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사업의 명과 암

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소식은 이미 수차례 보도됐다. 그러나 최근엔 유럽, 중국 두 단어가 같은 뉴스 상에 오르내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스, 폴란드 등 중동부 유럽 나라 대부분이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을뿐더러 이번 달엔 G7의 일원인 이탈리아가 일대일로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일대일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일까?

호련호통(互連互通)인가? 부채외교인가?

 

지난 2006년 독립한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는 그동안 유럽 대륙에서 고속도로가 없던 유일한 국가였다. 몬테네그로는 관광 국가로도 유명하지만,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이기도 하다. 때문에 몬테네그로인들은 경제발전의 토대가 될 인프라 건설에 목말라 있다. 

그런데 2015년부터 몬테네그로 대표 항구 도시인 바르(Bar)와 세르비아 접경 지역인 볼랴레(Boljare)를 잇는 바르-볼랴레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됐다. 몬테네그로 GDP의 50%가 넘는 32억 달러가 필요한 이 사업을 가능케 한 건 다름 아닌 중국 정부였다. 선진국 자본은 몬테네그로의 60만 인구로는 고속도로를 지을 만큼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중국 정부는 중국수출입은행을 통해 연 2%의 이자율과 10억 달러 차관 제공을 제안했다. 여기엔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도로교량공사가 프로젝트의 70%를 수행하고, 중국 노동자를 다수 고용한다는 조건이 걸렸다. 

2013년 9월 시진핑이 일대일로 구상을 제시한 이래 중국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는 물론 유럽, 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여러 사업에 손을 뻗치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은 사실상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한 전 세계 대륙을 아우르는 대규모 사업이다. 중국은 ‘실크로드경제벨트’(일대)와 ‘21세기 해상실크로드’(일로)를 합쳐 일대일로로 명명했다. 그리고 관련국에 5통(五通) 즉 △정책 협의 기구 설치(정책구통) △인프라 건설(시설연통) △무역 제도 합의(무역창통) △금융 플랫폼 설치(자금융통) △민간 교류 활성화(민심상통)를 제안했다. 일대일로는 지난 2017년 10월 개최된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당헌으로 삽입되며 장기간 추진될 국가대전략의 위상을 확보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일대일로가 과거 미국의 마셜 플랜을 연상케 하는 사실상의 ‘중국식’ 세계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대일로의 모든 것』의 저자인 푸단대 외교학과 이창주 박사는 “일대일로엔 구상과 전략이 있다고 본다”며 “구상이 5통(五通)에 기반한 호련호통(互連互通)으로 ‘함께 파이를 키워나가자’라면, 전략은 ‘대신 그 파이를 중국이 좀 더 많이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호련호통이란 연계성(connectivity)을 의미한다. 연계성은 크게 항만, 도로, 파이프 등 물리적 연계성과 통관, 무역, 투자 제도 일반을 일컫는 제도적 연계성, 그리고 사람 간의 문화적 사회적 교류를 포괄하는 인적 연계성으로 이뤄진다. 

