활의 터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녹두에선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녹두에 거주하는 학생 수가 줄었다. 지방에서 상경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서울에서 지하철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기숙사가 확대되고 하숙 문화는 위축됐다. 이에 더해 2010년 이후로는 서울대입구역 인근이 개발되고 ‘샤로수길’ 상권이 등장했다. 교통이 개선되고 역세권이 떠오르자 자취생들도 지하철역 인근으로 방을 옮겼다. 김지수 씨는 “서울 출신 친구들이 늘어나고 서울대입구역이 개발되면서 굳이 녹두에 살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학생사회도 변했다. 유정희 의원은 “90년대 중반엔 녹두에서 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축제를 열었다”며 “학생들이 농활이 끝나고 오면 같이 수박을 나눠 먹곤 했는데 요샌 찾아오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각종 뒤풀이 장소가 ‘샤로수길’로 옮겨가며 녹두의 대형 호프집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전정숙 씨는 “예전엔 봄가을 축제 때마다 각종 학생회와 동아리에서 찬조금을 받으러 오곤 했는데 이젠 그것조차 찾아볼 수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법고시의 폐지로 많은 고시생도 떠났다. 고시 폐지 이후 주민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부 원룸과 고시원은 값싼 보증금과 월세를 내세워 젊은 직장인들을 끌어들였다. 기존 고시학원들은 7·9급 공무원시험이 유행하자 업종을 바꾸고 공무원 준비 과목을 개설했다. 하지만 이미 침체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공인중개사로 활동하며 관악발전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이석근 씨는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어렵사리 버텼지만, 재작년 경기가 갑자기 악화했고 작년엔 더욱 심해져 아마 올해 정점을 찍을 것”이라며 “지역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탄했다.

2. 서울대와 녹두의 상생을 위한 여정

녹두의 대학촌 생태계가 위기를 맞자 서울대가 나섰다. 2000년대엔 관악구청을 중심으로 서울대와 지역 사회의 교육 협력이 이뤄졌다. 2011년엔 서울대가 관악구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하면서 복지, 문화 등 여러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성낙인 전 총장은 ‘관악 큐브 청년 창업밸리’ 사업을 추진했다. 대학자원을 활용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학생들의 창업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최근 서울대는 녹두 지역 활성화를 위해 서울대 캠퍼스타운 ‘녹두.zip’을 설치했다. 캠퍼스타운은 대학과 지역 사회의 협력을 통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는 도시재생 모델 중 하나다. 2016년 서울시가 ‘캠퍼스타운 조성사업’을 추진하자 같은 해 12월 서울대가 이 사업에 선정돼 예산을 지원받았고, 2017년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표방하며 옛 광장서적 건물에 ‘녹두.zip’이 문을 열었다. 기획과 캠퍼스타운팀 김진언 연구원은 “현재까지 11개 창업팀, 총 40명이 참여해 CEO 특강, 멘토링 프로그램, 법률 자문 등 다양한 창업 지원 교육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한 ‘녹두.zip’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공간을 개방하고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사업도 진행 중이다. ‘녹두.zip’은 ‘공유창고’를 운영하며 학생과 지역 주민 모두에게 비대면 중고거래 서비스, 이사 물품 대여, 재활용품 종량제 봉투 교환 서비스, 환경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진언 연구원은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일일장터, 전통매듭 만들기, 수제 맥주 테이스팅 클래스 등 다양한 체험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학생들도 녹두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캠퍼스타운 프로젝트팀의 부팀장을 맡았던 박종호 씨(건축학과·17)는 '녹두.zip' 1층 라운지를 지역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으로 설계했다. 녹두 주민들을 만나 진행한 인터뷰를 모아 ‘녹두.zine’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고시촌으로서의 정체성이 흐릿해지는 대학동의 이야기를 한데 모을 수 있어 고무적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녹두상권 심폐소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동아리 ‘티움’은 관악구청 및 관악구 소상공인회와 연계해 자영업자 컨설팅을 진행했다. ‘티움’은 지역 상인들과 함께 상권 활성화 방안을 고민하는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티움 유현재 회장(경영학과·14)은 “2018년 상반기 세 곳, 하반기 두 곳의 영세 자영업자분께 도움을 드리고 가게 매출 및 순익구조를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환경 분야에서도 서울대와 지역 사회의 협력이 이뤄졌다. 1996년엔 관악구청이 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도림천 복개 사업을 추진하자 학생들이 지역 주민과 연대해 반대 운동을 벌였고 도림천을 부분 복개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됐다. 1999년엔 지역 주민들과 학내 구성원들이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을 결성해 매년 ‘도림천 문화제’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모임 결성 당시 대표를 맡았던 유정희 의원은 “서울대 학생들이 도림천 복개 반대로 시위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림천 지키기에 뛰어들게 됐다”며 “20년간 환경 문제에서 서울대와 관악구의 가교 구실을 수행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3. 녹두가 마주한 돌부리와 가시밭길

