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제주의 아픔을 치유하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제주의 아픔을 치유하다
  • 신다현 기자
  • 승인 2019.03.24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 |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담은 연극 ‘잃어버린 마을 이야기: 동혁이네 포차’
평화로웠던 제주의 바닷가 마을 '곤을동'에 4.3사건이 발생하면서 무고한 마을 사람들이 학살됐다. 마을 사람들이 세상을 더난 후 곤을동은 '잃어버린 마을'로 남게 됐다. (사진 제공: 공연 제작사 '컴퍼니다')
평화로웠던 제주의 바닷가 마을 '곤을동'에 4.3사건이 발생하면서 무고한 마을 사람들이 학살됐다. 마을 사람들이 세상을 더난 후 곤을동은 '잃어버린 마을'로 남게 됐다. (사진 제공: 공연 제작사 '컴퍼니다')

절박하게 몸부림치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진다. 쓰러진 이들이 모여 아픔의 탑을 이룬다. 연극 ‘잃어버린 마을: 동혁이네 포차’는 이렇듯 강렬하고 슬픈 인상을 남기며 시작된다. 극은 1948년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당시와 1979년을 오가며 그 비극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우리 마을엔 70여 가구가 살았었다. 집도 40여 채나 있었지.”

‘동혁이네 포차’가 자리 잡은 제주 ‘곤을동’은 4.3 사건 당시 피해를 입은 마을이다. 1979년, 곤을동 주민들은 지난날의 아픔을 묻어둔 채 평범한 일상을 이어오고 있다. 4.3 사건을 직접 겪은 ‘동혁’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4.3 사건에 대해 함구하며 가족들과 함께 포차를 운영한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동혁의 양아들 ‘재구’가 민주화 운동에 가담해 체포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동혁이 침묵하고 있던 과거가 되살아난다.

“모두 다 죽었는데 어째서 아버지는 살아남았을까? 아버지는 학살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나를 죽게 내버려두시지 왜 살려주셨어요, 왜 살려서 평생을 죄책감에 살아가게 하시는 거예요.”

극은 아버지 동혁이 겪은 1948년 4.3 사건과 아들 재구가 참여한 1979년 민주화 운동을 연결 짓는다. 재구는 교수로서 학생 운동을 지원하다 고문을 받는다. 체포된 재구를 데리러 온 동혁은 4.3 사건에 대해 입을 연다. 재구는 동혁이 4.3 사건 당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음을 알게 된다. 재구는 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1948년의 ‘과거’와 1979년의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는 극장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객석이 둘러싼 원형의 무대는 관객과 배우의 거리를 좁힌다. 곤을동 주민은 30여 년 전 일어난 사건에 대해 무뎌진 듯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극 중 취재를 위해 방문한 기자에게 4.3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재구에게도 그를 주제로 한 연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 예다. 관객은 이처럼 내적으로 고통 받는 등장인물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그들의 심정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무대는 관객이 배우의 비언어적 표현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한다.

극 초반 4.3 사건 당시의 장면은 1979년의 동혁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과거의 장면이 1979년과 한 무대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이를 통해 4.3 사건의 비극이 과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강조된다.

“석기형님, 달님, 장인어른, 꽃님, 기억해야만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고통을 함께 느끼지 못한 내가 죄인이다.”

사실 동혁은 4.3 사건 당시 아내 ‘꽃님’을 비롯한 가족을 살리기 위해 서북청년단 ‘행세’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혁은 그 과정에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족을 모두 떠나보내게 된다. 그는 재구에게 직접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왔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재구는 이런 동혁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한다. 동혁은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묻어뒀던 과거를 직시한다. 이윽고 “잃어버린 과거를 다시 찾을 날이 오겠지”란 동혁의 대사를 끝으로 무대는 막을 내린다.

‘잃어버린 마을: 동혁이네 포차’는 곤을동 주민들이 아픈 과거를 잊지 못한 채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애써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며 상처를 극복해간다. 관객 이정은 씨(18)는 “연극을 통해 4.3 사건 당시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 남아있는 문제들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픈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끔찍한 일이 일어난 과거에도, 그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현대에도 마을을 비추는 별은 변함없이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별이 무대를 넘어 4.3 사건의 진실 또한 환히 비춰 제주도민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