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죽음의 끝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소설, 『디디의 우산』

상실의 경험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의 세계의 일부가 죽음으로 잠식돼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남은 삶이 어둠 속으로 낙하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디디의 우산』은 두 편의 연작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 각각의 주인공 d와 김소영의 삶을 통해 두 가지 형태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하나는 누군가의 존재를 잃는 물리적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사회적 죽음이다. 황정은 작가는 이를 한국사회가 겪어온 사건들에 투영해 제시한다.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와 촛불혁명이다. 이를 통해 『디디의 우산』은 죽음, 상실을 경험하고서 이를 극복해가는 이야기가 비단 소설 속 주인공만의 것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것임을 보여준다.

「d」에서 주인공 d는 사랑하는 연인 dd를 잃은 후 자신의 삶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감지한다. 황 작가는 소중한 것을 잃고 한없이 가벼워진 d의 삶을 ‘사소하고 하찮은’ 풍경으로 묘사한다. d는 dd와의 추억을 점차 기억하지 못하고, 그의 마비된 의식은 주변을 둘러싼 것들의 하찮음을 감지하는 데 익숙해진다. 상가에서 택배를 배달하는 d의 업무는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고,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정지돼 버린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여긴다. d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죽음이 ‘이미 여기 와 있기’ 때문에 “그냥 슥…… 따로 상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황 작가는 d의 삶이 그만큼이나 사소하고 무력해서 살아있음의 무게를 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d가 일하는 장소인 ‘세운상가’ 역시 낡고 버려진 것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공간이다. 설립 당시 서울의 중심 상가로 번성하던 세운상가는 서울의 상권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점차 낙후돼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곳이 됐다. 황 작가는 세운상가가 점점 창고로 변해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사소하고 하찮은 존재가 됐다고 묘사한다. d가 느끼는 상실의 이미지는 세운상가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와 중첩된다. 황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상실과 소외의 경험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d」의 후반부에서 황 작가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상실의 아픔을 딛고 변화를 위해 저항하는 모습을 d의 의식의 흐름 위에 겹쳐둔다. 이는 사회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안에 속한 개인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소설적 장치다. d는 촛불집회 현장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거대한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일으킨 ‘혁명’에 대해 생각한다. ‘혁명은 어디서 왔나.’ 사회적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 혁명을 시도하는 힘은 이내 상실을 겪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구제할 수 있는 힘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d가 진공관의 비유를 통해 작고 사소한 것이 반드시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혁명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과정으로 연출된다.

d는 오디오 앰프의 진공관을 관찰하다가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막고 있었던 가벽과 가벽 사이의 진공 공간을 떠올린다. 거대한 그 공간은 죽음으로 가득 차 ‘어둡고 고요하게 정지’돼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을 것만 같았던 진공관은 ‘빛과 신호로 채워져’ 있었다. d는 진공관에 손을 갖다 대고선 ‘섬뜩한 열’에 깜짝 놀라 손을 뗀다. 작가는 이 비유를 통해 사소하고 하찮은 존재가 결코 정말로 무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상실로 인해 한없이 가벼워진 생(生)일지라도, 이는 명멸하는 가운데 뜨거움을 지닌 조그만 빛과 신호들을 낳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꺼내든 촛불이며, 혁명이 시작되는 강렬하고 ‘섬뜩한’ 열이다. 그것은 상실로 얼룩진 d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황 작가는 개인적 삶의 구제도 사회적 현실의 극복도 모두 ‘혁명’이며 이는 사소한 존재의 작은 움직임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선 이런 혁명이 이뤄진 사회에서도 또 다른 소외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짚어낸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배경은 촛불혁명이 성과를 거둔 2017년 3월 10일의 낮 한동안이다. 주인공 김소영은 촛불혁명을 비롯해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사회적 혁명의 순간들을 회상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상실한 정체성과 가치들을 떠올린다. 그는 사회구성원 공동의 노력을 통해 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권리와 정체성이 얼마나 보존될 수 있는가 질문한다.

대표적인 소외가 여성의 권리문제와 성 소수자 문제다. 김소영은 대학 시절부터 사회적 모순을 수정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연대해 혁명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퀴어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겪는다. 그에게 드리운 죽음의 이미지는 사회적 편견의 폭력성에 압사당한 정체성의 흔적이다. 이를 반영하듯 그가 쓰는 소설에선 항상 누군가가 ‘죽는다.’ 

김소영은 다음의 사건들을 회상한다. 주변인이 자신을 여성의 프레임으로만 규정한 채 직장 내에서 사회적 역할을 제한하고 부당한 요구를 했던 것. 그의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내며 ‘아들가진 놈’인 사돈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에 굴종했던 모습. 집회에서 시위대의 팻말에 쓰인 ‘악녀 OUT’이라는 문구가 여성의 이미지를 낙인찍은 방식. 그리고 퀴어인 그가 연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든 주변에 의해 서로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순간을 상상해야만 하는 현실. 황 작가는 집회 현장에서 한목소리로 혁명을 외치는 가운데서도 “우리가 무조건 하나라는 거대하고도 괴로운 착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도처에서 새로운 죽음, 새로운 상실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아직 혁명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김소영은 언젠간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 한편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끝나는 소설을 쓰던 그가 이젠 그 어떤 사소한 존재일지라도 지워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목을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로 짓겠다고 한다. 거기엔 개인성, 다양성, 모두의 정체성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더 이상 죽음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도래하길 희망하는 황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다.

『디디의 우산』은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어떻게 작고 무력해 보이는 개인의 삶과 연결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냈는지 보여준다. 작품은 이에 그치지 않고, 혁명이 실현된 사회가 모순을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지나쳐버린 사각지대를 비추고 있다. 아마도 그렇게 상실과 혁명은 반복되고 개인은 다시금 무력해지는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d가 진공관 속 작은 빛과 신호를 감지해냈듯이 우리 모두가 온기를 지닌 작지만 뜨거운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아무도 죽지 않는 사회가 올 것이다.

 

디디의 우산, 황정은, 340쪽, 창비, 12,600원
디디의 우산 
황정은 
340쪽 
창비 
12,600원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