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학생들이 중앙도서관에서 많이 대출한 책, 『검사내전』

법은 기본적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규율하기 때문에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조정돼 나가는지 파악하면 그 사회가 표방하는 핵심적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다. 『검사내전』은 법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을 현직 검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직접 다뤘던 형사 사건들을 되짚어보며 법제도 전반과 한국사법제도의 특징과 모순점을 살핀다. 그는 ‘법의 본질’에서 법의 의미와 가치, 구체적인 법제도의 운용방식 등을 반성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법이 더 나은 사회적 기준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때때로 ‘법대로 하자’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으로 법을 떠올린다. 이에 대해 작가는 법 만능주의를 우려하며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법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오히려 다양한 사회적 병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고비용·비효율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모든 것을 법적으로 해석하려 하다보면 각 분야의 법률 시장과 서비스의 규모가 비대해져 사회에 지나친 부담을 지운다. 법적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업무처리과정은 복잡해지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예를 들면 20세기 후반 미국 의료계에선 의료 분쟁을 사법적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강해져 의료과오소송이 빈발했고, 병원과 보험회사는 이에 대비하느라 불필요한 검진과 고가의 진단장비를 도입해 의료비를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렸다. 이 같은 사례는 법에서도 ‘비용 문제’를 고려해야 함을 함축한다.

법 만능주의로 인해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규모가 비대해지고 이들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될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형사처벌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중앙집권적인 방식의 사법제도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형사 소송 체계에 분쟁 해결을 의탁함으로써 경찰에서부터 검찰, 법원으로 이어지는 사법기관의 권한이 강화되고 이들 사이의 정치적 논리에 의해 판결이 좌지우지돼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근래 사법농단 이슈들에 대한 대응으로 사법기관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안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법이 불완전한 까닭은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법체계가 사회적 변화를 섬세하게 반영하지 못할 우려도 가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버택시 카풀 서비스의 확산이다. 콜택시에 적용되던 과세나 수익 배분 구조에 관한 기존 규제는 새로운 공유 경제 양식을 반영하는 카풀 서비스에 적용되기에 불충분했다. 이 괴리는 콜택시 업계와 택시 기사 등 다양한 사회적 주체의 반발을 불러와 혼란을 야기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에 저자는 법을 절대적인 질서로 인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엄정한 기준으로서의 법은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다. 법이 요동치고 판결이 들쑥날쑥하다면 일부가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사회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법의 본질이 희미해지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법의 공정성과 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편 저자는 법이 지닌 일도양단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법은 전형적인 ‘규칙’이다. 규칙은 무엇이 옳거나 옳지 않다는 식으로 대상을 두 가지 상태로만 분류한다. 물론 모든 법이 이분법적 사고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사건의 책임 소재를 가려 누구에게 처벌이 돌아갈 것인지를 다투는 형사법에선 한쪽에게 분쟁의 원인을 귀속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실제 사건들 가운데엔 그 둘의 경계에 해당하는 것이 많이 있다. 경계적 사건들을 포용하지 못하며 유무죄를 가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형사법은 공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해내기엔 미흡하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그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다. 회복적 사법은 분쟁이 법적 구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소거되는 요소들을 사법절차에 포함시켜 좀 더 많은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공정한 판결을 도모한다. 이는 전통적인 형사법이 엄정한 기준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으며, 재범을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실패했던 점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회복적 사법은 전통적인 형사법이 취하는 범죄자와 국가 간 이분법적 대결 구도를 수정한다. 범죄를 추상적 개념인 국가에 대한 침해로 보기보단 피해자와 공동체에 대한 침해로 본다. 회복적 사법은 죄를 인정한 피고인에 한해 피해자를 포함한 공동체와 화해 및 조정 과정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법의 궁극적 목적인 평화와 상생을 달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저자는 한국 사법제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사법기관 권한 거대화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방향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한국의 판사 임명 제도에 민주적 정당성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판사 임용이 국민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이뤄진다. 이에 반해 미국은 참정권을 대폭 확대했던 잭슨 민주주의의 전통을 이어와 현재 87%의 주(州)판사를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저자는 판사 선출제도가 미국에서 더 공정한 사법적 판결이 이뤄지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한다. 이어 그는 한국에서도 판사 선출 제도를 활용한다면 주권자의 선택을 거치지 않고서 사법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일을 예방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 견제하고 판결의 신뢰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엔 헌법에 위배되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에 대항해 권리 구제를 청원할 수 있는 헌법소원이 마련돼 있지만, 재판 결과를 그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헌법에 따라 재판을 청구할 권리를 가진 국민이 공권력 중 하나인 사법권에도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형사처벌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경향성이 두드러지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이런 권리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판사 선출 제도와 재판소원 제도가 기존의 법질서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운영되기 위해선 더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문제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법치주의를 채택하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는 정체성이 보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은 사회가 흘러가는 양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사회가 마주하는 위기를 여실히 반영한다. 이처럼 법은 사회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도구이며 동시에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활용되는 요소기도 하다. 작가가 말했듯이 법이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 또한 많다. 법이 지닌 모순을 고쳐나가고 이를 더 잘 집행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공정한 법치국가의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검사내전, 김웅, 384쪽, 부키, 13,500원
검사내전
김웅 
384쪽
부키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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