 

그러나 서울대와 녹두 지역 사회의 협력 앞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녹두.zip’은 올해 사업이 마무리되나 그다지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으며 기간 만료 이후의 구체적인 계획마저 정해지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홍보 부족이다. 실제로 ‘녹두.zip’에 관해 묻자 주민들은 대부분 “들어보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동에서 15년 넘게 원룸을 운영하며 전국원룸협회 회장을 맡았던 정성호 씨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막상 지역 주민과는 거의 논의된 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김혜지 씨(경영학과·18)는 “창업에 관심 있는 경영학과 학생들조차도 캠퍼스타운이나 녹두.zip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진언 연구원은 “경전철이 들어오기 전이라 3년이란 기간 동안 성과를 내기엔 접근성이 좋지 않았고, 제대로 홍보되지도 않았다”며 사업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생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녹두 지역의 재활성화를 위해선 적잖은 자금을 투입해야 하나 정작 재정 지원과 같은 관련 제도는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결국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본부의 지원 부족으로 흐지부지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박종호 씨는 “사업 진척이 느리고 지원 규모가 작아 안타까웠다”며 “학교 측의 지원과 지자체와의 지속적인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활동이 뜸해지고 있다. 모임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다음 활동을 계획하지 못한 채 떠났다. ‘빗물 박사’라 불리며 당시 모임에서 자문위원을 맡았던 한무영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환경 문제의 특성상 눈에 띄는 성과가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다 보니 지역 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지속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0년엔 도림천을 살리자는 취지로 교내 환경 전문가와 관련 동아리가 ‘건강한 도림천 연구회’를 결성했지만, 현재 사실상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4. 서울대와 녹두가 함께 나아갈 길