일대일로 사업이 진행 중인 국가에서 반응은 크게 중국 자본을 자국 경제발전에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와 부채만 늘었을 뿐이란 회의론으로 양분된다. 민귀식 교수(한양대 중국학과)는 “정권 교체나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에서 기인한 민심 이반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관련국의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권이 교체된 파키스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추진을 재검토하고 일부는 취소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지난 11월 대표적인 친중 국가로 알려진 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선 일대일로에 불만을 품은 반군 조직이 중국 영사관 진입을 시도하다 교전을 벌여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나아가 서구권은 일대일로를 ‘빚잔치’로 인식하고 있다. 김한권 교수(국립외교원)는 “미국은 일대일로의 과도한 인프라 개발로 인해 주변국이 빚을 지고, 그 대가로 중국이 정치·안보적 이익을 얻어간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그리는 ‘세계화’란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관련국들이 일대일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대일로의 실패 사례만 강조하는 일부 국내 언론의 단편적인 보도론 일대일로의 면모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원동욱 교수(동아대 국제학부)는 “언론의 지적과 달리, 일부 프로젝트를 제외하곤 많은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많은 프로젝트가 일대일로의 공식 출범 이전부터 필요에 따라 기획됐고, 재정 부족으로 실행을 기다리던 상황이었기에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의 제안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식 세계화가 금융 위주의 세계화 전략이라면, 중국식 세계화는 주로 실물 경제에 기반한 인프라 건설, 무역 활성화에 강조점이 찍혀있다. 미국식 세계화가 각 금융 거점에 기반한 점의 세계화라면, 중국식 세계화는 중국으로부터 뻗어 나가는 선의 세계화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이 5년 동안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실크로드 기금 설립 등으로 사업 추진을 위한 재정 기반을 마련했고, 파키스탄, 몽골-러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기타 항만, 철도 및 산업 지구 건설에서 성과를 보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창주 박사는 “현재까지 중국이 일대일로에서 펼치고 있는 핵심 전략을 ‘조기 수확’과 ‘저우추취(走出去)’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 수확’은 중국 입장에서 리스크가 큰 일본이나 북한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것보다 카자흐스탄이나 파키스탄 등 상대적으로 사업 실시 가능성이 높은 국가부터 연결을 늘리는 것이다. 또한 ‘저우추취’는 ‘밖으로 나아가라’는 뜻으로 국가 차원에서 AIIB, 실크로드 기금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중국 국영기업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것이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국내와 해외 전략 지점을 개발 및 연결하고 중국이 경제 허브가 돼 주변국과 가치 사슬*을 연계하는 시스템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우선 전체 국토를 3대 개발 전략(서부대개발, 장강 유역 개발, 징진지(京津冀)* 개발)으로 나누고 지역 간 또는 산업 간 연계성을 강조하는 등 종합적인 발전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이처럼 경제적으로 조직된 국내에 기반을 두고 시작해 인접 국가로 연결된다. 서봉교 교수(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는 “윈난성에서 동남아시아로 연결되는 4개의 고속도로가 완공됐고 중국 전역과 윈난성이 고속철도로 연결돼 동남아시아와의 교류가 활발해졌다”며 “올해 1월 중국 윈난성 현지 조사를 했을 때 이미 40개 이상의 윈난성 기업이 동남아시아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는 등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문제점 역시 적지 않다. 민귀식 교수는 “중국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는 소프트파워 강화가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투자와 협력은 늘어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보단 부정적인 인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이창주 박사는 일대일로의 ‘어두운’ 측면을 설명하며 아프리카 앙골라의 예시를 들었다. 이 박사는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인 앙골라는 중국에 자원개발권을 내주는 대신 중국 자본을 들여와 인프라를 짓고 있다”면서도 “중국 자본뿐 아니라 중국인 노동자, 중국 원자재만 들이다보니 앙골라 산업이 쑥대밭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동욱 교수도 “일대일로 관련국은 대체로 개도국으로서 권위주의 통치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거나 부패가 매우 심각한 곳”이라며 “더욱이 중국 기업은 리스크 의식 부족, 낮은 현지화 수준은 물론이고 국제경쟁력 면에서 취약하고 국제화 경험 및 노하우가 부족해 투자 과정에서 해당 국가 및 민중의 저항이나 배척을 수반하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때문에 중국 내에서도 일대일로의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양새다. 실제로 최근 중국 내 일대일로 관련 문헌들을 보면 사업 리스크에 대한 검토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단기적으론 일대일로 사업의 안정성과 효율성 제고에 주력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민귀식 교수는 “중국이 일대일로를 최소한 2050년까지 밀어붙이려는 것은 분명하고 시진핑 이후에도 지속할 중국의 굴기 프로젝트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얘기했다. 성균중국연구소 장영태 연구원은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만큼 시진핑 집권 2기 들어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조용히 내실 있게 진행하려는 듯하다”고 말했다.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부채 관련 문제나 내정 간섭 문제에 대해서도 톤의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 내 일대일로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중국이 결코 일대일로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향후 중국이 서구와 구별되는 일종의 ‘중국 방식’(The China Way)을 제창할 것이며, 이를 위한 핵심 사업인 일대일로를 간단히 포기할 리 없다는 해석이다. 여기서 ‘중국 방식’이란 서구의 지역주의 통합방식과 구별되는 국가 주권 우위 원칙, 국가가 주도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을 기반으로, 아시아의 정신적 가치 및 유교 문화를 부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원동욱 교수는 “사실 일대일로에서 말하는 호련호통은 단지 철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은 각국 간에 통하는 표준, 즉 소프트웨어, 통관 절차 등을 통일시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규범 및 제도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역내 리더 역할을 추구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지 않게, 뱀처럼 지혜롭게

 

우리는 일대일로란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창주 박사는 “일대일로를 긍정, 부정으로 평가하기 전에 일대일로에 실리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이 박사는 “얼핏 생각하면 일본은 일대일로에 참여해선 안 될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일본이 주도하는 다자 은행 ADB(아시아개발은행)는 AIIB와 연계해 중국이 말하는 ‘호련호통’의 논리에 부응하면서도,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견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도 필요에 따라선 거꾸로 일대일로 를 통해 수출 루트를 개척하고,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거나 중국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북제재 국면으로 한국이 일대일로 사업과 관련해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벌어진 틈새 사이로 한국이 움직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얘기한다. 민귀식 교수는 “스리랑카 콜롬보 항에 가면 싱가포르 기업이 아예 도시를 계획하고 직접 만들어서 분양하고 있다”며 “한국도 단순히 아파트 건설 같은 하청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종합신도시 개발이나 친환경 재생 산업 같은 고부가가치사업에 진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원동욱 교수 역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론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이나 훈춘에서 북한 개혁·개방에 필요한 전문인력 양성을 한중이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다”며 “나아가 남북중 협력사업의 경우 미국, 일본을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을 적극적으로 사업에 결합하도록 하는 개방적 협력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고 주장했다.

이창주 박사는 “한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듯 편협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의 어느 현상을 바라볼 때 ‘중국인’ ‘중국’ 하나의 각도로만 바라보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다. 장영태 연구원은 “일부 기사에선 일대일로를 ‘독극물’과 같은 정책으로 표현한 일부 반중국매체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며 “일대일로를 통해 한국이 어떤 부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보다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코끼리’처럼 거대한 중국의 속살을 구석구석 살피고, ‘뱀’처럼 지혜롭게 스며드는 외교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가치 사슬(Value Chain): 산업 사슬로도 부르며 원자재, 중간재, 완성품 그리고 상품 가공 과정에서 다양한 경제 주체가 각자의 비교우위에 맞춰 자원과 생산요소를 투입해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징진지(京津冀): 베이징, 텐진, 허베이성을 포함하는 ‘중국의 수도권’ 개념.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