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빈 공간을 되살리는 소셜 벤처 ‘블랭크’를 만나다

동네를 거닐다 보면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버려진 빈 공간을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적막한 공간을 주민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사람들의 손길이 있어 동네는 활력을 잃지 않는다. 지난 18일(월), 동네에 활력을 더하며 공유공간을 창조하는 소셜 벤처 ‘블랭크’의 공동대표 문승규 씨(도시설계학협동과정 석사과정·11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문승규 대표는 “공유공간에서 쌓인 지역 주민들 간의 돈독한 관계를 통해 공간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며 “이런 의미가 담긴 공유공간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문승규 대표는 “공유공간에서 쌓인 지역 주민들 간의 돈독한 관계를 통해 공간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며 “이런 의미가 담긴 공유공간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블랭크, 지금 채우러 갑니다

문승규 대표가 대학원 졸업을 앞둔 시기에 참가했던 공모전이 블랭크의 시작이다. 문 대표는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2012년, 상도동 성대골을 주제로 ‘서울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공모전’에 참가했다”며 “성대골을 선정한 이유는 그곳에 살아 그 지역에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공모전에 제안한 아이디어인 ‘들숨날숨 성대골 마을 이야기’는 금상을 수상했고 서울시는 이를 실제 사업으로 추진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문 대표는 1년간 시 주거환경 개선사업 기초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성대골을 새롭게 바꿔나갔다. 그는 “실제 사업에 참여하면서 ‘내가 사는 지역과 공간’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 지역에 모두가 함께 모여 즐길만한 공간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블랭크는 ‘모두가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바로 이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동네 안에 비어있는 공간과 주민 간의 파편적인 관계에 집중했다. 문 대표는 “서울시와 함께 사업을 시작하며 상도동을 둘러보니 인적이 드물어 버려진 공간과 데면데면한 주민들 사이의 관계가 눈에 들어왔다”며 “그런 공간과 인간관계에서 ‘비어있다’는 뜻의 ‘블랭크’를 떠올렸다”고 블랭크란 이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블랭크가 독창적인 방식으로 채운 빈 공간이 주민들 간 친목을 다지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 이름 안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블랭크란 이름으로 지역의 유휴공간을 메꿔나가기 시작한 그들은 지금까지 상도동과 그 주변 지역에 공유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상도동은 함께 산다

블랭크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공간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블랭크에 의해 처음 탄생한 공간인 공용부엌 ‘청춘 플랫폼’이 그 예다. 문 대표는 “성대골엔 요리하고 식사할 공간이 협소한 집이 많다”며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요리하고 손님이 왔을 때 같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청춘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보니 이곳에 동네 사람이 많이 모인다”며 “이곳에선 단순히 식사하는 것을 넘어 맥주 만드는 모임, 영화 보는 모임과 같은 소모임이 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간을 창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유공간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블랭크의 특징이다. 요리하는 공간 ‘청춘 플랫폼’에 이어 공용사무실 ‘청춘캠프’와 커뮤니티 바 ‘공집합’ 모두 블랭크가 운영한다. 문 대표는 “청춘캠프는 창작자나 디자이너, 프리랜서가 이용할만한 사무실”이라며 “이 공간이 블랭크의 사무실이기도 한 만큼 24시간 열어두고 직접 관리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집합 역시 블랭크의 직원들이 직접 바텐더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랭크는 공유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기회를 주민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공집합에서 진행하는 ‘호스트 나잇’이 대표적이다. 문 대표는 “호스트 나잇은 여섯 명이 매월 마지막 주 6일 중 각각 하루씩 맡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며 “공집합을 만들 때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호스트가 돼 각자의 개성을 살린 6일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위스키 시음과 그와 관련된 강연, 그리고 바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책을 읽는 독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주민들의 참여가 어우러진 다양한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상도동 주민이 아닌 사람들이 종종 놀러와 자신들의 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러움을 내비친다”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찾아준다면 다른 동네에도 이런 커뮤니티 바를 만들 계획”이라고 웃어 보였다.

상도동을 넘어서

현재 블랭크는 상도동을 넘어 독산동, 대방동의 유휴공간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특별한 점은 기획 단계부터 공간 운영까지 그 동네 주민과 소통하며 그들이 원하는 공간을 함께 만든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실제로 공간을 사용할 사람이 공간 만들기에 참여해야 모두가 만족할만한 공간이 탄생한다”며 “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하는 ‘마을활력소’ 프로젝트의 경우 지역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참여 디자인’에 초점을 둔다”고 말했다. 참여 디자인을 지향하는 만큼 블랭크는 다양한 방식의 워크숍을 통해 공간 디자인을 준비한다. 그는 “새로운 공간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해당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과 공간의 활용방안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다”며 “이에 더해 그 공간의 운영 방법을 주제로 직접 만든 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컨대 카페가 생기는 상황을 가정하면 몇몇 주민은 게임 속에서 ‘바리스타’의 역할을 부여 받는다”며 “게임 속 바리스타는 카페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운영해야 일정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게임에 임한다”고 특별한 워크숍 방식을 설명했다.

하지만 참여 디자인을 위해 블랭크가 진행하는 워크숍엔 어려움도 있다. 문 대표는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삶의 배경을 갖고 있고 나이도 다 다르다 보니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며 “간혹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8회차에서 12회차 정도 워크숍을 진행하면 결국 주민 모두가 그 공간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이 지역 사람 모두의 것임을 알게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블랭크의 시선은 한 동네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향한다. 가까운 미래에 그들은 지방 소도시에까지 블랭크의 아이디어를 전파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이들이 주민과 함께 꾸며나가는 마을엔 생기가 더해질 것이다.

사진: 신하정 기자 hshin1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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