다른 대학의 경우는 어떨까. 서울시 캠퍼스타운 사업 1호인 ‘고려대 안암동 캠퍼스타운’은 현재 청년창업공간 ‘스마트 스타트업 스튜디오’를 9곳 운영하며 각종 공모전과 시상식을 휩쓸고 있다. 현재까지 직간접 고용인원 601명, 주민공모사업 총 참여 인수 962명, 매출 26억 3천만 원 등의 실적을 올린 상태다. 숙명여대 또한 캠퍼스타운 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숙명여대는 캠퍼스타운 거점센터를 기반으로 인근 용문 전통시장 상권 활성화를 위한 ‘가치가게’,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한 ‘청년아, 힘내라’, 용산 문화 특성화를 위한 ‘잇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캠퍼스타운 교과목을 개설하며 ‘용문상인대학’을 설립해 학교 차원에서 상인 맞춤형 중국어 교재를 개발하고 학생들이 직접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두 대학의 성공 비결은 지역 주민과의 연대에 있다. 고려대 캠퍼스타운팀 지원센터 이종훈 사무국장은 “학생과 지역 주민이 과거 함께 연대했던 경험이 있어 애향심과 애교심이 강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캠퍼스타운사업단 이윤하 직원은 “지역 연계 교과목을 개설하고 활력을 잃은 전통시장에 대학 역량을 집중해 상인들의 지지를 얻어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과의 연대 또한 중요하지만, 대학과 지역 사회의 관계가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과 지역 사회 양자 간의 관계를 넘어 보다 포괄적인 협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유수 대학들은 대학 또한 지역 사회 구성원이므로 지역 사회의 발전과 대학의 발전은 함께 가야 한다는 전제하에, 지역 사회를 매개로 다수의 대학,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와 다자간 협력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인 김경민 교수(환경대학원)는 “서울시와 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인센티브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지역 사회가 처해있는 사회적 상황 때문에 생긴 다양한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서로 간의 신뢰를 쌓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강조되는 것은 경제적 지속가능성이다. 김경민 교수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담보돼야 사회적 형평이 개선되고 환경적 지속가능성이 개선될 수 있다”며 지역 활성화의 출발을 크게 지역산업 창출과 상권 활성화로 분류했다. 지역산업이란 동대문 패션산업, 여의도 금융클러스터와 같이 지역만의 특색이 드러나는 산업으로, 현재 녹두는 내세울 만한 지역산업이 없는 실정이다. ‘녹두.zip’과 같은 스타트업 오피스를 육성하더라도 중산층 노동자의 유입이 부족해 여의도처럼 활성화되기도 힘들다. 지속가능발전정책의 권위자인 홍종호 교수(환경대학원)는 “지역에 이미 있는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학이 이를 충분히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역 인프라가 확충된다면 그 혜택을 서울대와 지역 사회가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권 활성화 측면에선 교통 문제가 핵심으로 거론된다. 현재 서울시의 모든 상권은 역세권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김경민 교수는 북촌과 삼청동이 주춤하고 그 대신 종로 익선동이 뜨는 것을 사례로 들며 경전철이 도입되면 대학동 상권이 크게 살아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림천의 자전거 도로가 연장돼 서울대 내까지 진입한다면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관악구는 올해 7월까지 도림천 복개 사업 설계용역을 마무리한 후, 2021년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유정희 의원은 “완공 시 서울대 정문 바로 옆 신림 5교까지 자전거도로와 출입구가 설치된다”며 “자전거도로가 완공된다면 이동이 편리해지고 유동인구도 늘어나 서울대와 대학동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 문제에선 빗물 활용을 비롯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서울대 내 200여 개의 건물마다 작게나마 빗물 시설을 설치한다면 빗물을 캠퍼스 내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지역의 홍수·가뭄도 해결할 수 있다. 공대 35동 옥상에 빗물을 활용한 텃밭을 만든 한무영 교수는 “옥상녹화로 만든 텃밭을 지역 주민에게 분양하고 학생들과 함께 가꿔 나간다면 지역 사회와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최고의 방안일 것”이라며 “서울대 본부 혹은 각 단과대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하고 빗물시설 설치나 옥상녹화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대 민주화의 역사를 녹두와 연계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현재 관악구는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관광사업추진단’과 함께 서울시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관악, 민주주의의 길을 걷다’ ‘관악 민주 올레’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종철 거리가 조성 중이고, 박종철 기념관도 곧 건립될 예정이다. 일부 주민들은 박종철 열사를 기리며 고시촌에 ‘박종철역’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만의 노력으로는 사업이 흐지부지되거나 지나치게 상업화될 우려도 있다. 이에 서울대도 하루빨리 동참해 교육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경민 교수는 “박종철 열사와 같은 민주화의 거대한 상징이 희화화되지 않게 서울대가 정교한 도구를 마련하고 충분한 계획과 확실한 비전을 세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악마을방송 정연길 대표는 “서울대는 민주화에 기여한 역사가 깊으니 이를 활용하자”며 “학생들이 서울대에 탐방을 와서 건물만 볼 게 아니라, 녹두에 와서 민주주의 역사를 마음으로 느끼면 진정한 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보스턴과 케임브리지의 경우 하버드대나 MIT와 같은 지역 대학과 협력하며 주요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자유의 길’(Freedom Trail) ‘하버드 스퀘어’(Harvard Square) ‘켄들 스퀘어’(Kendall Square) 등은 지역 활성화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홍종호 교수는 “하버드대는 캠퍼스 밖 문제에 예전부터 관심을 쏟았고 지속가능성을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둘 정도로 막대한 대학 역량을 사회공헌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교육과 연구에 이어 지역혁신이라는 제3의 임무가 대학에 주어졌다. 세계적으로도 대학은 지역 발전의 주체로 기능하며 ‘참여적 대학’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그동안 서울대는 지역 사회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녹두와 서울대의 길이 어긋나려 하는 지금, 오세정 총장은 “단순한 캠퍼스 계획을 넘어 인근 생활공동체와 함께 발전하는 열린 대학도시(Edu-Valley)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젠 서울대가 나서야 할 때다.

 

사진: 황보진경 사진부장 hbjk0305@snu.ac.kr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레이아웃·삽화: 황지연 기자 ellie051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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